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눈이 부시게>, I see you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내면을 보고 있나?

by 윤지원

“사람을 본다고 할 때 그 see라는 동사,
see saw seen 그 동사 알지?
그 see에는 누구를 본다는 의미 외에도
함축적인 의미가 있는 거야.
그 아바타에서 시퍼러둥둥한 애 둘이서
왜 "I see you." 그랬겠냐구.

그만큼 본다는 건 외모뿐만 아니라
이 안에 숨겨져 있는 내면을 느껴라 (그런거라구)”


_ 김혜자 <눈이 부시게>


미취학 아동이었던 시절에 꿨던 꿈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일곱 살 때였나 여섯이었나, 너무나 속상해서 꿈속에서부터 꿈을 깨서도 한참을 베개가 흠뻑 젖도록 울었습니다. 밖에 나가서 놀다가 밥 먹을 시간이 되어 집으로 뛰어 들어왔는데 외할머니와 엄마가 나를 못 알아보는 거예요. 낯선 사람을 보는 듯 멀뚱히 보는 그 눈빛이 너무나 서럽고 아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웠던 기억입니다. 사업하다가 망해 보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제2 금융권 대출로 연 49% 이율의 이자를 갚느라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은 일도 겪었지만 살면서 가장 무섭고 두렵고 겁났던 기억은 꿈속에서 엄마가 나를 못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분량 문제로 빠르게 스토리가 지나갔지만 낯선 눈빛 앞에 서야 했을 혜자의 마음이 느껴져서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급격하게 달라진 외모 때문에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준하(남주혁)에게 혜자(김혜자)가 말합니다. "본다는 건 외모뿐 아니라 안에 숨겨져 있는 내면을 느끼는 거라고" 나의 가족, 가까운 지인이 어떤 이유로 외모가 완전히 달라졌을 때 나는 외모 너머의 본모습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니면 갑자기 내 외모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면 나를 아는 사람들,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나를 알아볼까? 아마도 알아보지 못할 것 같다는 결론으로 흘러갑니다. 슬프고 속상합니다.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지만 현실이 더 드라마 같은 때도 있습니다. 지금의 신종 코로나 시국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어떤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을 하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들은 알아볼 수 있도록 외모뿐 아니라 내면을 보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영화 <수상한 그녀>처럼 갑자기 젊어진 모습으로 엄마와 아빠가 나타난다면 내면의 눈으로 알아보고 싶습니다.



함께 생각하고 싶은 질문입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내면을 보고 있나?”
“내면의 눈 시력을 키우기 위해 오늘 무엇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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