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한 아침
마리는 냉장고에서 물을 따라 마셨다. 놀란 가슴이 조금 진정되었다. 이불은 푹신해보였고 이목은 어린 아이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침실에 불을 끄고 마리는 부엌 테이블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부엌의 작은 스탠드만이 조용히 빛을 내고 있었다. 둘이 조용한 숨소리가 밤을 더 깊게 만들었다.
목은 죽은 듯이 잤다. 몇 년 째 매일 밤 찾아왔던 동생의 그림자. 동생은 목이 안 보이는 곳에서 울고 있었다. 그 울음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긴 머리를 풀어 헤친 동생의 뒷모습. 동생의 어깨를 손으로 잡고 울음으로 들썩이는 몸을 진정시켜보려고 하는 목. 동생이 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면 항상 얼굴이 없었다. 동생의 얼굴을 기억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목은 가위에 눌렸다. 그런 나날들이 이어졌다. 얼마 만에 꿀 같은 잠을 잔건지 알 수 없었다. 눈을 뜨고 조용히 달콤하게 나른한 그 순간을 만끽했다. 그러다 목은 새근새근 소리가 나는 부엌을 쳐다보고 일어났다. 그리고 지난밤의 기억을 소환했다.
‘마리씨 와줄 수 있어요?’ 라고 말하던 자신의 모습을. 한 숨을 푹 쉰 이목은 부엌에서 엎드려 자는 마리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마리의 어깨를 두 손으로 감쌌다.
“마리씨...마리씨?”
아주 조용히 목은 마리를 불렀다. 마리는 잠투정을 부렸다. 그 음성과 신음이 섞인 소리를 듣고 있자니 목은 웃음이 나면서도 미안했다. 마리를 자신 쪽에 기대고 안아서 침대에 마리를 눕혔다. 이목은 마리의 몸을 안아야 해서 긴장했는지 온 몸에 힘이 들어갔다. 그런 목의 딱딱한 몸에 마리의 부드러운 몸이 겹쳐졌다. 이목은 마리의 부드러운 피부와 몸을 느꼈다. 따뜻했다. 이런 감촉이라니. 목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이마에 식은땀이 났다. 마리는 다행히 잠에서 깨지 않았다.
‘하긴 밤낮으로 일을 하니 깨지 않을 수밖에......’
이목은 생각했다. 마리를 침대에 눕히고 이목은 물을 한 잔 마셨다. 그리고 마리의 자는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봤다. 눈을 감은 얼굴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왜 자신이 마리에게 전화를 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집이 가까운 걸 알고 있어서일 거라고, 후배들이 마침 다 주변에 없어서일 거라고 다시 한 번 자기 자신에게 변명해봤지만 다 소용없었다. 이목은 한 번 깊은 숨을 쉬고 간이침대를 펴고 구석에 있던 이불을 덥고 누웠다. 잠이 다시 안 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눈을 감고 마리의 새근새근 소리를 들으니 자기도 모르게 다시 달콤한 잠에 빠졌다.
어두웠던 방은 조금씩 파란 빛을 띠었다. 그리고 하얀 침대에 마리의 얼굴을 비췄다. 조금씩 밝아진 방에 한 번에 햇살이 찾아왔다. 마리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매우 오랜 시간이 지난 것처럼 많이 잤다. 그리고 햇빛이 비치는 각도를 보고 아직 8시는 되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다시 눈을 감고 어제 밤일을 생각했다. 그리고 자기가 이 침대 위 푹신한 이불 위에 있는 이유를 생각하려 애썼다. 전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어떻게 이 침대에 자기가 눕게 된 건지.
‘설마 날 안아 올렸나? 아씨. 나 무거워서 안 될 텐데. 막 패대기치고 그랬나? 그래도 난 안 깬 거야? 아님 날 흔들어 깨워서 가라고 막 그랬는데 내가 막무가내로 침대에서 자겠다고 떼라도 쓴 거야?’
마리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면서 이불을 머리 위로 끌어 올렸다.
‘생각을 해야 돼. 생각을. 아직 안 일어난 것 같으니까 조심히 잽싸게 나가자.’
마리는 핸드폰을 부엌 식탁에서 찾아서 조용히, 조심조심 나갔다. 물론 그 전에 침대 위에 이불을 곱게 정리를 하고. 고양이가 걸어가듯 살금살금 걸어갔다. 이목의 자는 얼굴이 보였다. 이목구비가 큰 얼굴은 평온한 표정으로 자고 있었다. 얼른 몸을 돌려 마리는 현관으로 향했다. 아직 깨지 않았는지 다행히 인기척이 없었다. 마리는 신발을 신으려고 허리를 굽혔다. 그 순간.
“마리 씨, 가게요? 아침 먹고 가요.”
“아...아... 깼어요?”
마리는 이목 쪽을 쳐다봤다. 목은 다정하게 마리를 쳐다봤다.
‘저런 따뜻한 눈빛으로 쳐다보면 어쩌자는 거지....... 여러 여자들이 저런 거에 넘어갔겠지. 이 순간에도 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마리씨 덕분에 살았어요. 어제 밤에 정말 죽는 줄 알았는데.”
“아뇨, 뭘. 좀 어때요? 병원 가봐야 되는 거 아니에요?”
“이제 괜찮아요.”
“저 근데 집에 가서 씻어야 되고 또 준비도 해야 되는데....그냥 먼저 갈게요.”
“안돼요.”
갑자기 강하게 이야기를 해서 마리는 깜짝 놀랐다.
“아니, 어제 고생시켰는데 아침이라도 먹어야죠. 배 안고파요?”
그러고 보니 마리는 심하게 배가 고팠다. 아침에 이렇게 배가 고픈 적이 없었는데 아마도 잠을 푹 잤기 때문이리라.
둘은 집을 나섰다. 이른 아침에 같이 집을 나서니 마리는 기분이 묘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목도 별 말이 없었다. 어제 분명 아무 일도 없었지만 둘 사이엔 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근데 마리씨 어제 진짜 저 꿀잠 잤어요.”
“거기...좁지 않았어요?”
“네? 그....작은 침대..”
“아..아.. 원래 나 이기적이라서 침대 절대로 양보 안하는데.....”
“아... 죄송해요.”
“무슨 죄송까지...”
이목의 생각과는 달리 아침 일찍 문을 연 식당은 김밥축제밖에 없었다.
“이런 데서 밥 사주기 싫은데”
“저 아침이라 그냥 밥 먹으면 돼요.”
둘은 말없이 밥을 먹었다. 단 둘이 밥을 먹은 건 처음인데다가 이런 아침에 청량한 기운에 둘이 있으려니 신경이 쓰였다.
이목은 계산을 했다.
“잘 먹었어요.”
이목은 말을 하지 않았다. 가게에서 나왔다. 미적미적 대면서 할 말을 고르는 중인 것 같은 둘. 그 순간 이목이 마리의 손목을 잡고 작은 골목 안으로 잽싸게 들어갔다. 마리는 깜짝 놀랐지만 이목의 힘과 민첩성에 더 놀랐다.
“왜....” 라고 말하려는 마리의 입을 목이 막았다.
그리고 옆을 보니 츄리닝 차림의 타키가 편의점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둘은 좁은 골목에서 기다렸다. 타키는 봉지를 한 손에 들고 어슬렁어슬렁 다시 돌아서 갔다. 타키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제야 마리는 이목의 큰 손이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마리는 살짝 손목을 비틀어 팔을 빼냈다. 그제야 목도 자신이 마리의 팔을 잡고 있다는 것을 알고 당황했다.
둘은 골목 밖으로 나왔다.
“전 집에 잠시...”
“그래요. 이따 봐요.”
마리는 돌아서 집 쪽으로 향했다. 이목은 뭔가 아쉬운 듯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러지. 조금 있다가 볼 텐데.’
이목은 뒤를 돌아봤다. 마리는 그 새 다른 저 멀리 가고 있었다. 바쁜 걸음으로. 눈 안에 들어와도 그녀는 어느새 멀리 잡을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