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여행_ 여수로 갔다... 시집 한 권만 들고..(한 뼘 소설)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가 지나가는 도시들.
마을 들엔 밝고 짙어서 더 추해보이고 쓸쓸해 보이는 가로등 불 빛.
그리고 개의 까만 눈동자처럼 처연한 어둠을 덮고 잠을 자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 또 동네. 어둡지 않게 또 아련하게 흔들리는 눈동자의 남자와 눈맞춤을 입맞춤처럼 했다고 착각하듯 저 가로등들과 빛을 맞춤한다. 착각인걸 알면서도 판타지 속에서만 있는 사랑도 있을 수 있는 거니까.
저 붉다고도 오렌지 빛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가로등의 밤이 생각난다. 수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산 속에서부터 초등학교 뒤 편의 길, 집으로 향하던 아빠와 나. 집에 거의 다다르자, 마음이 급해진 아빠는 그 가로등이 반사하는 넓은 길을 보면서
엄마가 죽은 후, 많은 것들이 변했고 또 체념해야 할 것들이 늘었다고 했고, 나도 예전처럼은 살 수 없다고도 했다.
타고난 게으름으로 일상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아무리 미루고 미뤄도 나의 몫이었다.
오빠의 아빠의 남루함이 주위 아줌마들에게는 쉽게 ‘내 탓’이 되어버리곤 했다.
‘밥’이 난 싫었다.
그런 질문이 어떤 생채기를 남기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상력 거세된 어른들은 묻곤 했다.
‘밥은 누가하니?’,’네가 여자니까 네가 챙겨야 한다.’
그들의 동정이나 연민을 탓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불필요하고도 불편한 값싼 동정이다. 날 추락시키는 동정.
그들이 심문하듯 묻는 그 시간들에게 난 항복의 흰 깃발을 날리듯 가끔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반항어린 야생동물 같은 눈빛으로 아래 만을 바라보다, 그들의 화를 오히려 사기도 했다. 불쌍한 듯 눈물을 흘릴 때 그들은 자신의 착한 동정심에 대한 승리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저 가로등, 오렌지 오일이 타 들어가는 듯한 저 빛깔은 나를 이해할지도 모르지. 그 날 덜컹거리는 트럭 속에서 내가 느낀 고독감을, 버려진 기분을. 오빠는 자기 앞가림을 못하니 공부도 잘하고 서울 가고 싶어하는 나는 서울가서 살아보면 안되겠니….
아빠의 두려움 가득 찬 목소리는 어느새 강압적으로 변해있었다. 날 보고 묘한 눈빛을 짓던 사람들, 어른들이 스쳐갔다. 나지막이 아빠에게 말하던 음성들. 입양이 가능하다면 엄마가 더 사랑했던 오빠보다는 내가 더 ‘likeable’한 아이였다. 아빠는 자기 자식을 자신이 키울 수 없음이 뼈저린 일이라는 것을 긴 언어로, 투박한 어휘로 설명했던 것같다.
결론은 더 사랑 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온 내가 아빠의 버림을 받는 거다.
그리고 아빠는 본인의 자식이 어디 가서 폐를 끼치고 사는 건 용납이 안 된다며 다소 격정적인 어투로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식모살이’도 해봐야 한다고 했다.
나도 길고 난해한 언어로 이야기했다. 싫다고는 못했으나 거의 그런 말이었을 거다. 어른보다도 성숙한 언어로 난 아빨 설득했을 지도 모른다. 가볍고 경쾌한 목소리로 ‘에잇 아니다’하며 아빤 털털하게 웃었을지 모른다.
내가 대답하기 위해 응시했던 덜컹거리는 트럭이 지나가는 그 길. 오렌지 오일이 탄다면 저 빛깔이겠지, 그 가로등.
넌 너의 색깔은 그걸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내 자신도 나에게 비밀로, 아빠도 비밀로 한 그 몇 분의 시간을. 난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다.
네가 그 단어를 뱉기 전까지는. 네가 나에게 고백을 하던 그 밤에서는 도시의 타는 듯한 그 오렌지 오일 빛이 도시를 비추고 있었을 거다.
‘여자친구가 되어줘. 내가 사랑해줄게’가 아닌, 난 네가 좋아, 안고 싶어, 네가 제일 예뻐, 널 사랑하고 있어가 아닌,
넌 여자친구가 청소, 빨래 해줬으면 좋겠다며 네가 해줄래요? 라며 물었다.
네 눈과 표정과 얼굴 근육은 누구보다도 날 가지고 싶어하고 사랑하는 남자의 것이었지만, 불행하게도 난 정말로 잊고 있어서, 기억조차 일부러 노력해도 할 수 없었던 그 밤의 가로등 빛깔을 떠올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