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것을 잊다
골반이 뒤틀리고 허리 통증이 오래된 후 있었던 일이다.
술자리를 하고 좀 어지러워 쪼그려 앉아서 한 숨을 쉬었다.
그런데
숨을 그 동안 안쉬고 있었던 사람처럼
등 뒤 날개뼈 아래가 뻐근했다.
마치 1,2년은 숨을 쉬는 것을 쉬고 살았던 사람의 몸이
화석이 되기 전 뼈 사이에 침전된 모래를 털며
숨을 비로소 쉬는 듯했다.
이런 감각은 매우 생경했다.
그 동안 나는 숨을 어디로 쉬고 있었던걸까.
혹시 오랫동안 숨을 얕게 쉬어 왔었기때문에 몸이 아파왔던 걸까?
아니면 몸이 아팠기때문에 얕게 숨을 쉬었을 수밖에 없었던걸까?
깊게 집중하지 못하고 트위터를 하며 짧은 문장만을 읽어나가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어디선가 봤던 트위터에서 봤던 말이 생각났다.
‘비명을 지르지 않으면 인간은 몸 속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리고 그 비명은 숨이 없기때문에
쉬지 않고 계속 지르고 있다.’고....
사물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그것이 너무도 단순하고 친숙하기 때문에 우리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늘 눈앞에 있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기본적으로 탐구해야 하는 것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법이다. — 비트겐슈타인
정말로 아름다운 책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 저자는 비트겐슈타인을 인용하며 ‘몸의 감각을 갑자기 모두 잃은 크리스티너’란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크리스티너란 환자는 쓸개제거수술을 받기 위한 과정에서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고유감각’을 잃은 환자이다. 여기서 ‘고유감각’이란 셔링턴이 1890년에 발견한 숨겨진 감각이다. 셔링턴은 ‘우리의 비밀스러운 감각 즉 제육감’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이는 근육, 힘줄, 관절 등 우리 몸의 움직이는 부분에 의해 전달되는 연속적이면서도 의식되지 않는 감각의 흐름을 말한다(<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제육감은 우리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확신하는 오감말고 숨겨진 감각인 셈인데, 이는 자긴이 자신임을 아는 감각, 몸이 자기의 것임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이라고 했다(셔링턴, 1906, 1940).
이 책에서 크리스티너는 마치 몸이 없어진 것 같다고 했다. 이를 듣고 올리버 색스는 놀라고 당황했으며 이상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크리스티너의 검사결과 고유감각 전체가 전부 손상되었고 팔,다리, 근육을 자기 통제 하에 둘 수 없는 이유는 위치감각 즉 고유감각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나는 당연시 하던 호흡을 다시 재활하듯 해볼 필요가 있었다.
호흡을 얕게 코로만 하고 있었고, 그리고 날개뼈 뒤 늑골 쪽으로 긴장이 너무도 깊이 들어온 나머지
깊게 호흡하지도 않았다. 깊은 숨이 단전으로 들어간 적이 언제 였을까, 생각했다.
한번은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갑자기 공황이 찾아온 적이 있다.
누워있는데 무언가 크고 무거운 것이 지그시 눌러서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가 없었다.
크리스티너처럼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고 발 아래가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그와 비슷하다고 말하면 비약일까. 손을 움직이고 핸드폰을 들어 겨우 겨우 친구에게 말을 꺼냈다.
친구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는 내가 일어나서 물을 한 모금 마셔보겠다고,
한 시간안에 연락이 또 없으면 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하지만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일어나서 물을 마실 수는 있었지만 움직일 수 없을 것 같다는 그 당시의 공포스러운 순간과 기억은 아직도 조금은 두려움으로 남아있다.
책 속의 크리스티너는 모든 동작을 하나하나 억지로 힘들게 해야 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서 있고 팔을 움직이게 되고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자뭇 그 동작이 발레리나의 것과 같았고 목소리와 대화 톤도 일상의 것보다는 배우의 톤과 비슷해졌다고 했다.
그 대목을 읽으면서 크리스티너의 경우처럼 심각하고 유래 없는 병의 예를 통해 ‘내 몸을 내 몸으로 감각한다’라는 제육감이 우리가 너무도 당연시해서 관찰하고 탐구하지 않는 일 중에 하나가 호흡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긴장을 할 때 드라마에서 깊게 숨을 쉬어라는 말을 하는 것은 들어봤지만 내 일상에서 그렇게 깊게 숨을 쉬고 다양한 자세로 숨을 쉬어 보는 일은 일부러 요가나 필라테스를 하지 않는 이상 거의 하지 않는 일이다.
언젠가 Jessie j 라는 가수가 오디션에 참가한 사람에게 조언을 하다가 노래를 다시 시작하자 무대로 나가 같이 부르면서도 계속 했던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숨을 쉬어. 숨을 쉬어.”
노래를 하면서도 계속 숨을 쉬고 있으라는 말이 처음엔 생소했지만 참가자의 노래가 매우 딱딱하고 직선의 형태였다면 jessie의 노래는 입체적이고 편하게 들렸다.
글을 쓰면서도 숨을 계속 쉰다는 것은 ‘힘을 뺀다’는 것과 같은 말인 듯 하고 또 모든 동작에 있는 당연히, 필연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어서 무의식에 가까운 ‘숨 쉬기’를 재인식하는 과정이 다시 망가진 내 몸과 긴 슬럼프를 적어도 안정선 안에는 들여 놓을 수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머뭇머뭇 생각하면서
길게 숨을 쉬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