무기력해
무기력해.
누워있어도 힘들고 앉아서 가만히 있어도 힘들고.
하루 종일 마트만 다녀오는 것도 매우 힘든 나날들이 이어진 적이 자주 있다.
하루의 목표가 주민센터 다녀오는 것인데도 그 일은 며칠의 실패 후에 할 수 있는 나날.
최근에는 공연을 마치고 바로 원고를 쓰거나 다른 일을 할 수 없어서 방바닥과 무언의 사랑인지 살림인지를 차리고 몇 개월을 지내온 것 같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 무엇이든 하고 싶지만 뭘 할 수 있지도 뭘 해야 할 지도 몰랐던 시간들.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고 정말 많은 잡생각들도 할 수가 없었을 때도 있다. 난 많은 감정을 느끼거나 한 감정을 붙들고 질리도록 만끽하는 인간에다 많은 생각들을 복잡해서 길을 잃을 정도로 나를 코너로 모는 인간인데 말이지.
아주 단순한 것들이 헷갈리기도 했다. 지금 계절이 추운 시간에서 점점 더 따뜻하고 더운 쪽으로 가는 건지, 아니면 이렇게 따뜻하다 추워질 것인지. 가끔 멍하니 옷장 앞에 서서 가을인지 봄인지 자문하곤 했다. 이런 멍한 상태, 어떤 감정도 잘 느낄 수 없는 마음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되기도 했다.
지금도 완전히 이런 무기력을 빠져나왔다고 하긴 어렵지만 무기력의 한 가운데에 있지는 않아서 인지 지난 무기력한 나날들을 보면서 '너 많이 힘이 없었구나.'라고 말해준다. 그러니 최소의 제약을 두고 계획을 세워 무언가를 하자라는 마음이 솟아 오른다. (여기서 과한 계획과 불도저처럼 밀어 붙이는 것은 더 큰 무기력의 웅덩이로 밀어넣는 거나 마찬가지이므로, 아주 조금씩 천천히.)
무기력의 한가운 데에 있을 때는 그 가운데서 혼자 빠져나오는 것이 쉽지 않다. 의지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므로 의지박약이라고 스스로를 탓하고 이런 상태의 사람을 혼내면 안된다.
무기력을 겪은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이를 빠져나왔는지 그 방법을 이야기하다보면 기억하지 못할 때도 많다.
'그냥 어쩌다 뭐,뭐를 하다가 좀 나아지고...뭐 그렇지, 뭐.'
우연히 새로운 운동을 하게 되어서, 요리를 하게 되어서, 때론 강아지를 키우게 되어서, 어떤 책을 읽게 되어서, 자전거를 타니까, 계절이 바뀌니까.
하지만 반대로 이런 걸 시도한다고 바로 무기력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위험하다. 때때로 다르고, 상황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의 무기력을 더듬어 보자면...
잦고 연이은 작은 실패들과 번 아웃 증후군, 우울증 등이 겹쳐서 였던 것 같다.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기도 하고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돈이 들어올 때가 가장 반짝 행복하길래 일반인처럼 돈을 벌 수 있게 일을 찾아보거나 취직을 하려고 했다. 그럴 수록 잦은 실패는 더 쌓이고 에너지는 더 크게 소모되었다. 그럴 수록 계획을 세울 수도 없어졌다.
주변에서 햇빛을 쬐고 많이 걸으라고 한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긴 했지만 집 밖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머리카락 잘린 삼손이 힘쓰려고 버둥대는 것처럼 어렵기만 했다.
그래도 최소한의 일을 하고 최소한의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중요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일상에서 내가 하기에 벅차거나 너무 힘든 일을 택하지 않으면서도 전환이 되게 초등학생과 하는 영어수업을 하게 되어 운이 좋았다. 10살 남짓한 아이들은 월요병도 모르고 별것도 아닌 내 말과 내 표정에 숨이 넘어갈 듯 웃고 울었다.
사람들을 만나도 내가 겪는 힘든 마음을 이야기하다보니 그들도 그런 에너지를 느껴 힘겨워하는 것같아 일부러 피하기도 했다. 만나는 사람들도 최소한의 신뢰를 할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내킬 때 연락을 하고 만났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내가 외로움이 있는 지도 몰랐다.
가장 기본 적인 일에 목숨걸고 그리고 또 엉기성기 시간 계획을 만들거나 알람을 맞춰 나를 독려해야 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나를 코너로 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노력이라고하기엔 그냥 아무 생각도 안하려고 했다. 우연히 사람들을 만나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보면 '그냥 지낸다'고 대답해도 상관없다고 스스로에게 조금씩 관대해졌다.(아직도 이런게 막사는 거라는 압박이 있긴하지만) 예전엔 지금은 뭘 하고 있고 앞으로 뭘한다는 대답을 해야 내가 한심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해서인지 뭐하고 지내냐는 질문이 무서웠다. '그냥 살아, 그냥 잘 지내'라고 대답하면 성의없고 무신경한 대답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근데 지금은 그냥 살기때문에 그렇게 대답한다. 죄책감없이.
깨긴 했지만 일어나서 운동을 하거나 밖에 나가서 산책을 할 수 없으면 그러지 못하는 날 탓하고 '넌 그것도 못하다니, 구제불능에 노답이다. 어떡하냐, 너 계속 이렇게 쓸모없이 살 것 같다'라고 말하는 대신 그냥 누워서 스트레칭을 했다.
이불 위에서 다리를 찢고 상체를 숙이니 오랫동안 갇혀 있던 근육의 아픔을 느끼고 삐거덕 거리는 관절의 소리를 들었다. 물론 그러다 다시 잠들 때도 있고 한심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아예 생각을 멈췄다. 한심하다는 생각조차 할 에너지도 없는 상태, 였던 것 같기도 했다.
스트레칭을 계속하다보니 그냥 일어나기 전 덜 무책임한 유예상태가 이불 스트레칭이었다.
상체를 숙이고 무릎에 코를 가까이하며 큰 숨을 쉬는데 등 쪽이 매우 아팠다. 글을 쓰겠다며 대학원에 들어오고 하며 엉망진창이 된 몸은 디스크와 과다한 지방으로 괴롭고 슬퍼하고 있었다. 그리고 숨 쉴 때 등의 통증을 느끼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숨을 쉬지 않고 살았구나.
였다.
그리고 스트레칭 조차 하지 못 할 때 누워서 숨을 쉰다. 숨만을 쉰다. 온 몸과 마음에 깃든 무기력을 느끼고 또 내뱉는다.
결국 아무것도 아무 일도 아니다. 아무 것도 아무 일도 아닌 일을 아주 조금씩 하다보면 조금씩 걸어가다 뛰어갈 수 있겠지. 마음이 솟아 오르도록 난 숨구멍부터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