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는 정말 부지런하다

잡생각도 정말

by moonbow

김매기


내가 휴직을 하고 아빠가 자꾸 하라는 것이 김매기였다. 김매기라기보다는 잡초 뽑기였다.

시골에 살았어도 아니, 산골이라는 것에 가까운데 산골엔 익숙하지만 산골 생활엔 그다지 적합한 인간은 아니었다. 가끔씩 일을 도와도 그리 오랫동안 일을 지속해나갈 근력이 없다고나 할까. 단순 노동에 맞지 않다는 것은 학교에서 했떤 조악한 적성검사에서도 잘 알 수 있었다.


뙤약볕에 어질어질해진 몸을 이끌고 쪼그려앉아 잡초를 뽑고 있자니 온갖 잠생각들이 날 공격했다.


-고작 이런 걸 하고 있다.

-이 시간에 책이라도 한 줄 더 읽어야 하는 것 아닌가.(심한 강박)

-화가 난다. 이 곳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아빠에게.

-화가 난다. 잡초를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뽑는 나에게.


그러다 5분 안에 고꾸라져서 그냥 화가 나서 그만 뒀다.



그리고 1 년이 지나 난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들어갔다.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을 불확실한 미래와 맞바꿈한다는것은 쉬운 결정은 아니다. 하지만 내 우울증이 하고 싶은 것을 못 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고 지지해준 아빠와 아빠의 결정을 믿어준 엄마덕에 새로운 방향에 진입하게 되었다. 하지만 과연 이 것이 맞는 걸까? 등록금과 시간을 들인 만큼 돈을 벌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결국 바보같이 꿈만 따르다가 망하는 그런 겉만 어른인 엉망진창인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불안과 걱정이 가득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심장이 가슴 뼈를 뚫고 튀어나올만큼 놀라면서 일어났고 시간에 맞춰 수업에 가거나 과제를 해가는 것도 불안과 강박 속에서 나의 맥박 속이를 느끼면서, 하지 않고 쉴 때는 귓 가에 아주 무서운 누군가가 호통치는 치는 소리가 나는 것같아 다시 책상에 앉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어깨가 아프게 써가도 글쓰는 것이 하루 아침에 늘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동기들과 피드백을 하고 매번 평가받고 피드백 받는 일 또한 내게는 쉽게 털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방학에 북암리 산에 가 아빠가 일군 오미자 밭에 김매기를 했다. 김을 매면서 이것 저것 아이디어를 생각하면서 내 상상 속의 그 캐릭터의 삶을 따라가 보면서. 잡초를 뽑으면 오미자가 잘 자라겠지, 생각하며 뽑았다. 어쩌면 이렇게 잡초는 열심히 부지런히 더 크게 자라는가?


뽑지 않으면 매일 매일 아침 저녁으로 자란다. 매우 부지런히.


생각도 비슷하다고 한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안좋은 생각으로 머리가 기울어진다. 그렇게 한 번 빠지면 생각이라는 휘용돌이 속에서 머무르고 같은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체 혹은 하는 줄 알면서도 같은 생각을 계속 해서 반복한다. 그런 굴레가 지겹고 지칠 대로 지겨워 질 때 쯤에도 다르게 생각하거나 다른 면을 보는 방법을 잊어버려서 어디부터 해야 할지 모른다. 잡초가 자라듯이 머릿 속은 꽉 차버렸지만 무언가 실오라기라도 중요한 것을 찾으려면 수풀을 헤매야 하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이렇게 되어 버리는 것이 내 잘 못은 아니었나부다. 애초에는. 인간 본성이 원래 안좋은 생각을 하게끔 되어 있다고 말하는 뇌과학자나 의사들의 의견을 여러번 확인한 걸 보면.


그러니 잡초를 뽑아야 하지 않겠나.


김을 열심히 매고 다음 날 아침에 흡족한 마음으로 밭에 가보니 깨끗하다기 보다는 또 다시 오미자보다 열심히 커진 잡초가 보였다. 대단한 잡초. 그러니 아침 저녁으로 전쟁치르듯 열심히 끊임없이 하지 않으면 잡초는 계속 자라는 것이다.


단체 상담 비슷한 것을 받은 적이 있다. 개인 상담은 아니었는데 거기서 했던 몇몇의 숙제들이 가끔 생각난다. 그 중에 이 잡초와 연관되었던 숙제는 팔목에 꽤 탄탄한 고무줄을 차고 안좋은 생각이 들 때마다 그 고무줄을 당겨 팔목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약간 가학적이기도 한데. 찰싹 때리는 정도로도 뇌는 아프다는 것을 인지해 그 생각이 날 때 신체적 자극을 줘서 뇌가 그 생각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나의 잡초같은 생각들은 끊임없고 지속적이었기때문에 일주일 후에 내 팔목은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이 간단한 방법이 사실 도움이 되었다. 잡초를 뽑는 것처럼. 생각에 빠져 생각이 생각의 고리를 물고 가고 결국 나쁜 생각을 하게 되고 과거의 유령을 불러오고 아직도 난 그 어두운 곳에서 한 발자국도 빠져나가지 못했음을 다시 확인하고 절망하고 오늘 이 시간에 해야할 일에 100퍼센트 몰입하지 못하는.


그럴 때마다 고무줄을 튕기니 생각이 생각을 물고 어마어마한 생각의 산까지는 만들지 못하고 중간에 구멍이 숭숭 뚫려 바람을 부니 휙 날아가 버리기도 하고 그랬다.


우울증을 오래 앓아오고 그리고 조울증까지 간 이후에야 병원을 찾고 나아지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과정 속에서 가끔 불쑥 솟구치는 욕구가 있다. 이 모든 것이 하얗고 깨끗하게 다 나아 나는 어떤 감정이나 상황이나 생각에도 아무렇지도 않고 모든 문제점이 다 사라지는 이상적인 상태를 꿈꾼다. 이런 이상적인 상태에 내가 도달해야 한다고 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아마도 어떤 순간 속에는 존재할 지 모르지만 내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는 아닌 것 같다. 조금씩은 어제보다 나아지고 또 가끔은 후퇴도 하고 후퇴하고 있다보면 나도 모르게 즐겁게 하려는 바도 이루고 발전의 속도가 빠른 나날들도 있겠지만 인생이 끝나지 않는다면 계속 인생은 덜컹덜컹 거리고 가끔은 삐걱거리고 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잡초로 무성해진것을 볼 수 있을 거다.


그치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김매기의 고단함과 즐거움을 동시에 알았다는 것. 그리고 정말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 중에 하나가 김매기라는 것을. 그리고 내 일상의 김매기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잡초는 나보다 훨씬 건강하고 빠르고 부지런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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