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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a kim Sep 02. 2020

데이터를 좋아하세요?

- 정성은 정량을 이길 수 없을까

데이터를 좋아하세요?

- 정성은 정량을 이길 수 없을까



매일 같이 숫자와 데이터에 과학적으로 의존하며 일을 했던 적이 있다. 병원에서. 환자에게 주관적인 데이터를 얻고, 각종 검사를 통해 객관적인 데이터를 수집해서 치료계획과 의사 결정을 내렸다. 그러던 곳을 벗어나 새로운 업계에서 일을 하다 보니 똑같이 데이터는 데이터고, 숫자는 숫잔데 내가 보던 거랑은 너무 다른 범주인 거다. 경향을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게 데이터 분석의 역할이라는 데에 있어서는 같은 맥락이겠지만, 기존의 내 지식과 경험으로 데이터를 만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분명 공부의 필요성도 안팎으로 느끼고 있었으나 외면했다. 지금 당장 보고 배우고 해치워야 할 일들이 산더미인지라 데이터를 쥐락펴락하는 마술은 내게 good to have 였던 것이다.


내가 좀 더 흥미를 느끼고, '잘'하고 싶고, '계속' 하고 싶은 영역은 정량적인 기획과 마케팅이 아닌 정성적인 일들이라 계속 모른 척했다. 소위 브랜딩이라고 말하는 한 브랜드의 결을 수놓는 작업들에 매력을 느꼈고, 이는 필히 숫자를 뛰어넘는 경험과 감각이 중요하리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내가 데이터를 입맛대로 만질 줄 안다면'이라고 상상해본 적도 많다. 그렇다면 트렌드를 읽는 스카우터를 찬 무적 브랜드쟁이가 되었겠지. 이것도 시도해보고 저것도 도전해보는 용기와 그럴듯한 근거 있는 자신감을 배양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나는 모든 걸 다 잘할 수 없을 거라고 핑계를 대며 데이터는 끝까지 손에 잡지 않았다(드문드문 곁눈질로 들여다보긴 했다. 그렇지만 남 일을 흥미를 가지고 보는 딱 그만큼만).


그렇게 못 본 척 넘긴 지 2년. 여전히,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서점에는 데이터 분석에 관한 책들이 수두룩하게 쏟아져 나오고, 베스트셀러 자리도 확고히 버티고 있다. 비대면 온라인 클래스에도 온통 데이터를 가지고 노는 법에 대해 열혈 전도하는 강의들이 넘쳐난다. 채용공고에도 데이터를 볼 줄 아는 사람을 찾는 글들이 가득하다. 프리랜서로 소속 없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게다가 코로나로 모든 시장과 판국이 쫄아버리는 설상가상에 내 불안감도 같이 나날이 늘어간 최근의 몇 개월. 데이터 분석도 야매가 아닌 공부를 해야 한 것인가 고민하는 몇 개월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진행 중. 한 가지 일도 평균 이상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지 않은 것 같은데 새로운 가지를 뻗어버리면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으면서 바쁘기만 한 상태가 되는 게 아닐까 걱정되어 생각만 하다 이내 접곤 했던 몇 개월이기도 했고. 내가 너무 트렌드를 외면하고 흥선대원군 스텐스를 취하고 있는 것인가 검열에 들어가기 일쑤였다. 마치 5G 시대에 난 필요 없다며 2G 폰을 고수하는 사람이 된 기분이랄까. 그러던 중 커리어 컨설팅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나의 굽이굽이 남다르고 구구절절한 커리어이야기를 펼쳐낸 후, 그들이 가지고 있는 내 평가를 바탕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설명하자마자 바로 나온 솔루션이 또 '데이터'였다. 그들은 내가 작업한 포트폴리오의 과정과 결과물을 전반적으로 평가했을 때,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활용할 줄 아는 스킬을 기른다면 내 기획물엔 날개를 다는 격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간절해야 하는 사람은 나인데, 데이터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얼음처럼 멈춰버린 내게 SQL 기본이라도 공부를 해보는 게 어떠하겠냐고 거꾸로 설득을 하는 요상한 상황이 그려졌다. "아...네.... 데이터요.... 아하.... SQL이요.... 퍼포먼스요.. 오호...."라고 당신의 이야기를 존중하여 듣고 있다는 최소한의 리액션으로 그 자리를 마무리했다. 정녕 앞으로는 데이터 없이는 자립하기 힘든 시대가 도래한 것인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건, 공감을 이끌어 내는 카피 한 줄과 퀄리티 좋은 그래픽이 모인 정성적 자료일텐데. 난 이렇게 어설픈 레벨의 직무역량만 하나 더 늘리는 동족방뇨의 달인이 될 것인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시작 안 하니만 못한 결과면 어떡하나. 고민 가득 안고 시작된 9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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