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려고 하다가

불행에 발목이잡혀

by moonbow

유독 행복에 집착하는 아이가 있다. 아직은 젊은 20대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집착 수준으로 내게 묻거나 말했다.


"행복해? "

"그러면 행복해?"

"행복하세요."

"행복하길~"


오랜만에 마주치거나 전화를 하면 "행복해?" 라고 묻는다.

그냥 입버릇이 아니라 행복에 집착해서 자신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엄청 불행한건 아닌 그저 그런 상태. 하지만 행복하진 않은.


나도 중고들학교 땐 대학에 가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행복할 거라고 맘대로 하고 살면 행복해 질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대학에 오니 오히려 행복하지 않고 상대적 박탈감과 컬처 쇼크와 불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막연한 기대때문에 더 많이 깨진 것 같다.

사실 현실 파악이 매우 느리고 굼뜬 편이어서 대학에 오면 행복해질 거라고,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줄 교수님도 알게 되고 대화가 통할 친구도 생길 거고 영혼의 반쪽과도 사랑에 빠질 거라고 기대하고 희망하며 학창시절을 버텼다. 참 순진하기도 하셨지.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한 참 내 인생자체가 더할 나위없이 망가진 것 같고 회복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때 나를 보던 한 언니가 '30살 될 때까지 일단 살아봐, 좀 편해져.' 라고 말해줬다. 그 말에 기대어 30살이 넘어가니 아주 편해지진 않았지만 내가 누군지 조금은 더 알게 되었고 내가 나인게 그리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시간과 나이 듦의 수업이 가르쳐준 게 참으로 크기도 하다. 아직도 조금씩 걸어가는 중이지만.


EBS 방송에서 하는 부부나 가족간 불화를 상담하는 방송을 자주보는데 거기서 한 선생님께서

사람은 어렸을 때는 위인이나 위대한 인물을 존경하고 20대가 지나고 30세가 넘어가면 가까운 사람, 부모를 존경하게 되는 수순을 밟게 되고 그렇게 성숙해진다고 한다. 나 또한 그랬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던 세상살이가 이리도 매 순간 진행되는 전쟁같은 일인지 몰랐으니까. 부모님이 어떻게 그렇게 그 모든 일을 견뎌내면서도 저녁마다 드라마를 보며 방이 들썩거릴 정도로 웃으며 사시는 지. 난 계속 궁금했었다. 드라마에서 자꾸 "엑스 ~"이런게 나오셨나보다. 부모님이 "야~ 엑스 뭐시기 하는게 뭐니?" 물으셨다. 난 잠깐 눈이 빠르게 깜빡거렸다. "헤어진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를 그렇게 불러요." 말씀드리니 정말 속이 뻥뚫린 것 같이 화통하게 또 깔깔 거리면서 엄마 아빠가 재밌어하셨다. '이게 뭐라고 저렇게 재밌어하시나.'생각했다. 두 분은 드라마 보면서 자꾸 엑스가 어쩌구하는데 저게 뭘까, 뭘까 궁금해하셨다는 거다. 흐름상 뜻은 이해했지만 설명해드리니 영문과 공부시킨 보람이 있구나,라며 농도 치시면서 아주 행복하게 웃으시는 거다. 난 그때 참 아리송했다. '이렇게 작은 걸로도 행복하게, 또 재밌게 웃을 수 있는건지. 나도 그럴 수 있을까'


그 시간에서 한 참을 돌아 걸어오니 일상의 틈에서 어느 순간 행복함이 내 입안에 있구나, 느껴질 때가 드디어 생겼다. 아주 큰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로또에 당첨된 것도 아니다. 아주 사소한 일들.

정리 못하고 청소도 못하는 내가 조금이라도 치워놓고(내 딴에는 최선) 보게 되는 변화. 집이 외진 데 있어서 가난하다고 느끼지만 아침에 새소리가 들리고 글을 쓰는 지금도 새소리가 들릴 때. 딱 필요한 순간에 커피 한 모금을 마실 때. 최근 공들여키우게 된 반려식물들이 하루하루 자라는 것을 볼 때. 행복이 침 고이듯 고인다.


생각해보면 난 행복하려고 노력하지도 행복이 뭔지도 딱히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항상 불행하다고, 그리고 인간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비관주의자였고 가게에서 계산하고 나갈 때 내 뒤통수에다 직업적으로 "행복하세요~"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 속으로


'행복하라고 명령하지 마!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도 아니면서! 그리고 행복하다는 형용사니까 명령이나 청유를 할 수 없는 거 아닌가?' 라며 매우 시니컬하게 나가곤 했으니까.


그러다가 최근엔 행복하다거나 불행하다거나 딱히 생각하고 느끼지 않고 앞에 있는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러다 사소한 일에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하면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라고 커피 한 모금 마시듯 음미해본다. 고된 일상을 끝내고 고양이들이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나오고 잘 때 내 옆에서 알짱거리다가 누워서 배를 보여주면서 골골거릴 때. 예쁜 카페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수다를떨 때. 하루 하루 쑥쑥자라는 허브를 볼 때. 오랜만에 걸려온 오래된 친구가 바로 어제 만난 것처럼 다정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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