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 MBC 뉴스 윤지운입니다.
됐다. 어쨌든 진짜 방송국 카메라 앞에 서서 정식으로 프롬프트를 보며 멘트를 쳐봤으니, 이거면 됐다. 매일 옥탑방에서 달을 올려다보며, 너의 밝은 빛만큼이나 내 청춘도 환하게 비추어 달라고 빌던 건 이제 그만해야겠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마음이 급해졌다. 이십 대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벌써 회사를 여덟 번이나 옮겼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1년 넘게 돈을 좇아 보험영업을 해보고, 그 경험으로 기업은행 최초 남자 텔러로 입사했다. 하지만 행원으로서 행복하냐는 나의 질문에 선뜻 답을 해주지 않는 선배를 보고는 연수 중 나와 버렸다.
대학 졸업 후, MD(상품기획자)라는 직업이 미래에 주목받을 것이라는 정보를 들었다. 악착같이 노력해 학교에서 몇몇에게만 주는 추천 ID를 받아냈고, 여러 차례의 면접 끝에 TV 홈쇼핑 MD가 되었다. 하지만 초 단위로 쪼개는 실적압박과 입점 업체를 쪼아야 하는 일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이후 그냥 대학 전공이나 살리는 게 나을 것 같아 의류 회사로 이직했다.
해마다 경기는 나빠지기만 했고, 대졸자 취업 경쟁률은 몇백 대 일을 넘기며 또다시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었다. 그래, 결국 옛 어른들 말씀 틀린 것 하나 없듯 공무원 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구해야 한다. 하지만 공무원을 준비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고, 토익 800점대로는 공공기관 정규직 서류 합격 문턱도 넘기 힘들 것 같았다. 현실에 맞춰 공기업 인턴십에 발을 비벼 넣어 보았다. 그것도 두 번이나…
수많은 자기 개발서와 강연에서는 아직 늦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했다. 100년 인생에 2-3년 방황은 고작 2% 라며 인생 시계로 치면 아직 아침인데 뭐가 그리 조급하냐며 반문한다. 계속해서 꿈을 찾아야 한단다. 청년이라면 계속 치열하게 더! 고민하고 더! 도오-전해 보란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화장품에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교 때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본사에 메일을 보내 환경을 생각한 리필 세안제를 제안했었다. 메일을 받은 담당자는 반영은 어렵지만 학생의 아이디어는 고맙다며 화장품을 잔뜩 보내주기도 했다. 그 기억을 살려, 화장품 회사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화장품 기획 관련 대외활동을 해보고 싶었으나 대학생만 지원하란다. 졸업은 이미 했지만 취업준비생이라는 것이 결국은 4학년 졸업반과 뭐 크게 다를 것이 있겠냐며 담당자를 설득했다. 게다가 유통 관련 직장 실무 경험까지 갖춘 내가 더 현실적으로 아이디어를 줄 수 있는 게 본인의 업무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했다. 그걸 기회로 아모레퍼시픽에서 최초의 고객 연구원으로 활동을 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신입 공채에 지원했지만 최종면접에서 떨구더라.
학부생부터 해 온 여러 가지 대외활동, 그리고 여러 곳의 직장을 거치며 결국은 ‘좋아하는 일’보다 ‘잘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결론을 냈다. 어릴 때부터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을 좋아했고, 항상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왔던 것을 발판 삼아 착실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아나운서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올인을 해보았다.
하지만 인생, 뜻대로 되지 않더라.
그렇게 대학 졸업 후 지난 5년 동안 내게 맞는 일을 부단히 찾아보았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여기는 사람 때문에 힘들었고, 저기는 88만 원 세대에 맞게 돈을 너무 적게 줬다. 또 거기는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나라에서 억지로 인턴을 늘리라고 해서 뽑은 거니 하루빨리 다른 곳으로 준비해서 나가라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일까? 그 알 수 없는 인생의 답을 이제는 좀 쉬면서 찾아야겠다. 그렇게 다시 짐을 싸서 부모님 밑으로 들어왔다.
모두가 출근하고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에 느지막이 일어나 밥을 꺼내어 먹는다.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 위로 비춘 쭈그리고 앉아 수저를 뜨는 내 모습이 그렇게도 꼴 보기가 싫었다. 커튼을 활짝 걷어 검은 화면 위로 얼빠진 못난 나를 햇살로 지워버렸다. 그래도 이 와중에 꾸역꾸역 입으로 밥은 잘도 넘어가니 어이가 없다.
이번에도 퇴사를 택했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하루하루 전쟁 같던 회사 막내 생활이 지겨워 현실에서 도망쳤던 게다. 염병, 그렇게 지겨운 막내 짓을 십 년이나 더 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