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고양이 보모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봄은 고양이로다......... 너무도 유명한 이장희 시인의 시다. 봄 밤에는 그렇게 길고양이들이 솔직하게 짝짓기를 하고 싸움을 하고 또 아깽이(아기 고양이를 지칭하는 말)들이 태어난다. 아지랑이처럼 고양이의 털갈이가 있고 또 중성화 수술을 안한 고양이들은 발정이 와서 괴로워한다. 난 동물을 정말 좋아한다. 흔히 영어로 ‘dog person, cat person?’이냐고 묻는 표현도 있다고 하는데, 굳이 따지자면 도그 퍼슨이다. 생김새나 하는 짓도 고양이 과이기보다는 강아지과, 개과다. 그렇지만 올해 봄은 내가 묘연을 맺었다. 묘한 일이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이 시작된 것은 3월 한 달을 지인 언니 집에서 보내면서부터였다. 여행이 잦은 언니는 키우는 개 한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를 가끔 부탁하곤 했다. 혼자 살고 있는 언니 집에서 머물면서 개와 고양이의 보모 노릇을 하곤 했다. 하지만 건강이 안 좋아진 언니는 3월 한 달, 장기간 해외에 있을 예정이었고 나는 그들과 한 달간의 시간을 보냈다.
올 해 봄은 나에게는 조금은 악랄했다. 한국에 오면 본격적인 연애를 하자며 매일 아침, 저녁으로 연락을 하던 유학생 남자가 갑작스레 차갑게 식어버렸다. 물론 그 이유는 잘 알고 있지만 굳이 또 왜냐고 묻는다면 뭐라 딱히 답할 길이 없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뜨뜨미지근한 관계, 그러니까 내 입장에서는 남자쪽이 여자가 먼저 결별 통보를 하길 유도하는 것 같았지만 그 사인이 명확할수록 나는 그러기 싫었다. 물론 외적으로는 내가 매달리는 찌질한 꼴이 되었겠지만 유학 간 사이에 카톡 메시지로 그렇게 관계를 끊기는 싫었다. 물론, 이 봄 한국에 돌아온 그 남자는 결국 이별 통보를 가장한 ‘동료로 지내자는 말’을 했다. 나도 참 징하고 그도 참 징하다.
뒤늦게 들어온 대학원에서도 특별히 눈에 띄는 성과도 없이 내상만 깊어가던 참이었다. 그 내상은 내장비만으로, 또 당연히 외장 비만(?)으로 이어졌다. 여차 저차하여 분위기 전환과 쇄신의 기회로 삼고자, 서쪽 동네에 3월 한 달 간 기거하기로 했다. 개와 고양이와 함께.
하지만 말이 기분 전환이지 다른 사람의 보금자리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은 편하지만은 않았다. 물론 많이 오갔던 집이라 기분은 그럭저럭이었으나, 밤이면 쉬이 잠들지 못했다. 밤을 새고 밤낮이 바뀌고 뭘 하려고 하면 집에 있는 책이나 물건이 생각났다. 봄은 왔지만 마음은 겨울인지 몸이 꾸덕꾸덕해진 탓에 무기력하기만 했다.
그렇지만 혼자 살 때처럼 깨어났지만 천장만 보고 몇 시간씩 있을 수는 없었다. 딸린 식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어나 개 밥을 주고, 고양이 밥을 준다. 캣 타워 맨 아래에 고양이 똥도 치운다. 수컷이라 냄새가 지독하다. 헛구역질을 몇 번 한다. 흔히 맛동산이라 불리는 모래 묻은 고양이 똥(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들은 똥을 먹는 거에 비유를 한다), 오줌이 응고된 모래 덩어리(소위 감자라 불리며 그 덩어리를 삽으로 푸는 것을 ‘감자 캔다’고 한다)를 치운다. 그러고 나면 잠이 조금 깬다. 정말 하찮은 일이지만 날 움직이게 한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고 뭐라도 챙겨 먹는다.
강아지는 항상 나를 쳐다보며 나를 주시한다. 고양이는 캣 타워 위에 밥 그릇을 손으로 친다.
버릇없는 것을 못 참는 나는 그런 고양이의 행동이 싫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옷방에 있다. 또 어느 순간 창문 앞에서 울고 있다. 창문 앞에서 울고 있으면 창문을 열어줘야 한다. 그러면 고양이는 창문 틀 위에 앉아 하염없이 밖을 바라본다. 신출귀몰하는 고양이 덕에 나는 흠칫 힘칫 놀란다. 혹시나 고양이가 탈출할지도 모르고(그러면 난 그 죄책감을 어떻게 감당하나), 귀신같은 고양이의 움직임에 방울을 달아주기로 한다. 공기는 차갑지만 비스듬히 들어오는 햇살에 봄기운이 있다.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인지 몽롱하다.
강아지는 내가 산책을 시켜줄 것을 믿고 하루 종일, 또는 이틀씩 똥, 오줌을 참곤한다. 괴로운 일이다. 그러면 난 갈등하다 겨우 하루가 끝나기 열 두 시 전 강아지를 데리고 인근 운동장에 산책을 나간다. 두꺼운 패딩 잠바를 입고. 강아지 덕에 조금이라도 걷는다. 밤에는 운동장에 사람이 별로 없다. 혼자였으면 조금 무서웠겠지만 강아지랑 있으니 그리 무섭지만은 않다. 예전에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울 때는 정말 산책을 많이 했었다. 한산하니 마음껏 뛰놀라고 목줄을 풀어준다. 같이 조금 뛴다. 물론 강아지는 조금 뛰다 샛길로 빠져 관심있는 냄새를 맡곤한다.
깊은 밤 책을 하나 들고 침대 위로 올라간다. 고양이는 자주 자신의 똥꼬를 들이밀면서 궁둥이를 팡팡 때려주길 요구한다. 오분이 넘고 계속 시간이 지나도 엉덩이를 코 앞까지 내민다. 팔이 아플 지경까지 이르러도 고양이는 포기하지 않는다. 책 상에 앉으면 옆 쪽 키보드 위에 올라와 내 무릎에 앉고 싶은 건지, 어떤건지 모르겠지만 안절부절하고 있다. 그리고 새벽 세 시쯤에는 캣 타워에 올려둔 자기 밥 그릇을 툭툭 쳐서 방바닥에 떨어뜨리기 일보 직전까지 이르게 한다. 얼른 나가 난 밥그릇을 반대편에 놓는다. 성가신 일이다.
잠들 때쯤에는 고양이와 강아지가 각 각 내 옆자리를 두고 은근한 신경전을 한다. 강아지가 옆에 있다, 그 위로 고양이가 자리를 잡는다. 또 강아지가 그 위로 자리를 잡는다. 또 눈을 뜨면 고양이가 옆에 있다. 행복한 인기 폭발이지만 조금은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