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에서 하기로 한 활동은 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로 시간을 잡아먹고 있는 동료를 보며 못마땅해서 혼자 구시렁댄 말이다. 그 말을 다음 날 바로 내가 듣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며칠 전 강의할 기회가 있었다. 줄잡아 40여 년을 강의라는 것만 하며 살아왔으니 특별한 일도 아니다. 다른 선생님들에게 ‘글쓰기와 명상’이라는 제목으로 연수의 한 꼭지를 담당했다. 오랫동안 몸 담고 있는 서울시 초중고 마음수련 인성교과연구회에서 하는 직무연수였다. 어쭙잖게 공저로 책을 하나 내었더니 억지로 떠 맡겨진 강의였다. 책을 내게 된 이야기를 한번 풀어 보라고 했다. 처음엔 거부하고 싶은 마음도 올라왔으나 이 기회에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해 보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그건 멋진 욕심이었다.
강의는 그냥 하면 될 줄 알았다. 몇 번의 연수 오프닝 사회도 무리 없이 해내었기에 그렇게만 하면 쉽게 될 줄 알았다. ‘글 쓰게 된 동기와 꾸준히 써 온 과정을 풀어내고 명상에 어떻게 활용했는지 덧붙이면 될 것 같아.’ 동료들이 해 준 조언은 용기를 내기에 충분했다. 뭐 그 정도는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연수생들이 직접 글을 써보는 활동을 통해 각자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과거의 사연을 솔직하게 끄집어내는 기회를 주고자 했다. 명상에서 하는 자기 성찰의 과정을 글쓰기를 통해 확인해보고 나서 자신의 느낌을 공유하고 마무리하는 것, 그것이 목표였다. 내 이야기는 20분 정도, 쓰기 활동 20분, 소감 나누기 10분으로 시간 분배를 하니 준비할 것도 없어 보였다.
“에이, 내 이야기를 뭐 20분 할 것도 없어. 할 이야기가 뭐 있나. 간단하게 소개만 할 거야. 말이 많으면 자기 자랑만 한다니깐. 최악이야. 그냥 간단하게 할 거야. “ 은근슬쩍 전날 강의한 동료를 의식하고 장담했건만, 글을 쓰게 된 동기로 시작한 이야기가 가지를 치고, 브런치 작가가 어떻게 되었는지, 어떻게 글태기를 극복하고 있는지, 어쩌다 책을 내게 되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책 보며 메모는 어떻게 하는지, 마구 삼천포로 빠져서 혼자 신나 있었다.
흘깃 시계를 보니 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아직 명상에 어떻게 활용했는지, 쓰기는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는 시작도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황급히 수습을 하고 쓰기 활동을 시작했지만 남은 시간중 10분 정도만쓰기에 허용되었고, 소감 나누기도 두루 해 보지 못하고 끝나 버렸다.
두 가지를 배웠다. 먼저, 해보지도 않고 남을 평가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아직도 이러고 있다니, 쩝) 또 하나는 강의도 글쓰기처럼 퇴고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강의한 동료도 완벽한 준비 없이 자기 이야기로 풀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물귀신 같았다. 물귀신을 본 적은 없지만 물속으로 마구 끌고 들어간다고 들었다. 그렇게 자기 이야기 속으로 마구 끌려 들어가서 강의를 수장시켜 버렸다.
허우적거리며 겨우 살아 나와서 결심을 했다. 혹시 같은 내용을 강의할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먼저 강의의 본류를 철저히 유지할 거다. 자신의 사례를 들고 싶으면 강의의 핵심에 필요한 것만 뽑아서 깔끔하게 연습해서 전달할 거다. 그리고 반드시 실전과 똑같이 시간을 재어가며 연습을 해 볼 거다. 그리고 시나리오에 없는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을 거다. 생각해 보니 학교에서 처음 수업을 할 때도 교안을 짜고, 몇 번을 연습했었다. 교안에 할 말까지 다 적어두었었다. 초심을 잃지 말았어야 했다. 내심 베테랑이라고 자만했다.
그래도 내 강의를 듣고 자신도 글을 쓰고 싶으나 계속 미루기만 했는데 덕분에 시작할 용기가 생겼다고 말해주는 연수생도 있었고, 어떤 분은 내용이 매우 감동적이었다고도 했다.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자만심으로 본래 목표한 과녁은 빗나간 강의였다. 강의가 이렇게 어려운 줄 잊고 있었다.
*TMI (Too Much Information) : 말이 쓸데없이 너무 많다. 반대는 PMI(Please More Information) : 조금만 더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