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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a kim Mar 05. 2019

오늘은 글력(力) 달리는 날

글력(力) 운동 부족

오늘은 글력(力) 달리는 날

- 글력(力) 운동 부족



함박눈이 내렸으면 참 잘 어울렸을 것 같은 날이라고 기록했던 작년 연말의 어느 화요일, 카카오임팩트의 컨퍼런스에 초대받아 다녀왔었다. 일명, Creators day. 카카오임팩트는 크리에이터를 지원하고 그들의 창작 에너지를 통해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 설립했다는 카카오의 재단이다. 초대받았던 날에는 brunch 세션이 진행되었는데 그날의 주제문이 바로 "힘을 얻다. 힘을 미치다. 글력(力)"이었다.


컨퍼런스 행사 장소 곳곳에 위치한 설치물들에서는 심심치 않게 '글력'이라는 단어를 자주 찾아볼 수 있었고, 발음 유희와 함께 재치 있게 적혀있는 문구들이 마음에 들었다. 예를 들자면, '오늘은 글력(力) 운동하는 날'이라던지, '체력은 국력. 글력은 노력.'이라던지. 그리고 오늘의 내게 적용되는 말은 "피할 수 없다면, 써라."


글쓰기를 일상 속 가까이 두려고 하는 한 사람으로서, 평소에 글감으로 쓰고 싶은 주제가 예고 없이 떠오르면 그 주제(topic)를 기준으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고 싶은지 개괄적인 구조를 이어 보고 메모해두는 편이다. 글쓰기도 화자의 에너지를 언어라는 매체를 통해 하나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창작 활동이므로, 도깨비방망이 휘두르듯이 '금 나와라 뚝딱'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보통의 내가 글을 쓰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주제를 표현할 수 있는 키워드를 정하고 나면, 이 키워드는 정물화로 묘사해보겠다고 장르를 정한다. 정물화 안에 이번 글의 키워드들인 사과, 석고상, 꽃과 물이 담긴 유리잔 등을 어떤 구도로 배치할지 거친 선으로 데생을 한다. 연필을 스쳐가며 얇은 선들을 쌓아 굵은 선으로 굳혀가기도 하고, 사과를 더 강조하고 싶어져서 사과가 정물화의 제일 앞에 위치한 것처럼 보이도록 지우개와 함께 원근감을 조절하기도 한다. 빛과 그림자의 방향과 같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맞춤법, 기승전결 등의 규칙은 전면에 통일하여 적용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순서는 어지간하면 창작물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말아뒀던 레드카펫 풀듯이 머릿속에서 촤르륵- 펼쳐지곤 한다.


'와, 그럼 글을 일필휘지 후드리챱챱(?) 써 내려가니 걱정이 없겠다'가 내 이야기였으면 좋겠다만 아쉽게도 아니다. 반대로 머릿속에서 반짝하고 레드카펫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풀어나가봐야 할지 도통 손이 움직여지지를 않는다. 평소에 글감이 떠오르면 메모를 해두는 편이라고 했지만, 이렇게 풀리지 않는 날은 그 메모를 봐도 여전히! 굳건하게! 머릿속에서 글력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그렇다. 오늘 나는 지금 글력(力)이 달리는 날이다. 글력(力) 운동 부족으로 바들바들거리고 있는 중이다. 글이 안 써진다고, 쓰고 싶은 글감의 개요가 눈 앞에 떠오르지 않는다고 변명의 말을 길게 늘이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나는 온라인 글쓰기 모임, 씨리얼노트를 이끌고 있기에 피할 수 없어서 쓰고 있는 게다.


일상에서 내게 영감을 주는 크고 작은 임팩트가 이렇게 꼭 필요한 시점에서 본연의 색을 빛내지 못하고 있는 건 내 글력운동 부족 탓이다. 많이 보고, 듣고, 읽고, 생각해야 하고 그 무엇보다 꼭 자주 그 결과물들을 출력하여야 한다. 김영하 작가님은 글은 써봐야 본인의 생각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내 머리에서, 가슴에서, 저 안의 응어리에서만 생각에 그치고 발아를 하지 못한다면 바보 같은 생각을 흡수하고 품고, 많이 생각하는 것에 비해 그다지 성장하지 못한 채 살게 될 거다. 메모해둔 그때 반짝거리면서 마르지 않는 잉크가 전달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지나쳐버리기엔 너무 아깝잖아. 그리하여, 현재 씨리얼노트에서 brunch를 통해 2주에 한 번씩 글을 발행하고 있지만 그 외 게릴라 글을 발행하는 빈도를 늘려보려 한다고 이렇게 또 지키지 못할 약속을 뱉어본다. 선언해야 부끄럽게 도망가지 못한다.


야호, 오늘 결국 글을 쓰긴 썼다! 글력이 쬐에에에끔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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