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하게
난 고양이를 몰랐다. 키운 지 3년 정도 되어 가지만 항상 나는 개와 더 가까웠으니까.
그리고 키운다고 해서 잘 아는 건 아니니까.
처음 고양이를 들이게 된 것은 죽고 싶어서 였다. 죽고 싶고 우울증에 도움이 될 것 같으니까 고양이를 들인 게 아니라 죽을 것 같았다. 혼자 잠을 계속 자왔는데 잠을 잘 수가 없고 계속 고양이와 개 분양(유기묘, 유기견) 사이트만을 뒤지고 다녔다. 그러다가 우연히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봤는데 예전엔 죽어도 생각이 안났다. 안났다기 보다는 거의 실현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아주 무거운 돌로 눌러놨을 거다. 첫 째가 개나 고양이를 기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마음 앓이를 하던 중에 개는 내가 키울 자격이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유기견을 입양하는 곳에서는 미혼 여성에 원룸에 사는 사람에겐 강아지를 입양하지 않았다. 이유를 듣고 아주 씁쓸해졌다.
결혼했다고 파양하고 임신했다고 파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기견은 분리 불안 장애가 있기때문에 혼자보단 가족에게 분양한다고 했다. 씁쓸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또 상처받는다면 두 배가 아니라 거의 죽을만큼 힘들테니까.
그러다 우연히 개인이 올린 구조 글을 보고 뿌옇게 나온 고양이 사진을 보았다. 왠지 운명이 느껴졌다. 거절당해도 안 물어보면 후회할 것 같아서 물어보고 집 검사까지 받고 첫 째 고양이를 들이게 되었다. 거리에서 오래 있어서 장모였던 털이 엉켜서 그것만 잘라서 털 모양은 아주 보잘 것 없었고 영양상태가 불균형해서 분홍색 살이 흰털 사이로 보였다. 겁이 너무 많아서 침대밑에 계속 한동안 숨어 있었다. 한 3일은 내가 고양이를 입양한 것이 맞는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밤이 되니 배 위에도 올라와서 자고 옆에서도 자고 그랬다. 나는 나의 첫 고양이를 껴안고 죽을 때까지 내가 최선을 다해서 널 지켜주겠다고 맹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양이는 참 밥을 많이 먹었다. 보살펴주시던 분이 제일 비싼 사료만 먹지만 진짜 조금 먹는다고 말했던 거와는 달리.
그리고 내가 샤워를 하고 나오면 항상 문 앞에 있었다. 나는 별 생각없이 '왜 여기 있어? 문 열면 놀랄 거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 행동이 반복됐는데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내가 샤워하니까 물 소리에 걱정돼서 기다린 거구나 싶었다. 고양이의 무표정함에 뒤늦게 알아챘다. 이제는 샤워를 하든지 말든지 신경도 안쓴다. 안죽는 걸 아나보다.
그리고 내 감정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해 항상 잘 숨는다. 예전에 학대를 받았던 것 같다. 맞았던 것 같고. 그리고 나중에 구조한 막내 치즈 고양이는 내 종아리에 두 발을 올려서 잡는 걸 좋아했다. 스타킹을 신거나 레깅스입을 때 그러면 하지 말라고 한다. 신기하게도 하지 말라고 하면 그 후에 거의 하지 않는다. (내가 너무 무서웠니?) 나중에 이것도 뒤늦게 알게 되었는데 거의 내가 나갈 준비를 할 때 종아리를 잡고 두 발로 긁은 것이다. 나가지 말라고 조르듯이.
은근하게 이렇게 감정 표현을 하니 내가 참 나중에 안다. 그리고 첫 째에게는 '사랑한다'고 내가 말을 많이 하는 편이고 둘 째 왈츠에게는 워낙 시끄러워서 말싸움을 하고(아마 애정결핍인듯. 미안허다..) 셋째 삼바에겐 누나 사랑하냐고 많이 묻는 편이다.
이젠 삼바에게 누나 사랑하냐고 안 묻는다. 억지 대답을 얻어내는 것에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내 품에 안겨서 계속 날 바라보는 삼바의 두 눈과 마주친 적이 있는데 아무 생각없이 봤는데도 명확히 날 너무 사랑하고 있다는 걸 확연히 알 수가 있었다. 어설픈 인간의 확인은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 난 고양이를 몰랐다. 은근히 내 발을 지나가며 무표정한 얼굴로 애교를 부리고 쓰다듬어 주면 행복해하며 골골송을 부르다가도 갑자기 내 손을 깨물어 소리지르게 하는 고양이. 통점이 낮아 쓰다듬는 것도 어느 순간 아픔으로 느낀다고 한다.
사실 내가 집에 나가서 오랫동안 오지 않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그래서 일부러 마중을 나오지 않는 건지도. 그리고 얼마전에 화가 많이 나있을 때 집에 와서 분통을 터뜨리면 애들이 다 도망갔다. 그리고 내 곁에 오지 않았다. 엉엉 울면 아이들이 너무 무서워했다. 그래서 내가 좀 섭섭하기도 했지만 소중한 애들에게 그런 힘든 짐을 주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집에서 왠만하면 화내지 않는다.
아직도 나는 고양이를 모른다. 나의 하루는 그들에겐 7,8배는 더 길기때문에 난 더 소중히 얼굴을 쓰다듬는다. 보드라운 털의 냄새를 맡아본다. 젤리를 만져본다. 뱃살을 조물락 거려본다. 그리고 더 알아보려고 해본다. 그들의 시간은 빨리 흐르고 그래서 난 더 순간을 소중히 여기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