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집사로
하지만 다시 서울 생활을 시작하고 나니 좁은 원룸에서 살아야 했고 새로운 분야에 뒤늦게 뛰어들어 대학원에 오고 나니 재정적으론 한 없이 흔들리기만 했다. 길고 깊은 우울증은 쉽게 나를 놓아주지 않았고 조금씩 나아진다고 믿고는 있었지만 녹록하진 않았다. 동물을 키울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버는 것이 내 인생 목표였다. 그리고 집을 잘 비우는 내게 개를 키운다는 것은 인생에 대부분의 시간을 기다림으로 보내야 하는 친구가 하나 더 생긴다는 것을 의미했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 항상 강아지들의 영상이나 사진을 보곤 했고 그 언니 집에서의 한 달을 보낸 후에는 혼자 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십년 넘게 혼자 자왔으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유기견 카페에 분양글을 보기 시작했다. 아니 나도 모르게 계속 보고 있었다. 보호 기간인 10일을 넘으면 곧 안락사될 아이부터, 아프고 늙어 버림받은 아이들까지 보기만 해도 울 것만 같은 사연많은 강아지들이 너무 많았다. 당장 데려 오고 싶었지만 분리불안증세가 있어 온 가족이 있는 집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은 경우도 있었고 협회에서는 아이의 파양을 막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또 다른 상처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위해서 집 안 방문을 하고 있었다. 거기서부터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공지사항에는 원룸 거주자, 미혼인 여성에게는 입양하지 않는다는 글이 써있었다. 원룸 거주자들은 거처의 이동이 자주 있기에 파양이 잦고 미혼 여성은 결혼이나 임신, 출산 등으로 파양이 잦다는 이유에서 였다.
또 다시 절망하는 순간이었다. 고개가 끄덕여지긴 했지만 그래도 서운하고 마음이 아팠다. 그러던 중 몇몇 분들에게 연락을 했지만 벌써 분양이 되었다는 답을 받았고, 한편은 다행이면서도 한편은 섭섭했다. 역시나 나는 반려동물과 함께 살 자격이 안되나 생각까지 했다. 그러던 중 하얀 길고양이 한 마리를 보게 되었고 구조 되었다가 상태가 안좋아서 다른 분께 맡겨지고 치료를 받는 중에 그 분의 고양이들과 잘 못 지내서 여자친구 집에서 머문다는 아이를 보고 연락을 했다.
그것도 수 십번의 고뇌와 조마조마한 마음 사이에서 큰 용기인지 손가락이 미끄러져서인지 난 아니라고, 이미 분양되었다고 한 번 더 확인받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몇 몇 사항을 물어보시더니 한 시간 후에 아이를 키우는 것이 적합하다는 답변과 함께 봄과 함께 고양이가 온다고 했다. 믿겨지지 않았다.
처음 모습. 털도 많이 없었고 너무 기가 죽어 반 포복자세로 다녔다. 애수가 눈가에 보인다.
중성화 수술을 하겠다는 다짐을 받고 아이가 왔다. 길고양이 시절 숨어지냈던 탓에 엉킨 털을 잘라냈기에 쥐파먹은 듯한 털이며 키는 컸지만 마른 몸이며 무서워서 구석으로 들어가려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순간 내가 실수했나 싶기도 했다. 이틀 동안은 같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었다. 나는 침대 위, 아이는 침대 아래. 조르주 상드를 좋아해 그녀의 본명인 ‘오로르’를 이름으로 정했으나 부르기가 어려워 ‘도레미파솔라시도’의 ‘라’음이 예전의 수화기를 들면 나오던 음이라는 이유로 ‘라라’로 이름을 정했다.
겁은 많았지만 순하디 순한 아이였기 때문에 품에 안으면 잔뜩 겁에 질려서 그런지 한 동안도 안겨 있었다. 생각보다 긴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자주 작은 소리에 겁에 질려 침대 밑에 기어들어가긴 했지만 밥도 잘 먹고 안정도 찾았다. 처음의 애수어린 눈빛은 조금씩 도도한 고양이의 눈으로 바뀌었다. 누워 있으면 살며시 와서 옆에 식빵자세로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참 예뻤다. 그 얼굴을 보면 참 따사롭고 평화로웠다. 분홍색 맨 살이 보이던 몸은 점점 하얀 털로 수북해졌다. 골골송도 들었고 얼떨결인지 꾹꾹이도 받았다.
안정을 찾고 털도 수북해진 라라.
하지만 건강해져서인지 발정이 찾아왔을 때 처음에는 아주 잠시 지나갔다. 중성화 수술을 하겠다고 했지만 막상 닥치니 마음이 너무 심난하고 아팠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젤을 묻혀 면봉으로 아이들의 성욕을 잠잠하게 하는 방법이 있었다. 약국에 가서 ‘러브 젤’을 구입했다. 나도 성인 여성이지만 사본 적이 없던 것이었다. 아이는 많이 놀랬고 소변 실수가 많아졌다. 그리고 반지하 창문 위에서 자주 시간을 보냈는데 라라의 냄새를 맡았는지 길고양이 남자친구도 생겼다. 참 마음이 아팠지만 서로가 괴로웠다. 결국 중성화 수술을 했다. 살이 많이 쪘다고 생각했는데 3킬로가 조금 넘었다.
길 고양이가 라라를 찾아왔다.....금지된 사랑...
고양이의 매력에 흠뻑 빠졌을 때 문제가 생겼다. 건물 쓰레기 장 앞에 위협적인 경고문이 붙은 것이다. 모래묻은 강아지 똥을 하수구에 버린 ‘인간’을 파출소에 신고했고 CCTV를 확보해 구청에 민원을 넣은 상태라는 것이다. 나는 종량제 쓰레기 봉투에 넣어서 버렸기에 좀 찜찜하긴 했지만 떳떳했다. 그리고 세입자에게 온 단체문자는 동물 금지이며 제보나 신고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뭔가 범죄자가 된 것 같았다. 계약날짜가 가까워와서 관리인과 통화를 하는 중 물어보니 매일 밤 하수구에 모래가 묻은 강아지 똥을 버리는 인간이 있다면서 고양이 똥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마음이 조마조마 했다. 그리고 어느 날 관리인에게 문자가 왔다. CCTV 확인 결과 범인은 바로 나라는 것이었다. 화가 나고 속이 상하고 구청에 문의해보니 구청마다 폐기물 처리 방법이 다르다고 했다. 일년 더 눌러살까 했던 집은 과감히 포기하고 고양이를 위해, 또 집사인 나를 위해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고양이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아 부동산 업자에게 욕을 먹은 적도 있다. 고양이를 키울 수 있냐고 했을 때 좋아할 집주인은 없다면서 몰래 키우라는 부동산 업자도 있었다. 한 부동산에서는 고양이한테 좋은 집 구해주려고 그러냐면서 비아냥아닌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그래도 어느 부동산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집을 구해줬고 부동산 사장님은 새끼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다고 본인도 그런 고충이 있다고 했다. 서울에 올라와 열 번이 넘는 이사를 하면서 부동산 업주분들을 만나봤지만 동물 이야기로 이렇게 마음을 나눴다는 경험을 한 것을 처음이었다. 이사할 때도 오셔서 속깊은 마음을 보여주셨다.
이상한 일이다. 고양이를 위해 집을 이사했는데 미처 확인하지 못한 허술한 방충망을 뚫고 고양이가 집을 나가버렸다. 뚫린 방충망에는 라라의 하얀 털이 증거처럼 몇 가닥 휘날리고 있었다. 이사하기 전 불안한 마음에 잠시 얻은 작업실에서도 튼튼해보였던 방충망을 뚫고 집을 나간 적이 있었다. 목에 방울을 걸어놨고 너무 괴로운 마음과 죄책감에 울기 일보 직전이었다. 급히 동물센터에 유기묘 신고를 하고 전단지를 만들어 주변에 붙이려는데 한 카페 여 주인이 고양이를 잃어버렸냐고 물어오셨다. 그러시더니 조심스럽게 전단지를 붙이지 말라고 충고해주셨다. 여러 사람이 고양이 이름을 부르면 헷갈릴뿐더러 고양이는 영역동물이니 멀리가진 못했을거라고 하셨다. 그 때는 조금은 야속했지만 나중에 생각하니 너무도 고마웠다. 급히 고양이 카페에 글을 올리고 검색을 해보고 고양이 탐정 인터뷰도 찾아봤다.
처음부터 라라를 들이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란 생각도 해보았다. 가장 친한 친구는 찾을 확률이 없을 것 같다며 빨리 잊어버리라고 했다. 세상에 혼자 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너무도 지쳐 창문 앞에 놓아둔 간식 냄새를 맡고 알아서 오기를 꿈꾸며 잠시 눈을 붙였다. 가만히 앉아 있자니 목에 걸어둔 방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나갔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환청인지도 몰랐다. 그러더니 다른 작업실을 쓰시던 분이 방울 소리가 들린다고 말씀해주셨다. 잊어버린지 12시간 만이었다. 구석에 가서 조용히 이름을 불렀다. 십분을 불렀다. 아무 인기척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조금 더 구석으로 가까이 갔다. 그랬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하얀 긴 동그라미가 옆집 창고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당황하지 않고 조용히 이름을 불렀다. 조금 더 다가가서 손을 뻗으니 더 멀리갔다. 애가 탔다. 그리고 조용히 이름을 부른지 긴 시간이(실제로는 몇 분 안될 것이다.)이 지나고 하얀 아이가 낮은 포복으로 내 쪽으로 왔다. 내민 내 손 냄새를 맡더니 내 쪽으로 왔다. 나는 덥썩 아이를 안았다. 나인줄 알면서도 도망가야한다는 본능 때문에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천성적으로 둔하고 순한 덕분에 나는 라라를 안았다. 라라를 품에 안았을 때의 감정을 뭐라 말할 수 있을까. 모든 고통과 괴로움이 사라지면서 더 큰 사랑이 덜컥 안기는 것 같았다. 가슴에 품자 라라의 작은 심장이 터질 듯이 고동치기 시작했다. 낯선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이 드나드는 소리가 몹시 스트레스였나보다. 새벽같이 짐을 싸서 집으로 왔다. 택시에 아이를 태우고 오는데 나도 모르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나보다. 택시 아저씨가 뭐가 그렇게 고맙냐고 그랬다. 고양이를 태우면 싫어하실 수도 있다고 말하니 기사님도 너무 예쁜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면서 자랑이 한 보따리였다. 그 아이도 유기견이었다고 했다. 나의 강아지들과 라라 이야기를 하면서 성함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깊은 마음을 나눈 기분이었다.
그리고 또 다시 라라가 집을 나간 것이다. 이사 후 추석이라 집을 비운 탓도 있을 것이며 첫 날은 창문에 못 올라가게 조치를 취했지만 너무 피곤한 채로 잠들어 버려서 창문을 못 닫은 내 탓도 컸다. 간식을 창문 앞에 두고는 창문 밖을 쳐다봤다. 지대가 낮은 창문 밖은 지붕들로 이어져 있었다. 지붕 사이에 고양이가 잠을 자고 있었다. 괜히 말을 걸어봤다. 고양이가 좀 쳐다보더니 잠만 잔다. 지붕을 타고 멀리 멀리 갔을 것 같아 이웃에서 폐기물 치우는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 창밖을 쳐다봤다. 저녁 쯤 되자 같이 있던 친구가 나가려는데 방울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친구는 내 환청이라면서 자기는 못 들었단다. 친구가 가고 어둠이 찾아와 반대편 골목에는 길고양이들이 격렬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녀석이 차라리 야생적이라면 길고양이처럼 살아는 있을 텐데 집고양이는 밖에 나가면 살아 있을 확률이 별로 없다고 한다. 고양이 탐정과 고양이를 찾은 집사들의 눈물어린 후기를 보면서 집 주변을 조용히 뒤졌다. 3층 창문으로 나간 고양이가 바로 그 윗 계단 소화전 뒤에서 굶어죽은 채 발견된 적도 있다하니 마음이 또 너무도 안좋았다. 길고양이를 잡아가 산채로 털을 벗기고 내장을 빼내 고양이 탕집에 파는 사람도 있고 길고양이에게 학대를 하는 사람도 많으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까는 창문 밖 오른쪽 위주로 찾았었는데 방울소리가 들렸던 왼쪽방향으로 찾기로 했다. CSI라도 된마냥 핸드폰 불빛으로 구석구석을 비춰봤다. 고양이의 길을 찾으려고 했다. 최대한 고양이라는 마음으로 구석구석 몸을 숨길만한 곳을 비춰봤다. 옆 집 문이 열려 있어(다세대 주택이라) 조심히 들어가서 틈을 찾았다. 실외기 뒤, 항아리 뒤, 옆 집의 뒷 집의 좁은 복도로 가서 그 앞 집의 난간을 비춰봤다. 좁은 난간에는 죽은 화분 몇 개와 좀 큰 베니아 판이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다. 그 구석을 비추는 순간 회색의 털궁뎅이가 보였다. 얼굴과 몸 중간까지는 넣었으나 궁뎅이는 집어넣지 못하고. 퇴로를 막고 앞 집으로 다리를 뻗었다. 그 아래에는 2M아래로 아무것도 없는 아찔한 구조였다.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판자를 들고 다른 다리로는 퇴로를 막고 라라의 목덜미를 사정없이 잡았다. 라라의 표정은 어리둥절, 놀람 그 자체였다. 품에 꼬옥 안으니 심장이 고동친다. 잃어버린 아이를 야단치는 엄마처럼 타박을 하며 더러워진 라라를 목욕시켰다. 한참을 안아서 말리고 있는데 그제서야 내 얼굴에 자기 얼굴을 들이대면서 냄새를 맡더니 나름 아는 사람이라고 확신을 한 모양이다. 이 녀석이 골골송을 부른다.
집 안에서 조금의 방울 소리가 날 진정시킨다. 16시간은 자는 아이의 자는 얼굴이 날 잠들게 한다. 집 나간 후 고생을 했는지 애교가 늘었다. 배 위에도 최초로 올라오고 하루 종일 골골송이 끊이지를 않는다. 얼마 전에는 집에 온 뒤 잠깐 해줬던 꾹꾹이도 해줬다. 이게 뭐라고 그리도 고맙다.
라라의 수많은 털. 작은 체구지만 한 사람분의 존재감. 딱히 하는 일없이 그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사랑받고 사랑할 존재로 괜찮구나 생각하게 하는 고양이 한 마리. 집에 들어서면 고양이답게 내킬 때만 마중을 나오지만 누군가의 체온으로 방안 한 구석을 덥히고 있을거라 생각하면 집에 오는 길, 발걸음이 빨라진다. 사람에겐 사랑을 주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고 해선 안되는 일이라는 식의 연애 코치를 받지만,
이 작은 생명체에겐 사랑을 주고도 사랑을 받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