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관찰습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na kim Mar 20. 2019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네가 지금 소비자라면 넌 웃을 수 있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 네가 지금 소비자라면 넌 웃을 수 있니



나는 예민하다. 예민한 사람이다. 예민함이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여 속상한 1인으로서(국어사전에서의 '예민하다'의 의미도 절대 부정적이지 않다. '예민하다: 무엇인가를 느끼는 능력이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빠르고 뛰어나다')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그 예민함은 여러 방면에서 내게 꽤 그 진가를 발휘한다. 예를 들자면, 예민한 사람이 선택한 식당은 실패할 확률이 낮다던지. 예민(sensitive)한 사람이 공격적(aggressive)이라는 것은 편견이다. SNS 계정의 bio에도 '내 안의 가시도 쓸 데가 있다고 믿는 문화소비자'라고 적었다.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예민한 내가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다툴 때도 사용하고, 회의할 때도 사용하고, 칭찬을 할 때도 사용한다. 이 말이 습관이 된다면 겪는 초기 부작용은 입장 바꿔 생각할 줄 모르게 된다는 점이다. 바꾸다라는 개념은 방향성이 정해져 있지 않고 열려 있다. 하나만으로는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다. 두 가지가 서로 바뀔 수도 있고, 세 가지 이상의 것이 각자의 방향으로 교환될 수 있다. 그러나 저 '입장 바꿔 생각하자'는 말을 서툴게 사용하다 보면, 상대방에게 내 입장에서 생각해보라고만 강요하게 된다. 결국은 일방향의 "야, 내 입장에서 생각해보라고."만 되는 것이다. 마치 다각도에서 고민해보는 사람인 마냥 자기를 속이는 초기 부작용을 몇 번 겪고 나니 약간의 레벨업을 하게 되었다. 저 말을 떠올릴 땐, 동시에 최소 두 가지 이상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 내 입장을 변명하거나 포장하고 싶을 땐 의식적으로 저 말을 사용하는 것을 피하기. 감정이 상했을 때도 양쪽에서 생각해보고, 칭찬을 할 때도 여러 입장에 서서 입장을 배워본다. 조금씩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레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 관찰 습관은 마케팅 관점에서 생각하는 힘을 기르게 해 줌을 느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생활화랄까.


이전에 봤던 임원진 면접에서 내가 하고 있는 '첫번째서랍' 프로젝트를 왜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었다. 하도 떨어서 그때 대답으로 뭐라 뭐라 헛소리를 하다가 마무리를 "~이렇기 때문에 저는 그런 것들을 하고 싶어요."라고 멍청하게 말했었다. 역시나 바로 다음 질문은 "그런 것이 뭘 말하는 거죠?"였고, 허둥지둥 정신 차리고 "사람들의 needs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게 기획하는 일을 말하고 싶었습니다."라고 지저분한 설명을 덧붙였었다. 그렇다. 나는 현재와 미래, 그리고 잠재적 소비자들의 needs를 빠르게 파악하여 거기에 걸맞은 기획을 구상하는 것을 좋아하고 매우 관심이 많다. 광고와 마케팅을 사랑한다. 그런 나라서 작은 생일 선물을 사도 "와 너무 내게 필요한 거야." 혹은 "센스 있다!"라는 반응을 이끌고 싶어 꽤 긴 시간 동안 고민하고 찾아본다. 앞으로 이 매거진에도 이런 관찰 습관에서 보고 느낀 이야기들을 정리할 예정이다.


그 첫 에피소드로는 지난주에 다녀온 제주도 출장에서 꽂힌 관찰 포인트를 소개하고 싶다. 우리 회사와 제휴를 맺게 되어, 제주도 성산에 위치한 플레이스 캠프라는 호텔에 숙박을 하였다. 제주도에서 서울로 진출한, 몇 안 되는, 이례적이라 불리는, 카페 도렐(Dorrell)의 본점이 있는 곳이다. 이 호텔의 방은 좁은 공간에 최소한의 것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침대, 화장실, 작은 스툴과 테이블 하나. TV도 없는 데다가 무채색의 모던한 인테리어로 혹자들에게는 '감옥 호텔'이라고도 불리더라. 방에 있으면 마치 인테리어가 잘 된 감옥에 있는 것 같다는 평이다. 사실 플레이스 캠프는 이렇게 방을 기획한 데에는 확실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액티비티 프로그램들에 힘을 주고 있는 만큼, 방에만 있지 말고 나와서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체험하고 활동해보라는 기획자의 의도를 녹인 것이다. 그런 최소한의 구성으로 옹골진 방에서 샤워를 하다 문득 거울을 보았다.


(플레이스 캠프 제주의 샤워실 거울)


'온수 샤워 중독자'인 나는 어디서 씻더라도 높은 수온으로 인해 수증기를 가득 만드는 사람이다. 항상 거울은 금방 증기로 뿌옇게 가려지고, 양치를 할 때, 메이크업을 지울 때, 그리고 그냥 나를 볼 때마다 손으로 뽀드득 거울을 닦아서 보려고 하지만 선명하게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는다. 당연한 불편함으로 여겼다. 아니, 불편하다고도 생각 못하고 넘겼던 것 같기도 하다. 이 곳, 플레이스 캠프 제주의 샤워실 거울에 일부에는 투명하고 얇은 필름이 한 장 붙어있다. 필름이 아닐 수도 있다. 특수 약품이 뿌려진 것일 수도 있다. 그게 뭔지 무엇이 중요한가 나는 인테리어 업자가 아닌데. 호텔 투숙객 입장에서 생각한 작은 시도 하나가 소비자에게 기분 좋은 편안함을 가져다주었는데! 제주도에 날고 기는 멋진 숙소가 가득하지만, 이 거울을 발견하곤 '제주에 올 때마다 이곳에서 묵어도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여행도 많이 다녀보고, 나를 위한 선물이랍시고 고급 호텔에서의 호캉스도 즐기는 편인데 이런 디테일을 챙겼던 곳은 아직 못 봤다. 내 기억에는 없다. 분명 있었다면 이번 플레이스 캠프에서 처음 봤을 때만큼의 감동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기에 기억을 못 할 리가 없다. 내가 호텔 운영팀 직원이고, 회의시간에 '(회사 돈을 들여) 거울에 수증기가 차지 않는 부분을 만들어보는 게 어떨까요?'라고 제안했을 때, 숙박비에 그 금액을 녹이지 않고 순전한 서비스의 개념으로 그 안건을 받아주는 상사(좋은 상사분들도 물론 엄청 많다!!!)분들은 얼마나 될까. '회사가 봉사단체도 아니고 수익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말이야. 정 하고 싶으면 그 아이디어가 우리 회사에게 얼마나 수익 상승에 영향을 줄 것 같은지 보고서 써서 올려보던지 블라블라블라' 하는 장면이 먼저 떠오르는데 이는 억지는 아닐 테다.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디테일을 사랑한다. 당장의 직접적인 수익을 가져다주지 못할지라도 그 감동의 힘은 정말 엄청나다고 자부한다. 앞으로도 감동의 디테일을 관찰하고 기록으로 남겨둘 것이다. 내게 그런 핑계 대지 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네가 지금 소비자라면 넌 웃을 수 있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