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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오빠 Nov 04. 2024

한국이 싫어서 (2)

초등학교 시절부터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걸렸던 나는 부모님께 상처 주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마치 사회 부적응자처럼 회사를 오래 다니지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혀 서류 통과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괴로웠다. 이러한 마음이라면 어떻게든 가서 차라리 더 안전하게 일자리를 구하고 살아 낼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편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혹시 가서 언제라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제일 먼저 보험부터 가입했다. 사망 보험금 5천만 원. 이거면 부모님께 빌린 돈도 갚을 수 있고 장례 비용까지 충분할 게다. 죽음을 그려보니 어떻게 살아왔는지 과거를 정리하고 싶어졌다. 다시 한번, 깨끗한 A4용지를 꺼내 지난 20대에 내가 해왔던 일들을 쭉 적었다. 아르바이트와 직장 경험, 그리고 나이만큼 취득했던 자격증을 정리했다. 그렇게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보니 이 파일을 영어로 만들어서 가져간다면 무언가 도움이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필요한 모든 경력증명서를 다시 영어 버전으로 준비했다. 특히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대학교 1학년, 그러니까 10년 전에 비록 3개월뿐이지만 잠깐 아르바이트를 했던 맥도날드 경력증명서도 영어로 발급받으면 좋을 것 같았다. 고객센터에 문의를 하니 본사 인사팀의 대표 이메일 주소를 알려 주었다. 당시 근무했던 매장은 없어진 지 오래되어 가능할까 싶었지만,  고민할 새도 없이 메일을 썼다.





안녕하세요?

예전에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윤지운 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다음주 주말에 호주 브리즈번으로 떠나는데요.

그곳에서 매도날드 아르바이트부터 새로 시작해서 취업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혹시 예전에 한국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했던 경력증명서를 떼가면 도움이 될까 하고

문의 드리고자 하는데, 홈페이지를 보아도 마땅히 문의할 곳을 찾지 못하여 이렇게 메일 드립니다.

혹시 가능한가요?


제가 일했던 지점은 부평점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1동 261-6 2층 _ 부평 롯데백화점 맞은 편 건물) 이고요.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ㅠㅠ


아르바이트는 2004년 8월 10일에 첫 급여를 받은 걸로 확인 하였습니다.

너무 오래된 데다가 지점까지 없어져서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혹시나 기록이 있고 증명서 발급이 가능하다면(영어버전이면 더 좋겠습니다만, 한국어 버전이라도 상관 없습니다) 받을 수 있을까요?

제가 출력할 수 있게 이메일로 보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제가 직접 본사든 어디든 오라는 곳으로 받으러 가겠습니다. (이하 생략)


-



나의 사연을 담아 보낸 메일을 받은 맥도날드 인사팀 담당자는 기록이 오래되어 나의 정보를 찾을 수가 없기에 급여를 받았었던 내용을 증빙을 할 수 있으면, 경력증명서 발급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처음 성인이 되고 개설했던 은행 통장이었기에 의미가 있어 버리지 않고 갖고 있던 게 행운이었다. 매월 찍혔던 급여 내역을 스캔하여 보냈고, 인사팀은 응원한다며 영어로 된 경력 증명서를 발급해 주었다.





안녕하세요 윤지운님,

한국맥도날드 인사팀 황고은입니다.


요청하신 경력증명서 영문으로 발급하여 파일로 첨부해 드립니다.

참고로 직위를 제가 여쭙지 않았었네요. Crew이셨던 것 같아 기재해 놓았습니다.


저도 호주 브리즈번에서 어학연수 다녀왔었는데, 날씨가 참 좋은 곳이죠.

최근 좋지 않은 사건도 발생한 곳이니만큼 안전에 유의하시고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파이팅 하세요! :)


감사합니다.

황고은 드림


-



불법 체류자가 아닌, 나는 신원이 확실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게 일자리를 구할 때 첫 대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파일 첫 페이지에는 여권과 비자 사본, 두 번째 페이지에는 문제가 생겨도 외국인 고용주에게는 부담이 전혀 없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한 여행자 보험 증권, 그리고 이후 시간 순서대로 경력증명서와 자격증 사본을 최대한 영어로 만들어 정리했다. 그리고 표지에는 스토리텔링을 위해 'Please, Help My Dreams Come True in Australia(호주에서 나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고 크게 적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정리를 하다 보니 어느새 출국이 하루 밖에 남지 남았다.


아무도 모르는 외국 한가운데에서 정말 나는 밥벌이를 하고 잘 살아 낼 수 있을까? 이제는 진짜 나의 미래가 궁금해졌다.


현실은 야간 청소나 농장 일 같이 몸을 쓰는 일을 하게 될 것 같았지만, 가방에는 사용할 일이 전혀 없을 것 같은 교직원에게 어울릴만한 책, 정장과 구두, 그리고 동료 외국인 선생들에게 선물로 줄 한국의 김과 라면 따위로 채워야 했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짐을 싸고서는 밤새 부모님께 편지를 한 통 썼다. 그리고는 내가 내일 떠나고 나면 보실 수 있도록 방구석 한편에 놓아두었다.






부모님께


태어나 처음 부모 품을 떠났던, 군대에서 전화 수화기 너머 부모님의 목소리를 듣고는 왈칵 눈물을 쏟았던 소년은 어느새 십 년이란 시간이 흘러 다시 한번 홀로 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남들에게 한없이 늘 자랑이고 팠던 착한 아들이, 대기업이란 껍데기를 벗고는 몇 년 동안 초라하게 곁에만 머물다가 먼 이국땅으로 떠나려고 하니 죄송한 마음만 가득 차올라 무어라 염치가 없어 드릴 말씀이 없네요.


사는 게 무엇인지, 어렵지만 어쩌면 단순한 답을 따라 그냥 그렇게 사는 거요,

남들처럼 그냥 맞춰 그렇게 가정 일구고 살면 되는데... 그게 효도인 줄 알면서도 무슨 욕심을 내겠다며, 한 없이 큰 세상을 더 많이 보고 싶어 이기적인 마음으로 헤어짐의 준비할 시간도 없이 훌쩍 떠남을 용서해 주세요.


삼십 년이 다 되도록 이혼 없이 따뜻한 가정 일궈 주셔서, 저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어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외국에 머무는 기간 동안, 헛되지 않도록 목표한 바 꼭 이룰 수 있도록 치열하게 살겠습니다. 부디 제가 돌아올 때까지 몸 건강히 계셔주세요. 많이 배우고 노력해서 인생의 답을 찾고, 아울러 돈도 많이 벌어 지금까지 키워주신 것보다 더 많이 해드리고 싶습니다.


요 며칠 동안 제가 살아온 삼십 년의 시간을 정리하며, 살면서 그동안 내 잇속만 챙기고 제대로 선물 한번 해드리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에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아프지 말고, 항상 건강하세요.

유독 추워질 거란 올해 겨울 따뜻하게 잘 보내시고 내년에 봬요. 사랑하고 항상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제 마음속 깊이 항상 첫 번째로 존경하는 사람은 두 분이세요.

그 누구보다 가장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p.s 스마트폰은 가자마자 개통할게요. 자주 연락 드릴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



다음날, 온 가족이 배웅을 하러 공항에 같이 가주었다. 출국 수속을 밟으며 짐을 부치는 동안 직원은 눈치 없이 몇 번이나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맞는지 확인했다. 옆에서 부모님은 그 모습이 이상하다고 하셨지만, 워낙 급히 출국하는 거라 임시비자로 이렇게 일단 가는 거라고 둘러댔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나는 또 거짓말을 하며 떠났다.


9시간의 야간 비행.


혼자 이렇게 멀리 지구 반대편까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국 땅에, 도대체 무얼 할지도 모른 채 무작정 거짓말까지 하며 도망쳐 온 이 무모함에 헛웃음이 났다. 아니, 사실은 웃음의 가면을 쓴 공포였을 게다.


아침이 되자 창밖으로 드디어 황갈색의 땅이 보였고 햇살이 붉게 떠올랐다. 그 눈부신 빛은 걱정 따윈 잊으라며 넌 잘할 수 있다고 위로를 주는 것 같았다.


- 그래, 오늘부터 다시 태어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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