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늘 먹고 나서 후회할까
졸업을 앞둔 대학생 현아씨는 요새 음식과 다이어트 생각에 파묻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격증 공부는 해야 하는데 아까 먹은 크림빵 칼로리를 생각하느라 집중은 되지 않고, 환기를 위해 친구들과 약속이라도 잡을라치면 칼로리 높은 음식들을 먹어야 한다는 두려움에 연락하기도 꺼려집니다.
현아씨의 첫 다이어트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저녁을 거의 거르다시피 하면서 한 달을 지내다 보니 현아씨는 생애 처음으로 체중계에 찍힌 49라는 숫자를 보았습니다. 그러자 웬걸, 친구들이 부럽다며 어떻게 살을 뺐냐고 계속해서 물어봤고, 학교 동기들도 전과는 달리 현아씨에게 관심을 가지는 게 확 느껴졌습니다.
계속해서 저녁을 쫄쫄 굶어야 했기에 배가 너무 고팠지만, 현아씨는 그 공복감마저도 즐기며 ‘날씬하면 사람들이 좋아하니까’라는 생각으로 다이어트에 더 몰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현아씨는 여느 때와 비슷하게 저녁은 거의 먹지 말자는 생각으로 친구들과의 약속에 나갔습니다. 그렇게 친구들을 만나 치킨을 시키고.. 그다음 순간, 치킨을 허겁지겁 먹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현아씨는 놀란 마음에 손에 들려 있던 치킨을 황급히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다짐한 양보다 훨씬 많이 먹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자책감과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현아씨는 다이어트와 폭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폭식을 한 다음 날이면 마음을 다잡고 더 독하게 다이어트 계획을 세웠고, 처음에는 몇 달에 한 번이었던 폭식이 점점 잦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매일 다이어트 계획을 세웠다가 망했다가, 몸무게 숫자 하나에 하루에도 천당과 지옥을 오갔습니다. 분명 처음에는 마음먹은 대로 살 빼는 게 쉬웠는데, 지금은 음식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고, 처음 다이어트를 시작했을 때보다 오히려 살이 더 쪄버려 친구들 앞에 나설 자신도 없습니다. 현아씨에게 필요한 것은 과연 새로운 다이어트 방법일까요?
현아씨처럼 반복되는 다이어트와 폭식을 견디다 못해 상담실에 찾아온 분께 “왜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어보면 많은 분은 이렇게 답하곤 합니다. “제 만족을 위해서요. 사실 주변에서는 크게 뭐라고 하지 않는데 저는 제가 살이 지금보다는 빠졌으면 좋겠어요.” 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더 물어봅니다. “그래요. 자기만족 때문일 수 있죠. 하지만, 무인도에 혼자 산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래도 지금처럼 다이어트를 할 것 같으신가요?” 이런 질문에는 대부분 쉽게 “네”라고 하지 못하거나, “그래도 그럴 것 같은데요.”라고 당장 대답하더라도 생각이 많아지는 듯한 표정을 보이곤 합니다. 내 만족이라고 생각했던 다이어트를 곰곰이 되돌아보면, 사회 속에서 인정받기 위해 혹은 사랑받기 위해 선택한 수단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죠. 다이어트를 성공했을 때 남들이 부러워하거나 관심을 보이지 않았더라면, 현아씨는 정말 다이어트에 몰두하고 있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관심받고 싶어 합니다. 가족과의 관계에서, 친구와의 관계에서, 연인과의 관계에서 이 욕구가 충족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관계 안에서 충분히 사랑받기란 생각보다 매우 어렵습니다. 사랑은 받고 싶은데, 직접 표현해서 받는 것이 어떤 식으로든 막혀 버리면 사람들은 인정받을 수 있는 수단을 찾아 나섭니다. 현아씨처럼 ‘나는 별로 잘난 게 없으니 날씬하기라도 하자는 마음’에서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죠.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공부가 될 수도, 운동이 될 수도, 일이 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다이어트는 공부, 운동, 일 등과 비슷하게 ‘혼자서’ 열심히 애쓰는 것이죠. ‘관계에서 사랑받고 싶어서’ 시작한 다이어트인데 결국 ‘혼자서 애쓰게’ 되는 이 아이러니함. 현아씨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다이어트 방법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관계로 직접 나와 표현하는 것입니다. 체중에 상관없이, 내가 어떤 모습이든 나를 사랑하고,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사랑받는 경험이 있어야 다이어트에 대한 집착이 줄어드는 것이죠.
<또, 먹어버렸습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