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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a kim Sep 10. 2019

나는 늘 화가 나 있는 사람이었다

고객경험의 최전방에 서서 날 쏘고 가라

나는 늘 화가 나 있는 사람이었다

- 고객경험의 최전방에 서서 날 쏘고 가라




나는 늘 화가 나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회사에서 벌린 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만 해도 정신이 없는데, 매일 같이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사과를 해야 했다. 사과를 왜 해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 일들도 종종 있으나 여전히 사과를 우선적으로 해야 했다.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밝히고 넘어갈 알 사람은 알고, 모를 사람은 모르는 나에 대한 사실 하나. 현재 스타트업계에서 가장 핫한 아이템인 공유 모빌리티 서비스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오퍼레이션팀에서 초기단계부터 함께 하고 있으나, 현 직무와는 꽤나 무관한 전공과 경력(간호사/간호학 석사)을 가진지라 이렇다 할 뚜렷한 담당 분야가 없이 이것저것 모든 일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불행인지, 행운인지.


서비스 모델을 디자인하는 초기단계에서 반드시 구축해야 할 CS(Customer Service). 외주를 주게 될 경우, 기본 조건에 월 천만 원 이상의 고정지출이 생기게 되는 상황이었으니 '영세한' 스타트업은 당연히 내부에서 해결하기로 목소리가 모아졌다. 그러다가 말 그대로 엉겁결에 내가 맡게 되었다. 죄송한 일상의 시작이었다. 새로 시작하는 비즈니스이니 매뉴얼부터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인데, 나는 매일 같이 회사 대표전화를 비롯하여 각종 채널을 통해 고객님들께 얻어터졌다. 그때부터였을 거다. 나는 늘 화가 나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인간 혐오까지 올라오게 만드는 일들이 있어도 차마 고객들에게는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니, 회사에서 항상 울화통 속에서 허우적댔다. 어떤 일이든 그 책임 소재에 관하여 나를 방어하는 걸 우선적으로 급급해하기도 했다. 어제보다 오늘 더 지쳐갔다. 새치가 늘고, 위산은 폭발하고, 뒷목은 뻣뻣해졌다. 무엇보다 브랜드에 대한 애정을 잃을 것 같았다. 이 상태로는 장기는 커녕, 당장의 몇 달, 며칠도 버티지 못할 것 같아서 없는 시간을 쪼개 틈틈이 나를 탐구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도대체 나는 왜 늘 화가 나 있고 예민한 동료가 된 것일까.


첫째로, 이미 나는 CS라면 진절머리가 난 사람이었다. 전문직과 서비스직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간호사로 일하던 병원사람 시절, 이미 말도 안 되는 건 by 건으로 감정노동을 했었다. 안 되는 것을 무작정 해달라고 조르는 사람, 이전에 편의를 봐줬더니 호의를 권리로 하는 염치없는 사람 등등. 그래도 간호사는 전문직이기에 갑질하는 고객(환자 또는 보호자)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스스로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의 CS는 그럴 수 없었다. 철저하게 갑질 당하는 을병정 정도 되었으며, 처절하게 고객의 노여움을 풀어드려야 했다(물론 갑질 고객은 소수이며, 매너 있고 우아한 고객이 더 많다). 왜 발생하는지 영문을 모르는 상태에서 고객에게 전달받은 개발 시스템적인 결함, 하드웨어의 부실함, 그리고 여실히 부족한 인력 상황에서 매일 오로지 혼자서 얻어터지니 지인들 사이에서 나는 자타 회사 몸빵이었고, 액받이무녀였다.  


둘째로, CS는 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담당자를 채용하기 전까지 잠시 거쳐가는 임시직이라고 여겼다. 앞서 말한 사업 구성 초기 단계에서 CS 외주 견적을 알아볼 당시에 팀원들과 나눴던 대화가 있다. 외주 비용은 당연히 부담이 되는 데다가, 사업 초기 단계일수록 고객의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니 외주를 통해 통계치를 보고받는 것보다 내부에서 직접 해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그 대화의 끝에 지나가는 말로 했던 이야기는 '운영팀은 서비스 시작하면 지금보다 더 정신없고 바쁠 테니 'CS 따위'에 시간을 쓸 여유가 없을 것이다. CS 전담 직원을 뽑자'였다. 나도 안다. 이 대화가 시작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부끄러운 대화였다는 것을. 고객의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듣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면서 CS는 '따위'라는 단어로 그 직무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hustle한 사람들이 모여서 고생 속에서 보람이라는 작은 진주를 품어내는 게 스타트업인지라 고상한 일을 하려고 온 것은 절대 아니었으나, 자꾸 '내가 모두가 하기 싫어하는 CS만 하려고 경력과 석사를 버리고 이직한 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개인적으로 job love를 매우무척퍽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그게 없이는 일을 더 이상 수행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담당이 되기를 꺼려하는 이 일을 '나의 일'로 여겨버리면 전공무관자인 나의 커리어는 CS의 늪에서 영영 빠져나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제일 먼저 나를 위해 보상이 필요했고, 따라서 직업적 보람과 소명감을 어디에서든 꼭 찾아야 했다. 그렇다면 매뉴얼조차 아직 없는 이 상황에서 CS 책임 담당자인 내가 오퍼레이터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개발 관점에서의 시스템 구축의 기획과 매뉴얼 작성이었다. 개발자분들을 계속 귀찮게 굴며 효율을 올리기 위한 시스템 구축에 깃발을 꽂아보기로 했다. 관련 직무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아직은 나의 기획이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번 기회에 차근차근 공부하면서 기본기를 다져가는 중이다. 


이전에 우아한 형제들 회사의 HR 파트에 지원하여 최종면접까지 갔던 적이 있었는데, 비록 최종에서 함께하지 못하였더라도 여전히 배운 게 많았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채용 경험이 왜 갑자기 툭 튀어나왔는고 하니,  그때 만나 뵈었던 HR 팀장님과의 첫 면접(전체 전형의 첫 단계이자 전공 무관자이기에 추가된 전형) 때 나누었던 대화가 매우 값졌는 데다가 당시 내게 주천해주셨던 책, <순간의 힘>을 이번 시기에 재독을 했더니 생각 정리를 하는데 꽤나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면접치고는 캐쥬얼하게 진행되었으나 1시간이 넘게 대화가 이루어졌고, 특히 외부고객과 내부고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많은 가르침을 주셨었다. 그에 따라 흔히들 표현하는 진상고객님을 마주해도 진성으로 대하려고 했다. 일희하되(나의 보람을 위해 중요하다), 일비하지 않고 고객이 원하는 포인트가 무엇일까 찾아보고 공감의 스위치를 올리려고 노력했다. <순간의 힘>에서도 이야기하듯이 해당 서비스에 대해 고객이 겪은 부정적인 경험에 직원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를 단번에 브랜드의 팬으로 만들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의 순간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을 대하면서 나는 이제 화를 조절하는 법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오히려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스트레스의 부과로 승화시켜 나를 확장하는데 나의 에너지를 투자한다.  데이비드 스콧 예거의 연구처럼 지금의 나는 전문분야를 벗어나 지식과 통찰력을 기르는 단계에 있고, 이는 높은 기준과 확신을 통해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다고 믿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내가 내게 내린 처방과 해결 계획은 다음과 같다.

우선적으로 나를 위한 정기적이고 단계적인 보상은 필수다. 고객 경험의 최전방에 서 있는 오퍼레이터인 나는, 외주를 주게 되었을 경우 통상적으로 받게 되는 통계 데이터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그 이상의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 사람(거창하지만 사실이다)이라는 심리적 보상을 정기적으로 스스로에게 주기로 했다. 게다가 지치지 않기 위해 매일 정기적으로 나를 챙기는 시간을 갖는데 힘을 더 싣기로 했다. 매일 집에 오면 허덕이거나 지쳐 쓰러져버리기 일쑤였지만 이제는 나를 위한 시간을 더 챙겨보고 있다. 명상을 하고, 수고한 내 몸을 마사지바로 도닥여주기도 하고, 좋아하는 음악과 향을 셋팅하고 책을 읽는다. 짧은 시간일지라도 차곡차곡 쌓여 내 hp 게이지를 늘려주고 있는 기분이 들어 행복하다.


둘 째로는, 내가 곧 동종업계에서의 차별화 전략이 되기로 했다. 비슷한 수준의 디바이스와 개발기술력을 두고 고객에게 터칭을 줄 수 있는 힘은 결국 예상하지 못한 순간의 선물이다. 선물이라고 해서 꼭 비용이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는 담당자의 ego가 끼치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이 된다. 매뉴얼에 따른 체계적인 대처를 하되, 고객에게는 매뉴얼을 따라 읽는 앵무새로 보이지 않게 진정성 있게 대하는 것이 응당 중요하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세를 통해, 서비스를 선택하는 그 순간을 선물하고 싶어졌고 난 그것이 곧 우리만의 차별화 전략이 될 것으로 자부한다.


마지막으로는 확장을 위한 기초공사를 게을리하지 않기로 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전문분야를 벗어난 통찰력을 기르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이는 꾸준히 공부하지 않으면 절대 성장할 수 없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또한 무엇을 좋아하는지 등을 계속 파악하여 잘하는 것은 더욱 잘할 수 있게 고양시키고 부족한 부분은 평균치까지 끌어올리도록 틈을 메우기로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또다시 빛나고 있을 나를 바라보면 얼마나 행복할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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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약 6주간의 시간이 걸렸다. 심지어 휴가 내내 생각했다. 걸린 시간에 비해 글의 완성도는 떨어지고, 여전히 횡설수설하지만 그만큼 얼마나 beautiful struggle을 이뤄내려 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자, 날 쏘고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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