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어디로 이어져 있나
슬퍼할 시간 조차 사치라는 말을 주입받으며 나는 꾸역꾸역 살아갔다.
어느 날, 문득 그녀의 죽음을 생각하니 밤 새 그녀가 마비된 상태로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내가 안았을 때 마지막 숨을 토해내며 죽었던 것이, 그 밤새 사경을 헤매면서도 내 품에 안기기를 기다렸기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 우연일 뿐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적어도 교감을 나눈 생명 간에는 말이 필요없는, 과학도 논리도 필요없는 진실이라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공교롭게도 내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에는 강아지가 옆에 있었다. 몸이 안좋아 시골로 내려갔을 때에도 난 방목당하고 있는 개들과 인연을 맺었다. 콜리 한 마리는 이름이 ‘사랑’이었다. 검은 개는 초코, 그녀의 딸은 아지, 그리고 또 다른 딸은 까미였다. 처음 오랜 만에 산골로 갔을 때 나는 사람에게 상처받고 많이도 지쳐있었다. 다 내게 무언가를 원하고 내가 내 쓸모있음을 하루 하루 증명하지 않으면 금방 대체되는 사람일 뿐이라고 느꼈다. 금방 대체되는 쓰다 버리는 종이컵같은 존재. ‘종이컵’이란 말은 누군가 기간제 교사나 비정규직을 지칭하는 단어로 들었다. 쓰고 버리는 사람. 모든 것에 질렸다. 마음은 내가 상처받은 만큼 닫혀있었고 내가 두려운만큼 상대를 상처줬다.
그런 내가 조금씩 돌아다니자 아지는 조금 거리를 두고 나를 따라왔다. 뭔가 느낌이 내가 퍽이나 걱정되는 눈치였다. 그리고 막상 쳐다보면 먼 산을 쳐다보며 딱히 나를 따라온 건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내가 가는 곳을 개들은 쳐다봤다. 아빠는 나를 걱정하면서도 일을 해야했기에 내가 없어지면 찾곤 했는데 개들이 일제히 쳐다보는 곳을 보면 된다고 할 정도로 개들은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 있었다. 작은 소일거리는 나에게 맡기기로 한 아빠는 묶여 있는 사랑이의 밥을 주라고 했다. 사랑이에게 밥을 주고 나는 쌀쌀맞게도 말했다.
“먹어!” 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너도 내게 원하는 건 밥 뿐이잖아!’라고 말했다.
다시 걸어가는 것이 힘겨워 잠시 앉아있었는데 허겁지겁먹던 여느 때와는 달리 사랑이는 내 옆에 얌전히 앉아 ‘난 밥만 원하는 건 아니야. 사랑을 원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다소 놀랐던 나는 그냥 자리를 떠나왔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조금씩 피아노도 치고 산책도 하기 시작했다. 밭에서 보초를 서던 사랑이는 내 모습이 보이기만 하면 자기 집 위에 올라가 컹컹 짓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거쳐서 나는 사랑이 털을 빗겼다. 딱히 사랑이에게 애정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더운 여름 털이 엉킬대로 엉킨 모습이 보기 안좋았기때문이었다. 잠깐씩 털을 빗기면 한 웅큼씩 나왔다. 두 손 가득이었다. 그리고 손에 땀이 날만큼 따뜻했다. 일주일이 지나니까 아주 커보였던 사랑이는 3분의 1이 줄어있었다. 그게 다 엉킨 털이었다. 사랑이 목욕을 시키려고 하자 아빠는 내가 쓰러지겠다며 목욕을 같이 시킨다고 하셨다. 아빠랑 커서 무언가를 같이 하는 일은 처음인 것 같았다. 그리고 피아노를 치고 쉬고 있었는데 아빠가 내려와서 사랑이가 할 말이 많은가보다고 했다. 아빠가 일할 때는 피아노 소리가 안들리는데 사랑이한테는 들리는 모양이라고 한 시간 내내 짖었다고 했다. 아래 집에서 초코와 아지 등 작은 강아지들이랑 내가 아주 재밌게 논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라고 했다. 뜻밖에도 아빠는 사랑이를 밭에서 집으로 내려와 묶어 놓아 보자고 하셨다. 다른 아이들을 묶어 놓고 사랑이를 데리고 왔다. 한 동안은 강아지들의 짖는 소리가 가득했다. 사랑이는 아주 질투가 많아서 내가 초코를 쳐다만봐도 나를 보고 짖었다. 꼭 자기만 쳐다보라는 것 같았다. 그 동안 그저 아이들과 놀고 싶어서 였는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묶어 놓지 않아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사이가 좋아 졌다.
식사를 하면 아이들은 문 밖에서 문 턱에 턱을 괴기도 하면서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리곤 했다.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은 오후 쯤 산길을 따라 걷는 산책 시간이었다. 나는 그러면서 조금씩 체력을 회복하고 할 말이 없던 부모님과 아이들 얘기를 하면서 웃기도 했다. 마음이 쳐져서 산책을 하기 싫을 때면 아이들은 문 밖에서 내가 언제 나오나 기다리면서 산책 시간에 맞춰 낑낑거리고 꼬리를 흔들며 오히려 날 산책시켜주곤 했다. 산책 할 때는 각각 역할이 달랐다. 사람의 손을 거의 타지 않은 아지는 먼저 가서 정찰대처럼 여기 저기 신출귀몰하며 날렵하게 뛰어다녔고 초코는 그 뒤를 이었다. 사랑이는 애들을 따라가다가 내가 뒤쳐진 내가 걱정되어 다시 내려와 내 뒤까지 와서 나를 밀어줬다.
휴직 기간은 끝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가끔씩 가서 아이들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사랑이는 왜 그 동안 안왔냐면서 낑낑거리면서도 짖거나 하면서 꼭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빨을 보이며 웃기도 하고 사랑이 발이 아픈 것 같다고 부모님과 얘기하고 있으면 문 턱 안으로 자기 발을 넣어서 보여주기도 하던 놈이 었다. 자기 말고 다른 아이 얘기를 하면 한 쪽 발로 옆에 아이 머리를 지그시 누르기도 했다. 질투도 많듯이 사랑도 많았다. 다른 아이를 혼내려 살짝 엉덩이를 때리기라도 하면 그 곳 냄새를 맡기도 하면서 살뜰하게 챙겼다. 산길을 걷고 뛰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이 곳이 천국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아빠는 죽어서 천국을 가는 것이 아니라 사는 동안 천국을 느끼는 것이 먼저라고 말하시곤 했다. 한 번은 사랑이 만한 멧돼지 두 마리를 만나 ‘도망가자!’라는 말에 전속력으로 달려 내려온 적도 있다. 물론 느린 나를 두고 아이들이 먼저 다 내려갔지만 말이다.
시간이 흐르고 사랑이는 늙고 병들어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아지 또한 얼마 안 있어서 어딘가 구석에서 죽은 채로 발견이 되었고 초코는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한 세월이 지나간 것이다. 강아지를 보면 생각한다. 항상. 똑같은 길을 가도 새로운 길처럼 꼬리를 흔들며 신나게 걸어간다. 나는 항상 똑같다며 우울한 표정이었고, 또 지나간 일의 악몽을 떠올리며 가끔은 비명을 지르곤 했다. 그러면 사랑이는 와서 내 손을 핥아주곤 했다. 강아지 꼬리는 좌우로 명랑하게 흔들리면서 내 마음을 살살 달래주는 듯 했다. 그들의 털 궁뎅이를 보며 산길을 가는 것이 푸르른 자연 속에서 소리도 지르며 노래도 부르며 나에게 그 어떤 약보다 더 큰 약이 되었던 것 같다.
그 아이들이 떠나고 어디에선가 반려견이 죽은 후 위로하는 어른들에게 한 아이가 강아지는 항상 사랑하기 때문에 일찍 떠날 수 밖에 없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그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더 오래 사는 것뿐이라고 한 말을 봤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보다 7배 빨리 시간을 보내고 내 마음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내 웃는 표정을 흉내낸다며 안 어울리게 이빨을 내밀면서 찡그리며 웃었던 아이들. 나중에는 사냥도 하게 되면서 흥미 진진한 추억을 안겨주었던 아이들이었다. 가끔은 근거도 없는 그런 말들이 내게 위안을 준다. 내가 죽으면 그 무지개 다리 길목에서 내가 연을 맺었던 반려동물들이 모두 나와 나를 마중하고 있다고. 그 장면을 생각하면 천국이 따로 없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그 아이들처럼 코 앞에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개처럼 사랑하고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