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슈렉1
“습지를 되찾으면 3m짜리 담장부터 쌓을 거야.”_ 슈렉
Q. 나와 세상 사이의 '담'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A. '담'은 경계다.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영역을 구분한다. 낮으면 낮은대로 높으면 높은대로. 스스로 서있는 힘이 안정적이고 지지하는 뿌리가 튼튼할수록 담은 높지 않다. 여리고 상처 받기 쉬운 마음일수록 담은 높아진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다. 담을 낮추는 마음은 내부로의 출입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다. 누구든 들어올 수 있는 낮은 담이지만 불청객은 들어올 수 없다.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혼자서도' 온전히 충만하기 때문이다. 함께와 홀로의 영역이 조화를 이룰 때 평안하다. 함께하는 장은 따뜻하고 든든하다. 그리고 오롯이 혼자서 향유하는 시간과 공간은 맑은 물이 있는 오아시스 같다. 좋은 사람들과의 시간은 영약과 같아서 삶을 풍요롭고 풍성하게 한다. 마치 좋은 음식을 먹고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우리 몸은 물을 마셔야 한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맑은 물이 깊은 갈증을 해소한다. 담 밖으로의 소풍은 그 자체로 신나고 기쁘지만 담 안에서 보내는 자신만의 시간도 더없이 소중하다.
나는 종종 각자의 담이 눈에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허락받지 않은 무례한 방문에 실수라는 변명이 통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세상은 나 외의 모든 것, 어쩌면 타인이다. 함께 어우러져 살지만 각 자의 담이 존재한다. 나는 확실하게 구분되는 사적 공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다. 심리적으로 그리고 물리적으로도. 집을 짓는다면, 작은 경계석으로 둘러싸인 넓은 동산 안에 낮은 나무 울타리로 담을 만들고 그 안에 집을 짓되 지하에 벙커를 하나 두고 싶다. 늘 머무르는 사적 공간인 집이 빛 하나 들지 않는 완벽하게 차단된 공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상처 입은 짐승이 잠시 숨을 돌릴 곳 같은, 정말 혼자 정양해야 하는 순간에 필요한 동굴 같은 곳이 집 안 어딘가에 있기만 하다면 그걸로 족하다. 경계석으로 구분된 공간은 나에게 호감을 가진 이들이 누구나 찾아올 수 있다. 낮은 나무 울타리 안으로는 초대받은 이가 들어올 수 있다.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더 특별한 사람일 것이다. 지하의 벙커는 정양의 공간이다. 홀로 내면을 들여다보고 대화하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시 밖으로 나와 '함께'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2020. 8. 14 금 D-78
<하루 10분,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으로 글쓰기>
Q. 나와 세상 사이에 ‘담’이 있다면 ‘담’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A. 슈렉은 3m짜리 담장을 쌓겠다고 했다. 나는 제주도 돌담 같은 낮은 담을 쌓고 싶다. 나의 경계를 세우고 타인과의 선을 분명히 하되 소통하고 시선을 주고받는 담. 안에서 바깥을 볼 수 있고 바깥에서도 안을 어느 정도 볼 수 있는. 하지만 나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분명히 알 수 있고 타인에게도 알려주는 그 정도의 담을 쌓고 싶다.
#하루10분영화에서건져올린질문으로글쓰기
#하루10분100일글쓰기
#영화에서건져올린질문들
#영화인문학
#영화가 나를 위로 하는 시간
<하루 10분,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으로 글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하루 10분, 질문을 보고 떠오른 생각을 인스타그램에 매일 정리합니다. 그 글들을 씨앗 삼아 브런치에서 하나씩 심어 보기로 했습니다. 나도 몰랐던 나를 알게 되는 과정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지금은 <하루 10분,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으로 글쓰기> 시즌 6 글쓰기 중입니다.
중간에 합류할 수 있어요. 함께 하실래요?
https://blog.naver.com/dove7522/222413538266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