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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a kim Oct 01. 2018

파김치

사람은 변한다. 그렇지만 쉽지 않게.

파김치

- 사람은 변한다. 그렇지만 쉽지 않게.



나는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때부터 매운 음식을 좋아하고 잘 먹었다. 특히 김치는 배추김치며 열무김치며 가리지 않고 매 끼니때 챙겨 먹었다. 그랬던 미취학 아동의 내가 어느 날 차려진 반찬으로 배추김치가 아닌 다른 종류의 김치를 거부감 없이 집어먹었다가 다 뱉어버린 적이 있다. 파김치였다. '으엑 이게 뭐야'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쓰고 묘한 맛에 뱉어버렸고,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이 김치는 어른들이 먹는 것'이라며 안 먹어도 된다, 먹지 말라고 하셨다. 그 이후로 내 인생에서 20여 년 간 파김치는 그 존재감 자체를 강제로 지워져 살았다. 쓰고, 묘하며, 뱉고 싶었던 경험이었으니까.


20여 년이 지난 지금, 우연히 한 곱창집에서 기본 찬으로 나오는 파김치를 말 그대로 '아무 생각 없이' 자글자글 기름지게 구워진 곱창구이와 함께 곁들여 먹고는 파김치 팬이 되어버렸다. 파김치인지 알지 못하고 초고추장 양념이 많이 묻은 파채나 겉절이류의 반찬이겠거니 하고 함께 먹었다. 아니 사실 그런 생각조차 별로 거치지 않고 그냥 '기름진 곱창+빨간 맛'을 함께 젓가락질을 한 본능이었다. 여전히 파김치는 쓰고 묘한 맛이었는데 나름 '어른'이 되는 중인 내겐 꽤나 매력적인 맛이었다. 원효대사 해골물처럼 파김치였는지 모르고 먹었을 때의 효과인가 싶어 다음엔 파김치라는 걸 인지하고 먹어봤고 역시나 맛이 좋았다. 지금 내게 제일 좋아하는 김치 종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파김치를 외칠 수 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다들 입버릇처럼 말한다. 연인 관계에서도, 부모 자식 관계에서도, 그리고 당연히 직장에서도. 맞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사람은 변한다. 그렇지만 쉽지 않게.


파김치라는 어찌 보면 단순한 취향, 게다가 달라져보려고 큰 노력을 투자하지 않았던 부분이었어도 '기름 진 곱창'이라는 외부 요인에 의해 나의 취향은 변했다. 우연의 일치인가 싶어 확인도 해봤고 변함이 맞았다. 하물며, 그렇다면! 변하고자 애쓰고 자신의 에너지를 갈아 넣는다면 사람은 자연히 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렇지만 그 과정이 쉽지 않을 뿐,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라고 부정적인 어투로 말할 필요까진 없다고 본다.


나 같은 경우는 20대 중반에 가장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여유 있게 보내는 일명 '일찍새'가 되고 싶어 부단히 노력했던 부분은 여전히 습관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는데, 특히 신기하게도 가치관 등에 대한 부분은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었어도 이제 와서 전구에 불 켜지 듯이 변화가 일어나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되었다. 여전히 평생의 경험이 거듭 쌓여 만들어 낸 그 겹이 가치관을 빚어낸다고 생각하는데도 그런 경험의 순간에서 영감을 얻어 방향이 틀어지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참 신기하다. 예를 들어보면, 한창 동아리가 인생의 전부가 되고 싶었던 20대 초반 어느 날의 내 모습이 갑자기 20대 중후반이 되어 떠올라 내 가치관을 정면으로 강타했던 경험이 있다.


공연을 올리는 동아리였기에 무대 위에서 이목을 잔뜩 받는 멋진 모습을 발휘하기 위해, 내게 남는 짬 시간은 연습에 올인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가 형성된 시기였다. 불행하게도 나는 그 분야에서는 실력이 많이 부족하였기에 지적이 많았고,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는 채찍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시기기도 했다. 또한 동시에 외형부터 내면까지 남에게 보이는 내 모습이 최우선적으로 중요해서 포장과 치레에 많은 걸 걸고 살던 시기였다. 그러던 나날에 팀장을 맡은 동기가 내게 쓴소리를 했다. 왜 연습을 안 오냐, 넌 연습을 왜 안 하냐 등등 결국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팀원들 앞에서 쏘아 올렸다. 그 당시의 나는 나 나름대로의 바쁜 스케줄 사이로 연습을 꼬박꼬박 나가다가 딱 한 번 못 나간 것뿐인데, 타고난 실력이 부족한 것으로 남들 앞에서 내 노력을 무시하고 망신을 주는 것 같아 무척 서운하고 화가 났었다. 나도 알고 남도 아는 내 실력의 부족함을 거기서 인정하고 더 열심히 해보겠다고 마음먹었으면 되었을 것을, 남들 앞에서 빛나야 하는데 오히려 지적받는 내 모습이 억울해 눈물이 났다. 내 기억 속 2번, 3번 연습을 더 많이 빠졌는데 나와 같은 무안함을 당하지 않은 다른 팀원들을 언급했다. 이 비겁하고 찌질한 눈물이 그땐 정당한 눈물이라고 자기 합리화 포장을 했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고 있을 때, 다른 팀원인 친구 한 명이 내게 다가와 딱 한 마디를 지나가는 말로 건네고 자리를 비웠다. "윤아야, 남들 말고 너 자신에게 집중해보는 건 어때?" 뭐 이런 류였다. 난 미웠다. 팀장도 아닌데 너는 무슨 권리로 왜 내게 말을 더하는 거야? 너도 내 편 아니잖아. 너도 내 노력을 무시하는 거야? 미웠다. 그렇게 스트레스만 한 가득이고 지고 공연 기간은 끝이 났다. 뒤풀이도 감흥 없었다. 내겐 떠올리고 싶지 않은 대학생활의 일부였고, 얻은 게 없고 잃은 게 많은 아까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다. 20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갔고, 학생 신분에서 사회인이 되었지만 학생선생님이 선생님이 된 것뿐 생활환경이 크게 달라진 게 없는 연장선의 생활이었다. 여느 평범한 날의 평범한 카페에서 평범한 커피를 마시고 멍하니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을 흘려보내고 있던 순간에 뜬금없이 그 날의 장면이 떠올랐다. 눈물 고인 눈으로 바라보았던 팀장의 얼굴, 거울 속 얼굴 잔뜩 구긴 나, 눈치 보는 팀원들, 내게 한 마디를 건네며 자리를 뜨던 그 친구까지. 그리고 다시 나. 세상에! 떠오른 장면을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둘러보고 마지막에 다시 바라본 그 장면 속의 나는 너무나 너무나도 멋없는 못난이었다. 흔히들 '이불킥 찬다'라고 하지만 그 철없는 시절을 후회하는 표현과는 느낌이 좀 달랐다. 멋없는 못난이 외에 더 적절한 표현은 없는 듯하다. 한 번뿐이건, 여러 번이건 연습에 나오지 않은 건 내 잘못이었고 팀장의 위치에선 충분히 내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건 실력이나 친분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난 내 실력 부족에 대한 열등감을 엄한 곳에 불똥 튀게 한 것이다. 나보다 연습을 많이 빠졌던 팀원들은 나보다 팀장과의 개인적인 친분이 깊어서 눈 감아줬다고 이상한 이유를 갖다 붙였다. 그땐 그 이유가 내 목숨을 걸 수 있을 만큼 타당하다고 생각하고 눈물이 났는데, 이제 와서 보니 어찌나 그 눈물이 창피하던지. 목숨도 경솔하게 걸고 말이야. 내게 한 마디를 건네고 가줬던 그 친구에게 용기를 내어 연락을 했다. 그 공연 이후로 사적인 연락은 전혀 하지 않았던 사이라 연락처를 겨우 찾아서 구구절절 장문의 카톡을 적어 보냈다. 나도 왜 지금 그 날이 떠올랐는지 모르겠지만 돌이켜보니 내가 참 못났었고, 그 못난 모습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던 건 네가 내가 그 한 마디를 남겨줬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팀장에게도 미안하지만, 네게도 고마운 마음이 들어 이렇게 갑작스럽게 연락을 남긴다고. 당황스럽거나 달갑지 않은 연락이었다면 미안하지만 네 덕분에 내가 스스로 추한 모습을 인정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기에 꼭 감사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그렇게 나는 변했다. 갑작스럽지만 갑작스럽지 않았고, 쉽지 않게 변했다. 그 날을 기점으로 남에게 보이는 내 모습에 집착하던 나름의 강박을 좀 더 확실하게 내려놓을 수 있었다. 외모지상주의이면서 결과 중심의 물질만능주의인 사회에서 100% 다 내려놓진 못했다. 여전히 그때마다 내게 들이닥치는 파도에 의해 쉽게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확실한 건 시간이 지날수록 그 외부 요인이 내 멘틀을 공격할 때마다 무너지더라도 털고 일어나는 주기가 점차 짧아졌다. 아니면 스스로 느끼는 타격감이 좀 견딜 만 해지기도 했다. 가장 강력한 변화는 자존감에 연속된 공격이 왔을 때, 변명이나 이유를 외부에서 끌어오기보다는 나의 내면을 스스로 솔직하게 바라보는 시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연습 중이며 이는 죽을 때까지 하게 될 연습일 테다. 그렇게 나는 변했고 계속 변하고 있다.


이어서 내게 온 또 다른 변화가 있다면 순발력 있게 내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치가 오히려 줄어들었다. 지금보다 어린 시절의 변화곡점을 겪기 전의 나는 언변이 좋고 순발력을 가진 말 잘하는 사람이었다. 토론 대회에서는 주제를 이끌어가고 압박 질문에 대처를 잘 했다. 윗사람의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임기응변 답을 능청스럽게 뽑아내 필기보다 술기에 강했다. 그러나 지금은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순발력을 요하는 자리에서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이전만 하지 못하다. 비교를 해보면 이전의 나는 '아, 이 말은 하지 말 걸'이란 후회가 십중팔구였다면, 지금의 나는 '아, 이 말을 더 했으면 좋았을 걸'하는 후회가 대부분이다. 글쎄, 아직은 내 결론의 마침표를 찍진 않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이어진' 변화라고 생각한다. 변화곡점 이전의 나는 타인에게 비치는 내 모습이 중요하기에 항상 주변의 눈치를 살피고, 말로써 포장하고 '있어bility'를 높였어야 했다. 그래야 내 자존감을 겨우 채운다고 믿었다. 그때의 나는 자연히 순발력 있는 언변이 좋았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무게감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본질에 집중하는 시도를 자주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내 생각을 밖으로 꺼내기 위해서 그 단계가 더 신중해졌다. 신중하려고 의도해서 한 행동이라기보단, 스스로에게 매 번 던지는 '왜?'라는 질문이 시간을 벌어주었고, 그 시간이 신중함을 낳았다. 써먹지 않는 수학 공식은 잘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나를 포장하기 위해 눈치를 보며 ‘상황맞춤말’을 만들어내지 않다 보니 순발력 있는 언변은 결과적으로 퇴화하지 않았나 싶다.


난 요즘 전혀 다른 분야로의 이직을 준비 중이고, 오늘 2차 임원진 면접을 봤다.

파김치고, 변화고 하는 이야기들이 사실 다 오늘 면접을 보고 무너진 내 멘탈을 위로하기 위한 다독임일지도 모른다. 특수한 직군에서 일을 했던지라 이런 1차 실무진, 2차 임원진의 면접의 경험이 전무했고, 특히 30분도 걸리지 않았던 짧은 임원진 면접은 시작부터 끝까지 후회의 아우라가 나를 집어삼켰다. 저 질문에선 왜 이 말을 하지 못했을까, 내가 신중하게 대답하고 싶어 생각을 정리하는 모습이 오히려 답이 느려 감점 요인이 되진 않았을까, 차근차근 간결하게 답하면 될 것을 시간이 없다고 왜 혼자 조급해서 횡설수설했을까....... 마지막엔 대표님 입에서 나온 확신이 없다는 말과 정확히 일치하던 그 표정이 눈 앞에서 가시질 않는다. 나는 위와 같이 쉽지 않지만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냈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성장의 진행형이라고 전달하고 싶었는데 마냥 아쉽고 속상하기까지 하다. 이미 내 손을 떠난 시간이라 바꿀 수는 없지만, 다시 되돌려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한들 능청스럽고 순발력 있게 내 자신감을 어필할 수 있었을까 나 조차도 확신이 들지 않는다.


파김치가 되어버린 오늘, 그래도 믿는 점이 하나 있다.

오늘의 파김치 경험은 내게 또 다른 변화곡점이 되어줄 것이라는 것.

그리고 나는 성장하는 사람이니까 언제 생길지 모르는 그 변화곡점이 전보다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도록 이끌 것이라는 것.


이전엔 구김살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구김살 많은 내가 싫었다. 하지만 지금은 구김살이 많은 내 과거가 소중하다. 그 구김살들이 곧 나의 변화곡점이 될 상상을 하면 '어휴, 앞으로 김윤아가 나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이렇게나 많구먼!'하며 기다리고 있는 앞 날 덕에 근질근질하다. 오늘도 그런 날이다. 셀프 다독임의 마무리로 오늘은 꼭 운동을 하고 자야겠다. 나는 회복탄력성이 좋은 사람이니까! 최종면접까지 수고 많았어. 그러니 아쉬움과 후회는 이 글에 묻고 보내주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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