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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오빠 Nov 18. 2024

하쿠나 마타타

그래, 여기에서 먹고살려면 어서 익숙해져야겠다. 


시내를 한참 걷고 또 걸으며 눈에 익히려 주변을 쉴 새 없이 둘러보았다. 지도를 보고 각 도로명과 위치, 이동 거리 등을 파악하고 나니 어느새 어둑해졌다. 곧 비가 올 것처럼 먹구름이 잔뜩 끼었고, 바로 앞 공원에서 살인사건이 났었다고 하니 얼른 돌아가야겠다.


어찌나 정신이 없었는지 하루 종일 굶었다. 저녁은 한국에서부터 선물로 가져온 컵라면으로 대신했다. 저녁인데 다들 어디에 갔는지 방은 고요했지만, 밖은 시끄러웠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데다 백패커 특성상 다들 연신 술을 마시며 즐거운 여행자의 시간을 즐기나 보다. 드라마에서는 꼭 이런 곳에서 한잔하며 어울리다 친구도 되고 섹스를 하거나 연인으로 발전을 하기도 하던데, 그냥 나는 아무도 말을 안 걸었으면 좋겠다. 그저 혼자 있고 싶을 뿐이었다.   


술에 취한 룸메이트가 놀자고 들어와 말을 걸었지만,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는 못 들은 척했다. 사실 눈이 풀린 그들의 얼굴을 마주할 용기도 없었고, 그의 주변을 감싼 뽀얀 담배 연기와 독한 술냄새, 여기저기 피부를 뚫고 나온 피어싱을 보니 공포감만 더 커졌던 게다.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조용해졌다. 계속 이불을 덮고 잠도 안 오는데  웅크리고 있었더니 너무 갑갑했다. 쾨쾨한 방에서 나와 복도 창가에 앉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 아니, 여기는 여름비라고 생각하니 인생에서 반년이나 다시 앞으로 빨리 되감기가 된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러한 낯선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이방인 같아 속도 상했다.  


호주에 오기 전, 친구랑 홍대에 유명하다는 사주카페에 갔었다. 나의 사주를 봐주는 아저씨는 내 팔자에 외국 나갈 일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자였으면 화장품 쪽을 추천하겠지만, 남자라서 부동산이나 목재 관련된 일을 하면 잘 살 거라고 했다. 문득 생각이 난 그 엉터리 사주 풀이를 생각하며 곱씹어 보았다. 


사람 운명이란 게 답이 정해진 것도 없고 아무도 모르는 일인데 무얼 믿겠느냐, 누구 말마따나 자기 자신을 가장 믿어주고 개척해 나가는 게 맞겠지. 꿈이나 희망조차 없이 사는 사람도 많은데, 가진 거 없어도 언젠가 미래를 그리는 꿈이 있는 사람이니까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이제 와서 되돌아가느니 마느니 하는 고민은 여기서 끝내야겠다. 오늘도 힘내고, 내일도 나도 힘을 내보기로 했다. 


호주에 온 지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가지고 온 현금 1,000달러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생활비 압박이 시작됐다. 지도를 보니 근처에 큰 주립 도서관(Queensland State Library)이 보였다. 여기에 가면 우리나라처럼 정수기도 있을 거고 와이파이도 무료로 쓸 수 있을까? 운이 좋으면 저렴하게 이력서도 출력해서 근처 가게들에 뿌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오늘 아침도 한국에서 가져온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고는 곧장 도서관으로 향했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큰 도서관이라 그런지 층고도 높고 에어컨도 잘 나와 쾌적하니 좋았다. 막상 가보니 정수기 없었지만, 건물 앞에 무료 음수대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일자리를 검색하고, 근처 맥도날드에 온라인 이력서를 넣었다. 내 영어 점수는 토익 850점, Opic IM2. 이 정도면 성적표에서 일상생활에 대부분은 다 알아듣고 문법이 완벽하지 않지만 의사소통도 곧 잘한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개똥이나, 면접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다.


그렇게 며칠을 검색하고 나서야 브리즈번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위한 커뮤니티가 있다는 걸 알았다. 이렇게 무모하게 호주에 와서야 한인 사이트를 뒤적이는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을 게다. 진작 알았으면 숙소 문제도 쉽게 해결했을 텐데 어이가 없다. 최근 게시글 중에 스탠소프(Stanthorpe)라는 곳으로 농장 일을 찾아 이번 주말에 지역 이동을 할 생각이라며 같이 갈 사람을 모집한다는 글이 보았다. 자기는 차가 있으니 주유비 나눔 개념으로 30불만 주면 태워 준다고 했다. 


그래, 워킹홀리데이의 꽃은 농장이지! 시내에서 언제 연락이 올지도 모르는 서류 합격 통보만 기다릴 수는 없을 게다. 90일만 농장에서 일을 하면 비자를 1년 더 연장할 수 있다고 하니 하루하루 시간만 보내느니 어서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 그렇게 바로 적힌 연락처로 문자를 보냈고, 우리는 다음날 근처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 장소로 가니, 다부진 체격에 꽤 남자답게 생긴 청년이 앉아 있었다. 그의 이름은 민석. 나이도 나보다 4살 어린 그는 한국에서 육군 부사관을 하다가 전역하고 이곳에 온 지 1년이 다 되어 세컨드 비자가 필요해 농장에 간다고 했다. 다 모르겠고, 그냥 '군인' 출신이라는 그 단어 하나에 갑자기 모든 경계심과 두려움이 사라졌다. 이 낯선 땅에서 처음 한국어로 대화해 본 사람, 일을 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막연함과 감사함에 잘 부탁드린다며 주스를 사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주말에 만나 스탠소프로 지역 이동을 함께 하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와 선반 한편에 꽂혀있던 워킹홀리데이를 위한 가이드 책을 찾아 스탠소프가 어떤 곳인지 페이지를 펼쳤다. 



Sthanthorpe: 사과와 딸기가 유명한 농장 지역



그게 그 지역에 대한 설명의 전부였다. 대체 얼마나 작은 시골인 걸까? 


일요일 아침, 짐을 싸서 민석이를 만나러 갔다. 그의 옆에는 민지라는 한국인 여대생도 함께 있었다. 그렇게 처음 만난 우리 세 명은 민석의 운전대만 믿고 어색할 겨를도 없이 시골로 지역 이동을 시작했다. 중간에 잠시 쉬기 위해 내린 휴게소라는 곳은 허허벌판 위에 자판기 하나 없는 야생의 날 것이었고, 이동하는 내내 끝없이 펼쳐진 광야를 보며 비로소 진짜 낯선 땅에 왔다는 실감을 했다.

 

그의 옆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구글맵을 켜서 내비게이션을 같이 봐주었다. 당시 우리나라에 스마트폰이 보급된 지 몇 년 되지 않아 구글맵이라는 것 자체를 처음 사용해 보았기에 내게는 모든 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호주의 대중 시설이나 시스템은 겉으로 보기엔 오래되고 낡은 것 같아도 실제로 이런 신문물을 빨리 도입하고 잘 사용하는 것을 보면 선진국이 맞긴 한 것 같다.  


그렇게 달리고 또 달려 드디어 스탠소프 입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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