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늘 먹고 나서 후회할까
18살 고등학생 우진이는 엄마와 말다툼을 한 날이면, 홀로 과자 몇 봉지를 다 뜯어서 먹고 나야 제정신이 들곤 합니다. 엄마는 우진이가 왜 과자를 먹었는지는 이해하지 못한 채 아침이 되면 널브러진 과자 봉지를 보며 또다시 잔소리와 비난을 쏟아냅니다.
"다이어트 한다고 비싼 닭가슴살이랑 도시락 같은 거 시켜 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과자를 뭐 이렇게 사서 다 먹었어?!! 살쪘다고 PT 같은 거 담부터 절대 안 시켜줘. 먹고 치우지도 않고 이게 대체 뭐니?! 이럴 거면 나가서 혼자 살아!!"
엄마의 잔소리 폭격에 우진이는 자고 일어나자마자 한 대 맞은 것처럼 기분이 얼얼합니다.
"아 어쩌라고!! 내가 언제 치워달래??? 나 좀 냅둬!"
그러면 엄마는 우진의 태도에 더 화가 나 씩씩대며 엄마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너 같은 딸 필요 없다, 다음부터 돈 주나 봐라 등등의 레퍼토리가 이어집니다. 이럴 때 우진이는 또다시 떡볶이, 불닭볶음면 등 자극적이고 배부른 음식들이 생각납니다. 엄마와 싸운 우진이는 도대체 왜 음식을 찾게 될까요?
여러분은 우리의 뇌가 신체적 고통과 심리적 고통을 완벽히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미국의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가 두통, 치통, 생리통이 있을 때 먹는 타이레놀(타이레놀은 제품명, 아세트아미노펜이 약 이름)이 심리적 고통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느끼는 뇌의 부분이 비슷하므로 일시적으로 그 부분이 마비되면 우리가 느끼는 심리적 아픔도 함께 완화되는 효과를 볼 수 있죠. 이별의 고통을 ‘마음이 아프다.’ ‘심장이 저린다.’라고 얘기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누군가를 마음에서 떠나보낸 경험은 실제로 신체적 통증과 비슷한 아픔을 줄 수 있다는 것이죠.
이와 비슷하게 우리의 뇌는 배가 고프다는 ‘신체적 신호’와 마음이 공허하다는 ‘심리적 신호’를 쉽게 혼동하곤 합니다. 마음이 공허할 때, 세상에 혼자 있는 기분이 들 때 음식이 더 당기는 것이 뚱딴지같은 얘기가 아니라는 뜻이죠.
그렇다면 사례에 나온 우진이는 어떤 마음으로 음식을 찾게 되는 걸까요? 성인이 되고, 독립하더라도 부모님과의 관계는 우리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데 많은 영향을 줍니다. 그렇다면 아직 어른들의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보호가 필요한 청소년들의 경우 부모님의 한마디 한마디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죠. 부모님은 우리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존재이며, 가장 처음으로 맺은 중요한 관계이니까요.
실제로 저는 석사 논문을 통해 부모의 양육 행동이 자신을 거절하고, 거부한다고 인식할수록 자녀의 폭식 행동이 증가한다는 결과를 확인했습니다. 이는 폭식을 어린 시절에 받지 못한 양육과 위로, 공감적 반영을 음식으로 대체하려는 현상이라고 본 Humphrey의 연구결과와도 일치했죠.
우진이의 다이어트는 또래 친구들의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남들이 하는 대로 곤약밥, 다이어트 도시락, 닭가슴살 볼 등으로 다이어트를 했고, 엄마를 졸라 PT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체중 감량은 쉽지 않았죠. 내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 한 다이어트인데 빨리 성과는 나지 않고, 오히려 음식 생각은 더 나고, 한 번 먹으면 끝까지 먹게 되니 우진이는 절망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우진이가 왜 다이어트를 하는지, 왜 과자를 더 까먹게 되는지, 그러고 나면 얼마나 죄책감이 많이 드는지를 물어보고 걱정하기보다는 단순히 행동에 대한 비난만 늘어놓습니다. 거기다 더해 “나가서 혼자 살아라.”, “너 같은 딸 필요 없다.”라는 말을 들으니 우진이는 내 존재 자체가 거부당했다는 기분이 들어 너무 속상합니다. 안 그래도 친구들에게 내 가치를 증명할 방법을 찾기 위해 먹고 싶은 치킨과 피자를 참아가며 버텼는데, 나를 가장 잘 알 거라고 기대했던 엄마마저 나를 이해 못 한다고 생각하니 우진이는 세상에 혼자가 된 기분입니다.
이렇게 거부당한 마음은 우진이에게 정서적 공허감과 허기로 다가옵니다. 정서적 허기에 더해 그동안 다이어트 때문에 참아왔던 식욕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칼로리는 높고, 포만감 있는 음식들이 그 순간 떠오르는 것이죠. 어떤가요? 우진이처럼 우리가 꼭 엄마와 싸우고 나면 짠 맛 나는 과자들과 매운 떡볶이에 손을 뻗게 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존재한답니다.
<또, 먹어버렸습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