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작은 사건들 2

묘연은 미묘하다

by moonbow

지난 토요일 오후 대학로 소나무길을 바삐 걷고 있었다. 수업을 하러 일찍 집을 나섰는데 갑자기 아이폰 액정이 먹통이 됐다. 겨우 음성 명령으로 전화를 했고 수업 후에 가까운 대학로 서비스센터를 가는 길이었다. 대명거리 옆에 소나무길은 여느 대학로 길보단 한가롭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여있다. 눈에 들어온 것은 네 마리의 아기 고양이들. 상자에 담겨 있었다. 몸이 자석에 끌려가듯 아기고양이들을 봤다. 상자 바닥엔 잘게 잘린 스팸조각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예쁘다며 지켜보면서도 걱정스런 모습이었다. 상자밖으로 자꾸 나오려는 아이들을 다시 넣어주었고 가까이 있는 누군가에게 물어봤다. 누군가 버린 것인지 팔려고 담아 놓은 아이들인지 주인이 있는 지 말이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길 가에 베니어 판 등 목재를 보관하는 작은 창고에 길냥이 엄마가 아이들을 낳았고 창고 주인인 할아버지가 청소를 하고 셔터를 닫아 어미 고양이가 오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아기 고양이들이 처치곤란이니 상자에 담아 내놓으신 모양이다. 가까이 지내시는 듯한 상자를 주으시는 듯한 아저씨가 우유를 사와서 먹이려고 하자 여기저기서 고양이 우유 먹이면 안된다고 작은 소리가 터져나왔다. 스팸도 먹으면 안되는데...... 아저씨는 꽤 민망하신 모양인지 혼자 중얼거리시다가 햄 통에 우유를 담아 오셨다. 더 적극적으로 말리는 무리가 생겼다. 아무 행동도 안하면서 아저씨를 말리자니 보고 있던 나도 민망했다. 편의점에 가서 물이라도 사와야겠다는 생각에 가는데 동시에 적극적으로 편의점 방향으로 걸어가시는 여자분이 계셨다. 경황이 없는 중에 '우린' 강아지 통조림(고양이 용은 없었다)과 물과 접시를 사서(여자 분이 내셨다) 고양이들에게 주었다. 이 녀석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으로 접시에 담긴 물을 먹을 줄도 몰랐다. 발로 물을 밟을 뿐 혀로 물을 떠먹을 줄도 몰랐다. 여태 어미 젖만 먹어왔을 것이다. 강아지 통조림을 요거트 스푼으로 잘게 짖이겨 주었다. 조금씩 먹었다. 먹는 모습을 보니 참 다행이다 싶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더 모여들었고 나에게 누가 버린거냐고 묻는 사람들이 생겼다. 내가 마시던 음료수를 바닥에 놓고 있었는데 '음료수 먹이면 안되는데...'라는 말을 하신 분도 계셨다. 바로 아닌 걸 아셨고 또 한 분은 먹이는 캔을 포장지를 살짝 보셨다. 아이들이 만지고 여러 사람들이 아기 고양이들을 만졌다. 그 여자분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임보를 부탁했다. 그 전에 내게 집 위치를 물으셨던 것 같다. 임보처를 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어미가 근처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사람 손을 탔으니 다시 새끼들을 돌볼 확률이 너무도 낮았다. 이렇게 상자에 있다간 어떻게 될지도 몰랐다. 아이들이 달달 떨었다. 근처에서 창고 아저씨는 '한 마리들씩 가져가서 키워요!'하고 외쳤다.


그 순간 난 '제가 임보할 수 있어요'라고 말해버렸다.


잠시 그 분께 아이들을 맡겼다. 서비스 센터에 가니 토요일은 2시까지란다. 뭐가 문제인지 물어보던 직원은 내 아이폰를 강제 종료했다. 거짓말처럼 액정이 살아났다. 이리도 단순한 것이었다. 역시 기계는 껐다 켜면 되나.

아깽이(아기고양이를 지칭하는 집사들 용어)들을 더 작은 박스에 넣어 버스를 타러 갔다. 다행이 자리가 있었다. 작게 우는 소리가 난다. 경황이 없고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지러웠다. 멍하니 상자를 안고 창밖을 한참보다 생각 난 것이 있었다. 성신여대 쪽에 들러 동물병원에 왔다. 내가 가본 동물 병원 중에 가장 럭셔리했다. 접수를 했다. 진료를 받으려면 이름이 있어야한다고 했다. 소. 나. 무. 길 이라고 적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의사는 안전하게 검사를 하려면 네 마리니까 십만원은 쉽게 넘는다고 말씀해주셨다. 유기동물 구조 시에는 30퍼센트 할인이 적용됐다. 그래도 가난한 나에겐 비쌌다. 사건이 커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기본 검사와 구충만 하기로 했다. 박스 안에 냥이들을 받아드니 한 젊은 커플이 다가와 구조했냐고 물어봤다. 동사무소에서 그 커플이 구조한 두 아기 고양이를 보여줬다. 아기 고양이들은 성견이나 성묘와는 달리 보호소로 가면 바로 안락사당한다고 했다. 걱정이 너무 앞섰지만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다시 받아들고(다행히 건강했다) 아기 고양이용 사료를 샀다. 지인이 고생한다며 병원비 일부와 사료값을 보태주셨다. 다들 예쁘고 귀엽다며 아기같은 미소를 지었지만 '어떻게 할 거에요? 키울 거에요?'하면서 어두운 표정이 되었다. 친구는 사진을 보내자 '현실적인 판단력으로 보고만 오라'고 했다. 네 마리의 고양이들이 상자 안에서 곤히 잠들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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