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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bow Jul 11. 2021

등장인물과 함께-소녀 <연인>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연인>에 나오는 소녀는 프랑스 인으로 베트남에서도 하층민이 생활하는 


곳에서 살아간다. 그 곳에서 우연히 배를 타고 오빠의 모자, 엄마의 구두, 남자 벨트를 린넨 원피스에 걸친 여성(소녀)에 한 눈에 반한 중국인을 만난다. 그가 소녀를  학교까지


태워준다. 둘이 대화하며 소녀의 숨결 하나 하나에도 사시나무 떨 듯 설레고 긴장한 


남성의 모습은 어렸을 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저 느끼한 이상한 아저씨!!’ 라며 욕을 


했던 것 같다. 좀 보다가 청소년 관람불가였기 때문에 엄마한테 쫓겨난 걸로 기억한다. 


아닐 수도 있다. 확실히 ‘사랑과 영혼’볼 때는 쫓겨났다가 야한 장면이 끝나고 안방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 영화는 아리까리하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애를 낳으러 가신 역사 선생님 대신 수업을 하러 온 대타 선생님이 


계셨는데 고작 우리랑 8, 9살 정도 차이밖에 나지 않았을 것이다. 주로 수업보다는 


첫 사랑 이야기, 첫 키스 이야기를 해주셨다. 중요한 건 우리가 물어 보지도 않았는데 


먼저 이야기하는 타입이었고 너무 생생하게 묘사하셔서 듣기가 좀 힘들 지경이었다. 


그래도 하나 기억나는 이야기는 아무도 집에 없을 때 벌거 벗고(여자 선생님이셨다.) 거울을


보고 자신의 몸을 그려보라는 이야기였다. 웅성대는 애들 사이에서 아름답지만 아름답지도 


못한 그 때가 언제나 항상 있어주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아마 개개인의 그림실력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쓰지 않은 발언이었는데 그림 그리기보다는 아마 그 당시의 젊음을


잘 감상해보라는 이야기로 생각된다. 그러면서 언급한 영화가 바로 이 <연인>이라는 


영화였다. 본 영화인지 아닌 영화인지 인식하지 못하면서 이 영화를 다시 봤을 때는 


30대 중반 즈음이었다. 



글을 쓰면서 남자가 사랑할 때(소설 속에 나오는 거 말고 ) 진짜 어떤 마음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고 그저 남자가 비겁해질 때만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기때문에 남자 입장


에서 그 마음을 알 턱이 없었다. 나보다 어린 동기들은 내가 남자 마음을 잘 모르겠다는 


말에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그치만 그것은 진실이였다. 게다가 남자도 사람이니


사람별로 다 다르지 않겠는가. 



한 여름 미지근한 방바닥에 누워 보던 영화가 바로 이 <연인>이란 영화였다. 원래는 소설


원작으로 자전적 소설이다. 나이는 많으나 오히려 더 순수하게 어리숙했고 용기도 없었고


집안의 정략결혼에 반기도 들 수 없었던 남자. 그리고 어렸지만 너무 오래 살아버린 듯한 


느낌의 소녀, 그 소녀의 가족에게 온갖 모멸과 멸시를 당해도 소녀 옆에 있었던 남자.  



소녀는 베트남에서 희귀하게 백인으로써 하층민의 삶을 살 다 프랑스로 다시 돌아간다. 


돌아가기 전 엄마가 투자했지만 쓸 수 없는 땅이 되어 휴지조각이 된 황량한 풍경을 보며


남자와의 사랑이 타투처럼 자기 자신의 운명에 새겨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 때 


자신은 소설가가 되어 이 이야기를 쓰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의 소리를 강하게 듣는다.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은 백발 노인이 된 여인(소녀)가 그 사랑 이야기를 쓰는 데스크에서 끝난다.


그 중국 남자가 전화를 하고 우리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걸 들었다고 말한다. 백발 노인의


음성은 소년 같았고 백발 노인의 여성인 여자는 드디어 여인같이 보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녀를 사랑했었고 지금도 사랑했다고 고백한다. 



나는 소녀가 이 이야기를 소설로 쓸 것 같다는 운명을 느낀 대목에서 눈이 크게 떠졌다. 어느 


한 구석도 내 인생과 비슷한 점을 찾을 수가 없는 영화였지만 어느 순간 이걸 소설로 쓰겠구나, 


아니면 글로 쓰라고 이런 슬픈 일이 일어나는 구나, 이런 느낌은 종종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소녀의 이야기를 가장 소설가로서 늙으막이 되어서야 쓸 수 있었다. 그 이야기를 하기 까지 


다른 이야기들을 먼저 해야 할 필요가 있었나보다. 소설보다 소설같은 어떤 나날들의 챕터가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이 글을 쓰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순 있지만 그 이야기를 정작 할 수 있게 


되는 때는 시간이 흘러야 가능한 것 같다. 내겐 소녀와 할머니는 아주 비슷한 단어이고 소녀였던


나는 할머니같았고 할머니가 된 나는 더 소녀 같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소녀였을 땐 그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할머니가 된 그 소녀는 그를 사랑했었다는 걸 깨달았던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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