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말하는 자와 말로 몸에게 닿아가려는 자와의 대화

다소 어리석은 움직이지 않는 자가 안무가이자 무용가와 한 이야기2

by moonbow

이야기 중에 난 그에게 막연하게나마 생각하고 있는 작품 스케치에 대해서 들었다.

예전부터 무용을 직접하는 것이 본인의 성향과 맞지 않고 본성에 거스르는 일이라고 이야기했는데,

거기서 착안된 발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움직이는 것보다 더 큰 쾌감을 느끼는 일’과 관련된 스케치라고 했다. 그런 고찰과 탐구에 이르게 된 경위를 들으면서 공감하면서도 나와는 너무도 다른 상황이니 신기하기도 했다. 자연히 내 ‘무기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사실 하소연)


다소 어리석은 자: 저번에 본 공연에서 언니가 마지막에 안무가로 나와서 인사하는데 언니만 목이 엄청 길어서

예쁘면서도 한편으로 진짜 놀랐어요. 언니 얼굴 길이만큼 목이 길어요.


몸으로 말하는 자: 아무래도 한국무용이 자세가 그렇다 보니까 어깨를 내리는 일이 중요해. 그리고 계속 그런 자 세를 고수하다보니 몸에 밴거지.


다소 어리석은 자: 그래도 언닌 유난히 목이 길더라구요. 하하

근데 저도 한 번 느꼈는데 운동을 배우다가 귀 끝이랑 어깨를 최대한 멀리하라고 하는데

너무 아팠어요. 그리고 평소에는 고개를 삐딱하게 유지하고 있었고 엄청 움츠리고 있는 자세가 제 성향과 불안과 자신감없어 보이는 내면을 너무 보여주는 것 같았구요.


몸으로 말하는 자: 그럼, 유나. 그거 정말로 중요한 거야.



다소 어리석은 자(많이 어리석은 것 같다): 그래도 신체적으로 저는 언니만큼 목이 긴 것 같진 않아요. 하하

자세(posture)만 바꿔도 심리적으로 호르몬이 바뀐다는 연구도 있다는데 의식적으로라도, 언니는 억지로라고는 했지만 무용을 하며 그런 자세를 해서 마음도 수련이 되지 않았을까요.


몸으로 말하는 자: 그런 측면이 있지.


다소 어리석은 자: 근데 전 그래도 운동도 이것저것 해보고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잘하는 편이기도 했고 그런 걸 느끼면서도, 알면서도 점점 몸 자체는 죽어가는 것 같아요. 엄청 무기력해요.

(수치심때문에 거의 움직이지 않고 누워만 있을 때도 많다는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몸으로 말하는 자: 그럼, 유나야. 움직이지 않음으로 써 얻는 쾌감과 움직이지 않아서 얻는 쾌감 중에 뭐가 더 큰 것 같아?


(다소 어리석은 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이라 진짜 바보가 되었다. 그리고 살풀이를 했을 때나 그냥 집에서도 누워있을 때보다 그냥 괜히 오버하면서 고양이들을 놀래키면서 아무렇게나 잠깐이라도 막춤을 추거나, 이해안되는 행동(어린 아이처럼 이상한 동작을 하며 걷는다든지...상상에 맡김) 을 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움직였던 편이 훨씬 재미있었다.)


다소 어리석은 자: 움직이는 편이 쾌감이 더 큰 것 같아요.



이렇게 대답하고는 다음 날 아침 그 질문이 머리를 계속 맴돌았다. 움직이는 것이 더 쾌감이 큰 데 나는 왜 그 쾌감을 느끼기위해서 더 움직이려고 하거나, 아 빨리 쾌감느껴야지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움직이지 않는가?



어리석은 자 : 생각해봤는데 움직일 때의 쾌감을 최근에 많이 못 느낀 것 같아요. 쾌감은 고통을 수반해서 그런지


몸으로 말하는 자: 순간이라도 온전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면? 쾌감이 고통을 이길 정도라면?


어리석은 자: 그러면 그 쾌감을 따라 갈텐데, 예전에 운동샘들이 저한테 아프고 고통스러운 거 참 싫어한다고 그러더라고요. 다들 그렇지 않나 생각햇는데 유독 고통에 예민, 민감하다면 그 기억이 더 강렬하게 인식되나봐요.


몸으로 말하는 자: 아프고 고통스러운 거 좋아하는 게 변태지. 하하


어리석은 자: 그래서 쾌감을 기억하는 작업을 1분이라도 하면 도움이 될까 싶더라구요.


몸으로 말하는 자: 이런 피드백 좋다.


어리석은 자: 그래서 혼자 타로카드에서 제 무기력에 대한 카드를 뽑아 봤더니 ‘흐름 거스르기’, 이런 카드가 나왔어요. 그 카드가 짐들고 바람을 맞으며 황량한 산을 올라가는 그림이라, 너무 힘들어 보여서 다른 카드를 또 뽑아 봤더니 ‘영혼의 축제’인가 여자들 몇 명이 신나게 춤추는 그림이더라구요.


몸으로 말하는 자: 어떻게 해석이 가능한 거야?


어리석은 자: 걍 느낌으로는 흐름거스르기는 이제까지의 관성을 거스르려면 힘들어도 짐을 들고(내 몸..)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시련을 견뎌야 한다는 것 같고, 그 다음 카드는 그러고 나면 축제처럼 자유롭게 즐기게 된다는 거 아닐까요?


몸으로 말하는 자 : 어쨌거나 움직여야 ㅎ나다는 거네?


(답이 너무 명확해서 절망하는 어리석은 자)


어리석은 자: 쾌감보다 관성의 힘이 더 클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어요. ‘습의 무서움’ 그래서 연기하는 사람은 너무 연기하면(어색해보일 정도로 과장된) 보기 힘든데, 안하는 연기가 더 힘들 수도 있잖아요? 연출도 빼는 게 힘들고, 사실 어떻게 보면 안하는 게 힘들고. 코코 샤넬도 집 밖에 나갈 때 악세사리 하나 이상 빼고 나가라고 하고. 글 쓸 때도 한손으론 쓰고 다른 한손으로는 지우라고 하는데(그럼 대체 뭐가 남죠?) 지우는 게 쓰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다고 하는 거 보면.


몸으로 말하는 자: 어떤 분야에서건 힘 빼는 건 고수들의 몫인데.


어리석은 자: 언니의 안움직임의 쾌감은 관성을 멈춤으로써 몸에 가득찬 느낌이지 않을가 싶기도 하고. 언니 원해 성향과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몸으로 말하는 자: 본능이나 기질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뒤틀어 볼 수 있겠다


어리석은 자: 좀 보편적으로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해요. 인간은 생의 본능때문에 너무 울다보면 웃게 되고 너무 웃으면 죽으니까 울게 되고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몸으로 말하는 자: 그러니까....


어리석은 자: 요가할 때 좋을 게 마지막 송장자세를 제대로 하기 위해 한 시간 동안 삐질삐질 땀흘리며 안간힘을 썼구나. 그런 생각 했어요.


몸으로 말하는 자: 진짜 송장이 된건가? 하하



어리석은 자: 긴장된 근율을 수축 팽창 늘리고 그제야 편히 눕는 것 같아서.


몸으로 말하는 자; 진짜 송장 만드는 경험이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것 같아.


어리석은 자: 1,2분? 이 정도 누워있었는데 되게 시간이 길게 느껴졌거든요. 그니깐요.


몸으로 말하는 자: 그러지 않아도 알겠다고 시건방을 떨어도 그래봤기에 아는 것일텐데.



움직임을 다 해야, 아니면 유한한 신체를 쓸 수 있을 때까지 쓰다가, 아니면 오용, 남용하다가 죽음에 이르는 것인건가.


어찌됐든 살아 있는 동안에는 쓰지 않아도 될 힘을 너무 주고 있으니 그 힘을 빼기 위해서는 움직임을 해야 편안한 찰나의 송장을 경험할 수 있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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