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에세이] 이제는, 글을 써볼 수 있겠다.

15년차 구성작가의 일상 구성

by 제윤김

부끄럽지만 어린 시절부터 내 꿈은 글을 쓰는 일이었다.

소설가, 에세이 작가, 드라마 작가, 방송작가... 형태는 다르지만 막연히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나이가 마흔이 다 되도록 제대로 된 습작 하나를 남기지 못했다. 교내 글짓기 대회나 백일장 등에서 곧 잘 수상을 하고 글 좀 쓴다라는 평가를 받곤 했지만, 나 스스로 온전히 작품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지구력이 부족해서 일 것이다. 스스로 핑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또 다른 이유를 고민해 봤다. 일단 난 글을 잘 쓰고 싶었지만, 잘 쓰고 싶은 만큼 평가를 받는 일이 두려웠다. 글을 쓴다면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든 드라마 공모전에 입상을 하든 결과를 만들어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경쟁에서 선택될 자신이 없었고 선택되지 않은 후의 실망감을 극복하며 글을 쓸 자신이 없었다.

또 여러 가지 핑계를 찾을 수 있겠지만, 글을 쓰기 위한 자격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컸다. 훌륭한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며 나도 저런 작품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저렇게 남에게 감동을 주는 글이란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인생에 큰 상실, 고통 또 그로 인한 진지한 성찰 없이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글을 쓰는 사람의 필수 조건은 남들은 쉽게 겪을 수 없는 상실이나 고통. 삶의 희로애락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직업으로 ‘방송작가’를 선택한 것이 비겁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는 15년 차 시사 프로그램 작가로 불리지만, 내 이름을 온전히 내걸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치밀한 스토리나 완전한 문장으로 평가받지 않는다. 내 프로그램의 콘텐츠에 대해 홀로 책임지지 않는다. 그저 사실 기반의 뉴스를 선택하고 분석하고 메시지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책임에서는 자유로운 ‘글 같은 원고’를 썼다.

내 나이 이제 마흔. 그렇다면 나는 왜 이제 와서 글을 쓰고 싶어 졌을까. 이제는 글쓰기 경쟁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생긴 걸까? 아님 인생의 경험이 그만큼 풍부해진 걸까? 물론 철 모르던 10대 시절보다 삶의 경험치가 올라갔다.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고 또 상실의 아픔도 겪었다. 사실 이러한 경험은 어린 시절 내가 생각한 ‘글을 쓰기 위해 충분한’ 경험은 아니다. 나이를 겪으며 남들도 겪을만한 평범한 경험들이다. 그런데도 나는 정말 글을 쓸 수 있을까.

사실 난 내 직업이 ‘방송작가’로 불리는 것보다 ‘구성작가’로 불리는 것을 선호한다. ‘구성’은 수많은 뉴스를 보며 가치 있는 뉴스를 선택하고 배치하는 일이다. 그 뉴스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팩트나 단어를 선택하고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일이다. 10년 넘게 그런 일을 하다 보니, 나는 이제 내 일상의 작은 일에서도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됐다.

마흔 살이라는 세월을 겪으니 파도와 같은 거대한 사건이 아닌 일상의 잔잔한 물결 속에 진짜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실 글을 쓰는 데는 엄청난 경험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글감이라는 것은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이와 공원을 달리면서도 떠올릴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내 일상 속에서 차곡차곡 쌓은 생각을 어딘가 풀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경쟁 대신 기록을, 완성 대신 과정을 써도 되지 않을까 하고.


이제는, 글을 써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