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어리석은 움직이지 않는 자가 안무가이자 무용가와 한 이야기 1
학교를 다니며 뮤지컬 대본을 쓰게 되었다. 사실 난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까지 뮤지컬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음악극창작과’라는 다소 포괄적이고 추상적이며 모든 가능성을 담은 듯한 그 단어에 속았다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나도 정말 대단하다. 그런 무지의 상태로 학교에 입학했으니.
학교에 와서 많이도 치이면서 대본을 쓰다보니 의외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무용 대본같아 보인다는 말이다. 나는 무용이 대본이 있는 지도 또 안무가 말고 대본이 필요한 지도 몰랐던
문외한이다. 대신 어떤 계기로 공연은 많이 보지 않았던 20대에 현대무용 공연은 종종 접했고 그랬던 탓인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나의 성향때문인지 공연을 보러가면 뭔지 몰라도 가장 좋았던 공연들은 무용 공연이었다.
내가 유년시절부터 의존하고 그로 인해 살아갔던 음악과 시작과 끝을 같이 하는 공연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치이고 또 치이고 분석하고, 또 분석하는 ‘말’들의 문을 닫고 표현하는 장르여서 그런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래서 였을까, 어렸을 때 특집 드라마로 예고편에서 배우 채시라가 분한 최승희라는 인물이 생각났고 나는 그를 모티브로 송 라이팅도 하고 또 45분 뮤지컬을 쓰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해서 만나게 된 분이 안무가이자 무용가인 정소연이다.
그를 알게 된 지 그래도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긴 몸과 꼿꼿한 자세와 크게 변화 없이 고요하고 안정적인
얼굴 표정이 특히나 수십년에 걸쳐 무용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다웠다. 무용에 따라서 체형과 성격도 ㅡ 혹운 성향도 조금씩은 달라보이는데(편견일 수도) 한국무용을 계속하고 있어ㅓㅅ그럱
그런지 말도 조용조용, 내 기준으로는 천천히, 차근차근 이야기하셨다. 아마 본연의 성향이 크겠지만 처음 나에겐 그 모든 것이 무용가가 가지고 있는 기본 자세와 호흡처럼 보였다.
이야기도중 예전부터 무용은 어머니의 뜻이었고 드러나고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이 다 운명이 있는걸까, 나는 그렇게 원하던 음악을 직접하지는 못하고 그 언저리를 돌고 있지만
그렇게 본인이 정말로 원하는 것과 다른 형태로도 보이지 않는 어떤 끈은 이어지나보다.
내가 봤을 때는 무용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 부분은 당사자가 생각할 때는 후천척인 요소로 인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그가 안무 작품을 준비하다 갑작스럽게 걸려온 전화에 2시간을 넘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후 그 작품을 보고, 또 작품을 본 후 나눴던 이야기에 대한 나의 인상은 안무가는 음악가이자, 연출가이자 또 이야기를 하는 작가구나.
과연 굳이 내가 끼어들 틈이 있을까?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작업한 무용 작업을 하며 언뜻 들었던 것은 안무가와 무용가는 항상 대본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정소연 안무가도 내 글에 영감받아 작품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지만 지금 내 상태는 다시 한글을 배우며 쓰고 싶은 마음과 따라주지 않는 몸둥아리 사이를 이리저리 횡설수설하며 휘젓고 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살풀이도 배워봤겠다, 오랜 만에 만난 그와 스몰토크를 하며 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전에는 언니들은 어떻게 저렇게 어디가 아플 때는 뭐를 하고 요즘엔 어디가 아프고 어떤 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이런 이야기만 하나 신기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는데 요즘 내가 그렇다. 아니, 좀 예전부터.
예전부터 무릎이 안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대에서는 그렇게 자유로워보이고 고통하나 없어 보이지만 직업병은 어떤 직종에나 있는 법인가보다. 의사가 언제까지 춤을 춰야 하냐고 물었다는 말에 나는 다소 충격을 받았지만 그는 나름의 방법으로 몸을 꾸려나가고 있는 듯 했다.
그는 하나 6개월을 매일 출근을 해서 운동을 했다고 했다. 간단히 챙겨먹고 유산소 운동과 근력운동을 하며 체질이 바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꽤 시간이 지나자 아무것도 추가로 하지 않았는데 살이 많이 빠졌다고 했다. 나로서는 경이로운 이야기였다. 이미 어떤 웅덩이에 빠진 나는 매일의 루틴적인 운동하는 삶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어졌고 예전처럼 매일의 운동을 이어나가자면 ‘엄청난 강박’을 연료로 쓰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직업적인 면에서, 건강의 측면에서 몸으로 말하지 않는 나도 너무도 운동의 필요성을 머리로만 알고 있지만 매일 걸려 넘어지는 꼴이었다.
그는 직장에서 매일 하는 몸풀기와 루틴인 무용이 생각보다 엄청나게 지겨운 것이라고 했다. 무용가나 운동선수들이 본 연습시간만큼 시간을 들이는 일이 몸풀기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되면서도 매일 하는 동작들의 계속되는 반복, 그것이 일상이라면 나같이 지루한 것을 못 견디는 인간은 참기 힘들것 같았다. 그는 당연히 그 작업이 귀찮고 지루하고 힘든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무료하기까지 한 시간을 그는 순간순간 몸과 느낌에 따라 착실하게 보내온 것 같다고 회상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다보니 ‘습’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다시 느꼈다.
(왜 중요한 것은 당연하고 단순한 것일까!)
어쩌다가 다른 장르의 무용을 하는 분들과 작업을 하게 되면 안무가나 무용가일지라도 매일 몸을 풀고 자주 공연을 하고 하는 정도가 무용가마다 다르다고 하는데, 그는 그냥 동작을 하고 있었을 뿐이고 어려운 동작도 아니었다고 하는데 ‘쟤는 매일 그래도 직장에서 몸을 풀고 쓰고 하니까 저 움직임 다른 거 봐. 몸에 기름칠이 돼 있네.’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웃었다. 기계처럼 기름칠이 되어 있다고 말 한 것이 한 번에,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었기때문이다.
살풀이에 대한 이야기를 풀자, 왜 그렇게 단순한 동작이 땀이 삐질삐질나면서 어려운지 나만 살이 찌고 운동부족이라 힘든 건지 여쭤봤다. 힘든 게 당연하다고 해서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렇게 살풀이 안에서 움직이는 단순히 두 팔을 들어올리는 동작은 일상에서 두 팔을 들어올리는 것과 들어가는 에너지가 다르다고. 어쩌면 당연한 이야긴데 ‘훨씬’에너지가 들어가는 일이라고 하니 조금 나에겐 희망적이었다.
내가 배운 살풀이 교실은 전통나눔배움학교에서 열린 강좌라 어머님들, 아버님도 계셨다. 그 분들은 무릎만 아프다고 하소연하셨지만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으셨는데 그 분들의 움직임과 선생님의 움직임의 차이를 살펴보면 에너지의 크기가 어떻게 다른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일상에서의 움직임의 느낌과 호흡의 차이를 별로 느낄 수 없는 경우, 몸 안에 음악을 느끼는 것 같은지의 여부가 보기에 달라보이는 데 큰 차이를 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