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어(core)에 힘 안주냐
나의 걸음걸이
- 코어(core)에 힘 안주냐
(사진출처: 디아블로 코리아)
토슈즈를 한 때 그러나 잠깐, 신어봤던 시절이 있다.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동네에 있는 발레학원에 다녔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엄마의 로망에 의해 강제로 등록된 딸래미는 역시나 발레에 흥미를 가지지 못했다. 그래도 나름 결석 없이 꾸준히 다녀보게 되었던 원동력은 바로 고학년 언니들이었다. 잔머리 하나 없이 야무지게 끌어올린 똥머리에 운동가방을 메고, 누가 잡아당기고 있는 듯 쫙 펴진 어깨와 함께 맞춰지는 팔자걸음은 그 당시 내가 느끼는 그들의 시그니쳐이자 선망의 이미지였다.
그녀들이 멋있고 부러웠다면 발레를 열심히 했으면 될 텐데 이미 잿밥러가 되어버렸던 꼬맹이는 언니들의 행동을 따라 했다. 목을 빳빳하게 들고 팔자걸음을 걸었다. 누군가가 너는 왜 그렇게 걷냐고 물으면 있어 보이려고 눈을 내리 깔며, “발레 해서 그래.”라고 답한 기억이 있다. 학원에 가봤자 다리만 찢고 있는 주제에. 8살의 허세는 결국 엄마의 등짝 스매싱으로 마감했다. 발레의 내공이 없이 어설픈 흉내만 내던 따라쟁이는 우아한 팔자걸음이 아닌, 배 내밀고 신발을 찍찍 끌어대는 아저씨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었기에.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라고 그 짧은 시간 동안 따라 했다고 다시 팔자걸음 버릇을 없애는 데에도 시간이 꽤나 걸렸다.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사는 게 지쳐서 코어에 힘을 못 주고 있을 땐, 나도 모르게 또다시 배 내밀고 뒤꿈치를 끌며 호머 심슨처럼 걷곤 한다. 사실 어제 지하철 환승하다가 또 아차차 하고 발견했다. 백조처럼 우아한 선을 가져보라고 다녔던 발레학원에서, 힘 빠진 놀부의 걸음걸이를 키워버린 딸래미는 지금까지도 이 버릇이 남았다는 사실을 엄마에게 비밀로 하고 있다.
그럼 나는 내 걸음걸이를 사랑하지 않는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았다. 사실 별 관심이 없었다.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내 걸음걸이까지 좋고 싫음을 생각할 계기가 딱히 없었다. 우연하게 내 걸음걸이를 관찰하는 기회를 만나게 되었고 이내 애정보다 아쉬움이 자꾸 올라왔다. 그 이유는 딱 하나다. 건강. 건강에 지속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 앞서 말한 코어에 힘을 주지 않고 걷는 팔자걸음은 도미노처럼 발목과 고관절을 자근자근 작살내버린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몸은 점점 더 굳어가 자질구레한 부상도 잦아졌다. 직시한 이상 내 건강을 위해 의식적으로 걸음걸이를 업그레이드해보고 싶어 졌다. 항시 코어에 힘을 주고 걷는 연습을 하자. 내 안에 중심을 잡고 무게감을 둬보자. 그럼 자연스레 내게서 나오는 아우라도 조금은 무게중심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
그나저나, 점잖고 깊어야 할 양반들이 왜 이리 가벼워 보이는 팔자걸음을 걸었을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