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게 말걸다 1

살풀이를 배우다

by moonbow


고등학교 때 김매자 무용단이 주로 공연을 볼 수 없는 지방으로 왔다.

그 때의 공연이 기억이 나는 것은 실제로 한국무용 공연을 본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살풀이’라는 춤을 보고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내가 그 춤은 아름다운 것 같다고 하자, 누군가는 살을 풀어내는 무서운 춤이라며 한 소리를 했다.

살풀이는 액운을 막아내고 한을 풀어내는 움직임을 춤으로 승화시킨 것이라

‘한’, ‘액운’, ‘살’때문에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난 그 모습이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뒤늦게 대학원에 와서 예전에 접해볼 수 없었던 수업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살풀이도 그 중 하나였다.

이매방류 살풀이를 배울 수 있었는데 전공자들 틈에서 허리디스크의 징조를 가지고 있었던 몸으로 따라가기에도 무리였고 졸업을 앞두고 수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2년 남짓 한 시간이 흐르고 한영숙류 살풀이를 배우게 되었다.

그 사이 내 몸은 허리 디스크 진단을 받은 후 였고 몸에 독소와 말 그대로의 살이 잔뜩 낀 상태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동작같은데 박자를 따라갈 수 없으니 헤매기만 했다.


내 팔이, 발이, 다리가 대체 어딜 향해야 하는 지, 어디서 리듬을 타야 하는 지 어색하기만 했고

정적인 움직임이라 그 정도 까지 힘들 줄은 몰랐

던 나는 혼줄이 났다.


그래도 몸은 음악과 리듬에 적응해나갔다. 아주 조금씩. 그리고 계속된 반복으로 동작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기억하는 느낌과 감각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듬과 음악이 저절로 몸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느낌이 조금이나마 알 수가 있었고

조금씩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내 몸은 망가진 지 오래였고 내 머리는 예전의 내 몸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 계속 땀은 흐르고 눈에도 들어가 따가웠다. 계속 거울을 보며 춤을 추니 내 몸의 움직임을 정면으로

보고 싶지도 않았다.


어느새 경직되어 올라간 어깨, 앞쪽으로 기울어진 골반과 삐딱한 고개.

외면했던 내 몸을 바라보아야 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냥 단순해 보일 수도 있는 동작과 음악에 몸을 오로지 맞기는 순간들의 모음이었다.

항상 너무 많은 생각으로 어지럽혀져 있는 머릿속이 환해지는 시간이었다.

머리를 비우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게 허락된 시간이었다.


굳어진 몸에 나는 다시 말을 걸고 있었다.


예전같지 않은 움직임과 삐걱거리는 관절과

자잘한 좌절과 분노로 쌓아왔던 ‘살’들을 풀어내면서.


체험에 가까운 배움이었지만 몸을 움직이면서 머리를 휘젓는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는 쾌감을 느꼈다.

움직이면서 흔들리지 않는 순간들.


아, 역시 몸의 수고스러움이 있어야 마음이 휘저어지지 않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