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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bow Jul 11. 2021

등장인물과 함께  - 인사이드아웃

파랗게 질린 슬픔이



날이 흐리다. 미세먼지가 뿌옇고 낮에는 봄볕이 따뜻하게 드는 것을 보니 봄인가 보다. 


그래도 패딩을 입고 다니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나날들이다. 검은 패딩을 입고 지나가는 


아주머니 뒤로 벗꽃이 핀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따뜻해지긴 했지만 꽃이 피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봄이 왔는데 기분은 좋아지기는커녕 더 오락가락이다. 인사이드 아웃의


‘슬픔이’에다가 울컥증이 합쳐진 캐릭터가 있다면 나일 것이다. 아마도. 색깔은 보라색일 거다.



슬픔이는 파랗고 치밀어 오르는 화는 빨갈 테니 두 색을 섞으면 아주 채도가 낮은 보라색. 


집에 가는 버스의 기사님이 ‘아이씨’를 외친다. 새는 소리라서 그런지, ‘아이씨’라고 하면 


멀리서도 잘 들린다. 길가다가 ‘아씨, 아이씨, 씨’ 등등을 간혹 듣고 그 근거지를 찾으면 


아저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씨’라고 해서 아이씨 인가보다. 저런 기본적인 감정 


분출을 그냥 거름망도 없이 해대는 구나, 싶다. 기사아저씨는 버스 시동을 껐다 켰다, 버스 


내부의 불이 켜졌다, 꺼졌다, 했다. 승객들 사이에 약간의 긴장감이 나든다. 몇 정거장 더 가서 


내려도 되지만 바로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기로 한다. 내리려는 순간 내가 와플 반죽 인 것처럼


버스 문을 닫아 버린다. 골반과 어깨가 아플 정도로 찌부가 될 뻔했다.(그래도 꽤 아주 정통으로 


닫혔다.) 순간적으로는 그냥 내렸지만 안그래도 홧병이 나려고 하는 찰나에 불쾌함이 날 


지배하며 버스를 째려보기 시작했다. 뒤에 번호나 뭐라도 찾아서 불편신고라도 할 참이었다. 



‘귀찮은데….’ 하면서 째려보니 기사가 문을 열고 뭐라 뭐라 중얼거린다. 나도 모르게 


“아프잖아요.” 라고 하는 내 자신이 약간 아저씨같았다. 하지만 진짜 아저씨는 찌부되는 순간


화를 냈을 것이다. 나는 그 순간 화를 바로 내는 법은 거세당한 것 같다. 뭐라 중얼거리는데


고개를 제대로 뭐 숙이고 사과한 것도 아니고 마스크때문에 안들렸다.(90도 숙이고 사과할 


일은 아니지만 사과를 한 건지, 안한 건지) 빤히 쳐다보고 있길래 그냥 가시라는 손짓을 했다. 


내 자신, 참으로 사나워보였다. 내 너부리처럼 화난 외모와 더불어 옆에서 이런 내 모습을 봤다면


지레 무섭다며 ‘기쎈 언니’라고 했을 거다. 



근데 생각해보니 바로 부딪쳤을 때 왜 쓰러지며 오버 액션하지 않았나(축구선수였다면 잘 했을


지도, 초등학교 때 여자라서 축구를 못 배워서 그런가보다), 왜 아이씨! 하면서 아픔을 더 크게 


표현하지 않았나, 왜 아저씨들처럼 아이씨! 거 참! 어?! 사람 안보여요? 라며 진상을 부리지 못


했는가, 한 편으로는 그러고 싶기도 하고 한 편으론 그러는 내 자신이 참 사납고 우아하지 않아 


보여서 전혀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 어중간 한 슬픔이가 헐크로 변하지는 못하고 그 어중간한 어느 즈음에 파란색과 녹색이 


얼룩덜룩한 쑥색(봄이니까, 봄 컬러, 쑥!)정도 된 내 마음이, 내 몸이 불쾌감을 표출하고 


그 정도 표출을 해야 사과인지 모를 어떤 것을 받아낼 수가 있는 것 같다. 그냥 가만히 있었다면


사과 비스무리한 웅얼거림조차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확연한데 여태까지의 내 인생 노선이


그러하였다. 



슬픔이는 내 마음과 뇌와 호르몬들을 파랗게 물들여 가라앉게만 만들었다. 슬픔이가 인사이드 아웃의 한 캐릭터라면 좋을 텐데, 그냥 나 자체가 슬픔이 자체였던 시절도 있었던 것 같다. 



봄은 모든 생명의 시작인데 왜 이렇게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슬퍼지는 지 모르겠다. 그냥 


봄 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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