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무너지다

고통을 너무 참지 않는 것.

by moonbow

한 아이의 과외를 마쳤다.

영어가 너무 싫다며 계속 애를 먹이던 남자 아이의 마지막 수업 시간이었다.

과외 가는 길에 어머니의 죄송하다는 상냥한 문자를 받았다.

예감했던 일이라 그렇구나, 싶었지만 일의 특성상 예고없이 이렇게 일이 없어지기때문에

약간 당황했다. 하지만 항상 있는 일이다.

마지막이라고 짬뽕과 짜장면을 시켜서 같이 먹었다. 아이는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다음 과외를 이동 하는 중이었다. 지하철 문이 열리는데 갑자기 숨을 못 쉬겠고 토할 것 같았다.


지난 일주일전부터 위염과 두통이 계속 되었고 계속 눈을 뜨고 있으면 이유없이 눈물이 나려 했기때문에 병원에 전화해 가지고 있는 약 중에 더 먹으면 도움을 받을 약을 알아놓은 상태였다. 카페에 들어가 테이크 아웃 잔으로 달라고 했는데 양해를 구하고 약만 먹고 나가겠다고 했다. 직원은 천천히 있다가 나가라며 물 한 잔을 주었다.


작은 상냥함이 구조대원처럼 고마웠다.


그럭저럭 일을 마쳤다. 시범과외만 해도 됐기에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항상 그렇듯 이야기를 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했다. 굳이 그래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마이너스를 채워넣는 것이 중요했다.


고통을 너무 참지 않는 것.


그것이 내게는 하나의 과제이다. 참고 인내하고 극복하고 억누르라는 주문을 성실히, 열심히 이행해 온 삶이었기에 내 뇌의 어딘가가 망가졌다. 그러면서 부수적으로 몸도 망가져버렸다. 고통의 상한선이 어디인지 모를 때 난 세뇌되어 버린 강한 한국인으로 과도한 책임의식으로 안당해도 될 더 한 고통을 당하게 나를 놔두었다.


오롯이 내 자신을 책임지는 것이 너무도 힘든 일이라는 것을 세상살이를 하면서 나는 배우고 있었고 때로는 내 자신을 책임지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고 내 자신에게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있다. 책임지기 싫어서 반은 죽은 채로 사는 것이 아니니까. 너무도 책임지고 싶은데 내 맘대로 안되는 때가 많은 것이지. 그러니까 좌절감을 더 크게 느끼는 거다.


자책의 활시위를 느슨하게만이라도 망가뜨려도 내겐 성공이었다.


이젠 자책의 활시위가 아주 느슨하다. 때론 기특하게도 남 탓과 사회구조 탓도 한다. 그리고 자책이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내 자신을 추스릴 힘으로 내게 말을 걸기도 한다.


또 다시 무너진다는 것이 더 깊고 큰 좌절이 아니었다. 또 다시 일어나보는 경험을 해보고 다른 방향을 알려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고 애쓰지 않고 다독일 수 있게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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