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에 대하여 2

모든 감정은 존재 이유가 있다...

by moonbow

열등감


열등감과 우월감은 필연적인 짝꿍이라고 한다. ‘열등감 덩어리’란 이야기도 종종 듣고 열폭한다는 이야기도 들어보았다. 열등감이 없는 사람은 없겠지. 자기 자신을 믿는 마음과 내 자신이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아, 라고 암시하며 노력하거나 자기도취에 빠져 있어서 덜 느끼는 사람도 많을 테고.


난 학교에서 공부나 선생님의 관심을 받고 주어진 것을 잘하는 데에 엄청난 노력을 퍼 붓고 느낄 우월감의 달콤함에 취하기도 했다. 갑자기 공부를 못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자 나를 둘러싼 시선이 싸늘해진 것을 느끼곤 내가 사는 세계가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이유 없이 미운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나에게 있는 어떤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던데. 열등감과 우월감도 나와 거울에 비친 나의 상(IMAGE)과 비슷한 관계일까.


다시 차근차근 생각해보면 굉장히 불가능한 꿈을 꾼 것 같다. 가능하면 꿈이라고 부르겠냐만 예를 들어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나’를 이루는 구성요소를 바꾸고 싶어 한다든지. 백인이 아닌 아시아인. 서울 태생이 아닌 시골 출신. 그런 차이에 있어서 무시를 하는 순간을 잘 못 넘긴다고 해야 할까. 누구든 그런 몽상 혹은 망상을 한 적이 있겠지만 뭐든 잘하고 집안도 좋고 똑똑하기까지 한 만화에나 나올 법한 사람을 꿈꾸기도 한다. 한 발 자국 더 나아가 그렇지 못 한 나를 업신여기고 또 그런 요소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동경과 질투의 양가적 감정이 나를 너무 괴롭힌다면 그건 나의 일상과 삶에 있어서 너무도 불행한 일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주인공처럼 프랑스어와 독일어로 언어로 시를 읽어주는 부모와 그림같은 곳에서 긴 시간을 휴가로 보내는 사람이 결코 나는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선택하지 않은 많은 것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고 그에 대한 결핍과 열등감이 실제 나를 둘러싼 사랑과 내가 가진 것들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말했다. 부르주아는 향유하는 일상과 브랜드가 다르고 여행도 많이 다니기 때문에 좋은 취향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다. 자신은 아무리 옷을 잘 입으려고 해도 아베크롬비에서 옷을 사는데 어떻게 취향이 좋겠냐며 자조했다. 난 굳이 고위층이면서 돈도 많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좋은 브랜드를 많이 접한다고 해서 꼭 좋은 취향을 갖게 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대꾸했다. 물론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이 많아야 취향을 가질 수 있고 또 좋은 취향이라는 것도 있을 수는 있겠지만 하지만 필요 충분 조건이 될 수는 없으니. 내 반발에 그는 몹시 흥분하고 화를 내면서


‘네가 돈이 없어서 여행을 많이 못 해봐서 모르겠지!’

라고 일갈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주위의 시선은 다 나로 향했고 내가 또 부적절한 언급을 한 사람이 되어 버린 분위기, 또는 그런 공격에도 방어나 반박을 하지 못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집에 와서 많이 울었다. 주변에서는 여행을 많이 해본 것 같다거나 여행 작가가 어울린다든지 영어를 하니까 이민을 가라든지 유학도 하고 여행도 많이 했겠다 라는 말을 종종 듣는데 실상은 한 번의 미국행 한 번이 전부였다. 친척집에서 빨래하고 조카도 아닌 어린 사촌들 뒷바라지 하면서 걔네 교과서 읽었던 것을 연수라고도 여행이라고도 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말이지.


그래서 페이스 북이나 블로그나 누군가 어디 여행을 갔다고 하면 그게 부럽고 심통까지 나고 또 여행을 다니며 다시 삶의 방향을 찾는 풍의 스토리가 유행처럼 번진 적도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결핍이 열등감으로도 있었다. 이 열등감의 에너지를 치환하기 위해 난 외국어에 관심을 갖기도 하고 소설도 읽고 다큐멘터리도 보면서 언젠가 간다면 더 많이 느끼고 오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거나 강원도 본가로 가는 버스에서 한껏 음악에 도취해 검은 차창을 바라보며 시카고나 잘 알지도 못하는 도시로 달리고 있다고 상상하며 음악에 빠져들기도 했다.


여행이란 게 지리적 이동만이 여행은 아니기에. 물론 좀 억지스러운 도취기는 했지만 그런 소소한 짓거리를 하면서 여행과 같은 경험을 하고 그가 말한 ‘좋은 취향’을 갖지는 못 했는지는 몰라도 나만의 감수성이나 현실과 동떨어져 상녀에 잠겨 이런 저런 이야기들과 아직 만나지 못한 주인공들을 그려보기도 했다.


돈이 없다는 것과 그래서 여행을 못한다는 현실을 취향도 없고 그 말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인신공격으로 받았다고 생각한 나는 너무도 비참했다. 그 때는 정말 길 잃은 어린 아이처럼 밤새 울었는데 나중에 어쩌다 그 이야기가 나오니 그는 그저 그런 뜻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기억력이 좋아 정확한 워딩과 분위기까지 기억하고 담아 두곤 하는 나쁜 습관이 있다. 그 땐 나만 또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아 기분이 많이 나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그의 열등감을 나에게 폭력적으로 행사했을 뿐이고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의식하지 못하며 자신의 주장에 반박하는 자기보다 어린 여성을 가만두고 싶어 하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말아 버렸다. 그게 사실이건 사실이 아니건 중요하지는 않다. 나도 비슷하게 나의 열등감으로 남에게 말이라는 칼로 찌르고, 눈빛으로 적대감을 드러낸 적도 많으니.


내 열등감이 살아오면서 치고 들어오는 실패와 조롱 에 더 큰 상처를 내 자신에게 더 내곤 한다.

여름휴가 때 복잡한 머리를 식히겠다며 김을 매고 나서 나름 재밌었다며 농사를 짓고 싶다 했다. 친척이 ‘그래 넌 농사나 지어라.’라며 힐난을 했다. 나쁜 기분을 누르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는 그런 말로 자신의 열등감의 방향을 바꿔 날 찌르고 아주 얄팍한 우월감이나 느끼려고 하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늦게 알게 되어 괜한 상처를 더 많이 받고 살게 된 진리랄까 하는 것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말을 한다.

그러니 상처받지 말아야 한다 라기 보다는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이 곧 큰 잘 못이라는 점이다.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라는 게 면죄부는 절대 될 수 없고 자신의 무식함을 드러내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나도 내 열등감으로 남에게 독화살을 쏘지 않도록 적당한 자아도취와 적당한 거리로 나를 지키고 싶다. 독화살을 쏘고 나면 사실 내게 다시 그 화살이 오기에. 그러면 좀 더 복잡한 감정이 되어 나를 누르게 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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