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해도 괜찮아
If you embrace someone, you put your arms around them and hold them tightly, usually in order to show your loveor affection for them. You can also say that two people embrace.
Embrace 의 뜻은 만약 당신이 누군가를 "embrace"한다는 것은 당신이 그를 그저 받아들이고 안아들인다는 뜻이다.
영화 <컨택트>에서 아빠가 보러 오지 않아 '괜찮다'고 말하는 딸에게 엄마가 하는 말이
You can be sad, you can tell me you are upset.
Embrace the sadness
정확한 대사는 아니지만 슬퍼해도 괜찮다고 엄마는 말해준다.
그 때 썼던 단어가 "Embrace"다.
우리는 울고 있는 아이에게 "울지마" 라고 한다.
이것저것에 상처를 잘받았던 나도 "그런 걸로 상처 받지 마"
"그런 거 그냥 넘겨" 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심지어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울지마" 라는 말을 들었고
울지 않으면 "무서운 애들이다. 엄마가 죽었는데 울지도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냥 슬퍼해도 괜찮다는 말은 슬플 수 있는 일에 슬퍼해도 되고 그런 감정들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려준다.
항상 나는 날 믿지 못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내가 느끼는 감정과 욕망을 잘 알아차리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화를 내야 할 때나 내 입장을 밝혀야 할 때 이것이 너무 이기적인 것은 아닌지, 내가 이렇게 반응하는 것이 예민한 것이 아닌지 검열하고 검토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항상 찜찜하게 먼지들이 쌓이듯이 사람들과의 관계가 뿌옇게 되었고 어느 순간 나에게는 그냥 막대해도 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 어떤 것도 객관적일 수는 없다. 게다가 "관계"라는 흐름에 같이 흘러갈 때는 제대로 판단하기가 힘들다. "감정적"이라는 수식어는 누군가가 나를 비난할 때 하는 말이었다. 이성이 없고 "감정"뿐이다, '뇌가 없는 것 같다'라는 말도 들어봤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땐 그들의 감정 또한 내게 널 뛰기 하듯 치고 들어왔다. 그냥 말을 하지 않고 무표정하게 있으면 자신의 감정은 모두 봉인할 수 있고 나는 감정적이지 않고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틈에서 난 참으로 외계인이었다.
모노톤의 옷을 입고 무표정하고 다른 사람들이 하듯이 행동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일반적인 사람'이고 '보통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느 순간 그 말들이 참으로 권력적이고 폭력적으로 다가온 적이 있다. '나는 보통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넌 보통사람이 아니다. 넌 일반적이지 않다.' 고로 '내가 옳다.'라는 것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공교육이 이런 사람들을 생산하고 또 회사를 다니고 하려면 말을 잘 듣는 기계의 부품같은 사람들을 필요로하는 것이 이 자본주의 사회의 이상적인 사람이랄 수도 있지만 그대들도 다 사람인지라 허한 마음을 술로 대형서점에 자기 위로의 서적 코너를 떠돈다.
슬퍼해도 괜찮다. 슬픔뿐이지 않은 복잡한 감정 속에서 이 것이 무엇인지 나는 찾아보려고 오늘도 생각한다. 생각만으로는 알 수가 없기때문에 느껴보려고 한다.
하나의 감정이 나도 아니고 모든 이 불쾌하고 우울한 한숨이 나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대신 이런 나를 특이하게 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관계없이 나는 나를, 내 감정을 "Embrace" 해보려 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요소가 다 사랑스러워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