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사람
다른 사람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가족없이? 친구없이?
아니면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고.......
점점 내 속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줄어든다. 사실 이건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나는 경계없이 아이처럼 순수하게 솔직하게 직선적으로 마음을 얘기하다가 오히려 내 약점을 잡히고 공격당하고 짓밟히고 그런 일로 울고 있으면 'ㅉㅉ'와 같은 소리를 듣고 어린 친구들한테까지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충고나 듣고 있는 '구제불능'이었으니까.
오랜 친구 하나는, 그 친구는 오랫동안 그래도 이런 나와 함께 걸어준 그리고 점점 자신을 찾아간 친구이지만, 나에게 어쩜 그렇게 무모하게 사람에게 정을 주냐고 한다.
난 한 때는 '경계선 성격장애'를 앓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호구정책'을 쓰는 스타일이었던 것 같은데. 무조건 다 잘 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남이 연루되어 있으면 피해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내게 부탁하면 내가 부탁할 일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라면서 조금 무리해서라도 부탁을 들어주곤 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다 예상하다시피, 그렇게 부탁을 하고 내게 얻어갈 것을 다 얻어간 사람들이 내 부탁을 들어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게 당연한데도 나는 가끔 또 잊고 오랜만에 연락온 그들이 반가워 나도 모르게 부탁을 들어주거나 그들이 예상한 것보다 더 잘 도와주거나 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사람과 그러니까 주변 사람들, 친구들과 제대로 잘 지내는 방법을 몰랐던것 같기도 하고 특이한 재능을 지닌 덕분에(좀 튀는) 나는 그렇게 인식하지 않았지만 때로는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것 같다.
아주 우연히 엄마가 성명학을 공부하시는 분을 만나게 되었고 원래 신실한 가톨릭 집안인 우리 집에서 나의 이름을 바꾸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게 되었다.
지난 세월(내가 살아온 세월동안), 작년, 재작년. 특히 작년엔 공연을 준비하며 10살 어린 배우가 teach me a lesson하겠단 식으로 짓밟지를 않나, 거의 6살 어린 친구들에게 이건 너무 하다 싶을 정도로 짓밟힘을 당했다. 이런 고통을 호소하면 나의 '피해의식'으로 호도되곤 했다.
그런 심적 고통과 겪어 본 나만 알 수 있는 감정으로 점철되어 정말 무당집이라도 찾아갈 심산으로 유튜브에 나온 무당의 전화번호까지 저장을 하고 사주를 계속 검색해보고 타로도 해보고 별 이상한 짓을 하였다. 그래, 사람이 너무 힘들면 그런 쪽으로 빠지게 되나 보다.
성명학 선생님은 내가 객관적으로 나의 환경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나? 라고 스스로 의심하던 부분까지도 깨끗하게 정리해 주셨다. 한 마디로 내가 가지고 있는 무형의 재산이 많아 보여 빼앗아 가려는 사람들만 많다는 것이다. 인복이 없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준만큼 돌려받을 수 없고 일한 만큼 돌아오지도 않는다고 했다.
이런 사항보다 더 심각한 것은 내 예민함에 내가 공격되고 스스로 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었다. 무기력, 예민함. 한 때는 이런 날보고 열폭이라고 했지만 이건 열등감이라기보다는 뭐랄까, 그냥 아주 공허하고 거친 바람을 맞으며 혼자만 반대로 걸어가는 형상이거나 고흐의 자화상이거나 혹은 눈먼자들의 도시에서 혼자만 눈을 떠 있지만 아무도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상황과 닮아있다고 해야 하나.
어찌됐든 이제는 체념과 단념이 조금은 덜 마음아프다.
욕할 시간도 아깝다. 똥은 똥이 치우고 똥끼리 치고 박고 하는 것이지.
근데 요즘 그런 나의 상태가 명확해지다 보니 사람들을 더 가리게 되고 그치만 동시에 찾게 되고
또 동시에 혼자 고독하게 있어야 한다고 다짐하고 방어막을 더 치고 있다.
물론 소수의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적당한 선상에서 아름다운 만남을 지속해 나가고 싶다.
그리고 또 하나 연인에 대한 나도 심하다 생각할 정도로 미련하게 아름다운 사랑을 꿈꿨지만
그도 체념이나 단념, 혹은 차갑고 냉정한 마음 상태를 가지게 되었다.
수녀이면서 연예인인 그런 속성을 가진 나에게 심시한 위로를 전한다.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