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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a kim Jun 23. 2019

처음으로 불쾌하지 않았습니다.

부산 민락어민활어직판장 순번제의 순기능

처음으로 불쾌하지 않았습니다.

- 부산 민락어민활어직판장 순번제의 순기능



들어가자마자 손목을 낚아챈다.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 귀 아프게 큰 소리로 때려 박는 목소리 때문에 미간이 찌푸려진다. 의지와 무관하게 선택을 강요받는다. 생각해볼 시간 따위는 허락되지 않는다. 돈은 내가 내는데, 빼돌리진 않을까 사기 치진 않나 예민하게 촉수를 세워둬야 한다. 그렇게 억지로 쥐어진 결과물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가성비의 반의어다. 불쾌하다. 다음은 없다고 생각하며 자리를 정리한다.


그동안 회센터에 방문할 때마다의 경험과 함께 저장된 나의 감정들이다. 입구에서부터 울려대는 호객행위는 시작부터 수산시장을 둘러볼 기회를 앗아간다. 상인들이 흘려보내는 묘한 위압감은 소비를 하러 온 고객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불쾌함을 만들어낸다. '잘해줄게'라는 말은 이미 신뢰를 잃었고, 호구처럼 상차림 식당에서 넋 놓고 손질을 기다리다간 뒤 도는 순간 횟감 일부를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트릭을 발견하고자 잔뜩 마술사의 손을 노려보는 것 마냥 인간 CCTV가 되어야 하는 것 역시 엄청난 스트레스다. 그저 좀 더 싱싱한 해산물을 먹고 싶었을 뿐인데 그 과정이 꽤나 고행이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도 '유저 친화적'이지 않을 수가 있는가. 소탐대실의 굴을 열심히 파고 있는 노량진의 기울기를 곁에서 자주 지켜보는 사람으로서, 금번 친구들과의 부산여행에서도 나는 한껏 냉소적인 애티튜드를 장착하고 광안리에 찾아갔다. 공격이 들어오면 한치의 양보도 없이 쳐내리라. 타지 사람이라고 더 수작 부리려거든 큰 코 다친다고 온몸으로 경고하리라. 수변공원 근처에 있는 회센터에서 횟감을 포장하고, 노상에서 광안대교를 보며 회(膾)원결의를 하자는 단 하나의 계획으로 떠나게 된 부산 여행이니 호구가 되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으리라!


밤 11시. 민락어민활어직판장의 출입구에 들어가자 역시나 시끌시끌하다. 가방끈을 괜히 다시 꽉 잡아본다. 우리를 향해 손짓하며 뭐라 뭐라고 외치는 상인의 부산 사투리를 애써 외면하며 제일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 보려 했다. "아가씨들. 뭐 먹으러 왔는데예?" / (호객행위가 드디어 시작됐구나) "아. 안쪽부터 좀 둘러보려고요." / "안쪽은 끝났어. 여기서 말해주소." / (흥. 호구로 낚일 줄 알고?) "아, 아니, 안쪽에..." / "끝난다니까예.야간은 우리 순번제라~ 여기서 줄 서서 순서대로 주문하면 된다꼬~" / (상황 파악 중) "네?" / "아가씨네는 저어기 광주네 1번으로 가소. 어이! 광주네 1번 갑니데이!" / (?????)


그 넓은 수산시장이 안쪽부터 차례로 천이 덮어지고 불이 꺼지고 있었다. 여전히 활발하게 횟감을 턱턱 칼질하는 도마 소리가 들리는 집들은 입출구 바로 앞 대여섯 개 정도뿐이고. 그 앞에 손님들이 벽 쪽에 붙어 나란히 자신의 물고기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민락어민활어직판장은 야간에는 순번제로 돌아간단다. 손님이 오면 한 집씩 순서대로 횟감을 주문받아 손질해주는 순번제. 우리가 상황 파악을 하느라 눈을 요리조리 굴리고 있는 순간에도 2번, 3번 집에 순서대로 손님들이 횟감을 주문하고 있었다.


수산시장에서의 야간 순번제라니. 누가 먼저 생각해냈을까. 상인들은 몇만 원 더 벌겠다고 매일같이 그 야간에 체력을 갈아내면서까지 버티고 있을 필요가 없다. 당연히 더 많은 손님을 채가려는 아등바등 호객행위도 불필요하다. 사탕발림으로 꾀내는 호객행위가 없으니 손님도 마음이 편하다. 어느 집이 정직한가, 어느 집이 '잘 해주나' 가려내기 위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모두가 만족스러운 평화로 철썩이던 광안리였다. 순번제라는 단어에 유독 민감한 전공인 나는 우연히 만난 순번제의 순기능에 감탄하고 회 한 점 입에 넣고, 또 감탄하고 광안대교의 야경을 구경했다. 앞뒤로 들썩이며 조정하고 정답은 없더라도 다수가 만족하는 최선의 선택을 찾아내는 것이 이렇게나 매력 있는 일이었구나. 뜻밖의 업무 관련 환기도 일으켜준 관찰이었다.


일상의 순간에서 영감을, 그리고 찰나에서 성찰과 성장을! 도와줘서 고맙다 부산! 다음에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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