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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bow Jul 11. 2021

등장인물과 함께 하는-오필리어

오필리어 1

오필리어는 화관을 만들어 버드나무 가지에

걸어주려다 물에 빠진다. 시냇가 혹은 진탕(?)

정도에 가까운 얕은 물인 것 같다. 우리가 생각하는

계곡 물이나 시냇물은 아니지만 계속 있으면

진흙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듯한 그 쪽 나라들(덴마크

나 영국)의 냇가인 듯 하다.


그렇다고 늪처럼 완전 빠지는 그런 곳은 아니고

의지가 있다면 바로 빠져나올 수 있는 냇가라고

해야하나. 하지만 오필리어는 얕은 물 위에 누워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르고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얕은 물에서 익사한다.


오필리어의 사인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확인

하는 대사가 있다.


‘ 얕은 물에서의 익사’


라고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싶었나

보다.


왕비가 오필리어의 죽음을 전하는 신하에게

‘그럼 익사인가?’ 라고 다시 한 번 묻는다.



내 과한 생각일지는 몰라도 오필리어가 처한

정신적 상태가 우울증과 조울병 그리고 조현병과

같은 현대의 의학명으로 불릴만한 증세를 보이고

있다. 버드나무 가지를 아마도 오필리어는

자기 아버지라고 본 듯하다.(순전히 내 생각이다.)

그래서


햄릿이 오필리어 아버지의 시신까지 끌고

어디론가 가져가 버렸으니, 게다가 실제로는

안그랬을 것 같지만 먼지 구덩이 속에

버렸다고 햄릿이 말하지 않았는가.


그런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지도 못한

오필리어는 꽃을 따서 사람들에게 주고

화관을 만들어 환상을 본 채 죽어 버리고

만 것이다. 이런 일련의 행동들을

비유적으로 볼 때 그녀는 슬픔이란 독에 빠져

얕은 물 속에서도 익사하는 것과 같은

죽음(정신적)의 상태에 이른 사람을

매우 천재적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오필리어의 죽음은 미술 작품으로도 그려지는데

신경이 쇠약한 나약해빠진 여자가

연인의 광증과 아버지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미쳐서 꽃을 머리에 꽂고

죽어 버린 등장인물로만 기억하거나

분석되는 것은 너무나 얄팍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얕은 물에서의 익사 라는 점이 나에게는

셰익스피어는   천재 작가구나 라고 감탄

하게 된다. 물론 그를 보고 누구나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그 당시나 역사적으로

꽃을 단 미친 여자들은 많았으리라.


때론 마녀라고 화형을 당하고 빅토리아 시대에는

특히나 여러모로 억압적인 시대였기에

여성들의 신경증이 특히나 많이 발병했고

이를 성적인 오르가즘을 경험하지 못 한

이유때문이라며 병실 침대에 여성 환자가

누운 채 여러명의 남자 의사와 남자 참관자들

앞에서 오르가즘에 이르게 하기 위한 시술을 하는

괴기스러운 삽화를 본 적도 있다.


우리 나라에서 또한 옛날엔 꽃을 꽂은 광인은

예로부터 여자였고 현대에 이르러서도

한국에만 존재하는 화병의 대다수 환자가

여성이라는 점만 보더라도 사회적 억압에 대한,

혹은 개인적 비극에 대한 신경증에 여성이 더

취약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래도 오필리어는 여성이기에 미쳐도 아름답게

꽃을 주는 사람으로 미쳤고 미친 척 하는 햄릿은

사람을 죽이고 칼로 승부를 보고 그로인해

죽음이란 비극에 이르는 인물이 되었다.

피가  낭자하는 죽음보다는

꽃과 물에 잠긴 오필리어의 죽음을 그린

그림이 좀 더 멜랑콜리를 더 잘 보여주지 않나 싶다.


오필리어 죽음의 장면을 떠올려보며

우울증인지도 모르고 깊이 멜랑콜리에

빠져있던 과거의 내가 떠오른다.


화가 날만한 상황에서도 화가 나지않고

얕은 물인데도 아무리 허우적 거려도

빠져나올 수 없이 한여름에도

춥다고 느꼈던 어린 시절.  


나는 추웠지만 내 몸은 뜨거워서 과거의

연인은 겨울에만 가까이하기 좋은 몸이라고

미치지도 않았는데도 한참 모자른 소리를 하곤

했다.


아직은 새싹이 나지 않은 메마른 나뭇가지들.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나무가 그 얇고도 굵은 가지들을

하늘로 삐쭉삐쭉 내밀고 있을 땐

저 가시같은 마른 나뭇가지들이

내 신경다발과 가장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필리어의 광증, 그리고 그녀의 죽음이 햄릿의 비극으로 치닫게 하기 위한 도움닫기만으로만 적혀 있지는 않다.


450여년 전 작가지만 현재의 희곡 작가들 보다도 여성 캐릭터를 도구적으로만 사용하진 않았기에 시간을 거슬러 오필리어는 살아 존재한다. 적어도 셰익스피어는

인간의 정신적 연약함과 우울, 광적인 상태에 대해

통찰력을 가지고 오필리어를 만들었다는 믿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오필리어는 햄릿처럼 미친척이 아니라

정말 미쳐서 죽었기에 살아있는 것만큼 괴기하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물에 떠오르고 비로소 독만큼

강한 슬픔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오필리어의 죽음으로

햄릿의 목을 향한 죽음의 칼날은 더 추진력을 얻고

그에게 달려온다. 비극의 추진동력이기때문에, 또 오필리오가 주인공이 아니라 햄릿이 주인공이기때문에  오필리어는 미쳐 죽을 수밖에 없지만 혼란스러운 세상의 거짓과 위선 앞에서

우리는  각자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머리에 꽃을 꽂아도

살아남아야

할 이유인지 모른다.


오! 오필리어!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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