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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bow Jul 11. 2021

등장인물과 함께 하는 -k

지긋지긋한 K


등장인물과 함께 하는 여담 - K




K가 핫 한 알파벳이 되었다. 무엇이든 K를 붙이면 그럴 듯해지고 세계의 유행을 선도하거나 아니면 세계의 그 어떤 나라도 잘 할 수 없는 일을 해낸다든가 하는 일들을 행하는 나라가 되고 있다.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그저 묵묵하거나 아니면 열심히 아니면 작은 재능에 몰두하는 위대한 한국인들 몇몇의 노력때문인데 근데 이제 이렇게 크게 만들어진 파도에는 누구나 올라타려고 ‘K’를 남발하게 된다. 그 어디에나 k를 붙인다. 사실 k는 예전에 한국 소설을 자주 읽었을 즈음에 단편소설에서 전남친으로 나오는 누군가였다. 혹은 그저 등장하는 어떤 남성이었는데 ‘그는, 그녀는’ 이라고 주어를 쓰는 것이 당연히 번역투의 말투여서 쓰게 된 것인지, 여하튼 k가 종종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니면 연우라든지, 재현이라든지 사람의 이름을 주어로 써야 하는데 무언가 더 익명성을 가질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공감력을 끌어 올릴 이니셜이 ‘k’였기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한국엔 김씨가 진짜 많으니까 아무개라는 표현으로도 ‘k’가 딱이다.




그리고 또 생각나는 k는 카프카의 <심판>에서 k 인데, k는 갑자기 들이닥친 사람들에게 잡혀가서 무엇인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도 실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해 심판을 받는다. 하도 오래전에 읽었고 또한 그 내용 또한 매우 안개 속을 걷는 느낌이어서 잘을 모르겠지만 인생이란게 갑자기 끌려와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또 그렇다고 하기엔 억울하고 답답한 질문에 답을 해야 하거나 해명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공감을 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K 의 위력을 앞으로도 계속 될 것 같다. 생명력 하나로는 정말 어디 내놔도 대단한 부분이 있는 사람들이라 스스로 내가 성실하거나 아주 악착같이 살아가지 못할 때에는 나는 ‘한국사람처럼 살 수가 없어!’라며 좌절했던 때도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K의 피로’도 나올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백 래쉬로 어떤 다른 쪽에 살던 인류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 그것을 그저 볼리 없는 인간의 본성 탓인지 아시안 혐오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가히 혐오의 시대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지경에 혐오를 나타내는 신조어들이 계속해서 나온다. 이 언어들은 작년에는 그저 웃기는 말이었다가 어디에서 많이 쓰는 말이 되자 마자 ‘혐오 언어’가 되어 버려 그 말을 쓰게 되면 HATER가 되어 버린다.




나도 성질이 참 순하긴 한데 독특하고 히스테릭하고 예민하기도 하고, 뭐에 꽂히면 파고 드는 면이 있어서 가끔 미친 자가 되곤 한다. 예전에는 이런 모든 나의 성질을 죽여야 하고 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것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의 본성은 인정 하되 성숙해지는 수밖에 없기도 하다.




K는 그런 면에서 한국 단편 소설에서 전남친이나 혹은 뜬금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불편한 인간이 아니라 거기서 좀 더 나아져야 한다. 오늘도 난 갓난아기때는 울음이 없어 순하디 순하고 웃음이 많았던 아이라 엄마한테 복받았다는 말을 듣게 했는데, 지금은 욕을 점점 더 잘 하는 인간이 되어 가고 있다. 그렇다고 욕을 한다는 것이 다 나쁜 것이 아니지만 싫어하는 것을 한 번 더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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