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리고 흐리고 또 흐리다 뭐가 내릴까
잠에서 깨면 며칠 전의 상처가 가슴을 후비고 찾아온다. 브런치의 글들을 읽다가 다시 잠을 깨고 커피를 타서 맥북을 안았다.
맥북 위에 우리 삼바가 이렇게 살포시 앉아서 나의 글쓰기 의지를 시험했다. 삼바를 가슴에 끌어당겼다. 내 손이 닿자마자 골골송을 부른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삼바와 왈츠의 2번째 예방접종을 했다. 나에게는 큰 돈이 날아간다. 의사샘이 저번이랑 달랐다. 의사샘이랑 도와주시는 분은 귀여울 때 빨리 입양보내라고 하셨다. 오는 길에 왈츠가 너무 울어서 꺼내서 안았다. 그래도 저꾸 울었다. 왈츠가 우니 삼바도 울었다. 삼바도 꺼내서 안았다. 삼바는 무서운지 내 품 속으로 파고들어서 내 외투 속 어깨를 타고 가서 팔에 안착했다. 어깨 뽕 들어간 것처럼 고양이 두 마리가 양 어깨에 있다가 삼바는 내 손목에 얼굴을 대고 그 상태에서 눈을 감고 안정을 취했고 왈츠는 계속 불안한지 속을 썩였다. 소리가 커서 택시도 못 타겠고 버스는 더더욱이나 안될 노릇이라 계속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어두운 골목길을 걸으며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했다. 몸도 힘들고 이 두 마리의 삶의 무게가 날 짓누르는 것 같았고 글을 쓸 용기가 사라지고 뭔가 쓴다는 것이 두려워졌다.
집에 왔다. 울음 소리가 뚝 그친다. 뭐가 그리 무서운 거니. 삼바는 애교도 많고 호기심도 많고 별 생각 없이 걍 내 소매에서 잘 눈감고 있었다. 왈츠를 보내버릴까. 입양을 보내려면 두 마리 다 보내야겠지. 걱정이 늘었다.
태평한 삼바는 여러모로 사랑을 많이 받는다. 종종 라라도 삼바를 핥아주고 왈츠도 지극 정성으로 삼바 귀를 핥아주는데 삼바는 누굴 핥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내 손가락 정도.
이사 한 후 라라가 허술한 방충망을 뚫고 가출을 하고 창문을 잘 안연다. 아직 못 고쳤다. 예전엔 창문 위에 잘 올라가서 앉아있었기에 안쓰러웠다. 가끔 안고 같이 창문을 본다. 그러면 삼바가 뒤에서 냥냥대면서 자기도 보겠다고 한다. 같이 안으면 라라가 속에서 끓어오르는 소리로 불쾌하단 표시를 한다.
라라야. 오늘 비가 내릴까. 눈이 내릴까.
난 오늘 오랜만에 모닝페이지를 썼다.
겨울엔 독서를 많이 하고 많이 쓰기로 했다.
담담하게 같이 일상을 나누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