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쪽팔려서 그래요 나한테.. 그쪽이 아니라.
나이 서른 먹도록 남자 호의 하나 구분 못하고 혼자서 3년을 얼었다 녹았다 서른까지 울렁울렁.
내 마음한테 그게 쪽팔려서 그래요.
스무 살도 아니고 나이 서른에 이게 뭐 하는 짓인지.
그래서 그런 거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_윤지호 <이번 생은 처음이라>
“그 짧은 문장에 서른이라는 단어를 3번이나 쓰다니.
신피질의 재앙이네요.
스무 살, 서른, 그런 시간 개념을 담당하는 부위가 두뇌 바깥 부분의 신피질입니다.
고양이는 인간과 다르게 신피질이 없죠.
그래서 매일 똑같은 사료를 먹고 매일 똑같은 집에서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내도 우울해하거나 지루해하지 않아요.
그 친구한테 시간이라는 건 현재밖에 없는 거니까.
스무 살이니까, 서른이라서, 곧 마흔인데.
시간이라는 걸 그렇게 분초로 나눠서 자신을 가두는 종족은 지구상에 인간밖에 없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나이라는 약점을 공략해서 돈을 쓰고 감정을 소비하게 만들죠. 그게 인간이 진화의 대가로 얻은 신피질의 재앙이에요.
서른도 마흔도 고양이에겐 똑같은 오늘 일뿐입니다. “
_남세희 <이번 생은 처음이라>
“이상했다. 저 이상한 말이 그 어떤 말보다 위로가 되었다.”
_윤지호 <이번 생은 처음이라>
서른이라서 마흔이라서.
어쩌면 지구가 한 바퀴 돈 것뿐인 하루, 태양 둘레를 한 바퀴 돌았을 뿐인 일 년. 인간의 편의를 위해 구분해 놓은 날짜와 나이가 어떤 결정을 내리거나 선택을 할 때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시작을 할 때도 멈출 때도 나이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1화에 나오는 이 장면이 여자 주인공에게도 위로가 되었지만 스페인에서 우울 모드에 빠질뻔한 저를 구해주었습니다. 39에서 40으로의 앞자리 변화에 흔들릴 뻔한 마음을 다독입니다. 내가 만들어 놓은 시간과 나이의 덫에 들어가서 갇힐 것이 아니라 오늘을 어떻게 충실하게 보낼지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리고 남세희 말에 덧붙이자면, 사람 마음을 헷갈리게 한 사람이 잘못이죠. 헷갈린 사람이 아니라. 서른이든 마흔이든 쉰이든, 사랑하는 마음으로 녹았다 얼었다 울렁울렁하는 것은 축하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단단하게 굳어서 사랑인 줄 모르고 지나쳐 버리는 안타까운 사연도 얼마나 많은데요. 가슴이 두근거리는 사랑, 나를 집어삼킬까 봐 무서울 정도의 감정을 느끼며 사랑할 수 있는 것을, 저는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그렇기를 바라고 가슴 뛰는 감정만 사랑이라고 착각하지 않는다면요. 사람의 마음 그릇은 본인이 느낀 만큼 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부러 힘들고 고통받을 필요는 없지만 닥쳐왔던 시련과 아픔은 마음 그릇을 넓히고 타인의 감정을 풍성하게 공감할 수 있게 합니다. 자신이 품을 수 있는 감정의 폭도 넓어지고 깊이도 깊어집니다. 많이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이 기뻐할 수 있다고 믿어요.
충분히 슬플 수 있도록 해주면 행복이 슬픔을 마중 나오기 위해 파도처럼 밀려온다고 말했던 Louis C.K의 말을 기억합니다. 감정의 파도가 밀려올 때 파도에 몸을 싣고 마주하면 파도를 탈 수 있게 됩니다.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감정들을 잘 만나주세요. 그 감정들이 전하는 말들도 귀담아 들어주세요. 어쩌면 이성의 기세에 밀려서 숨어있던 진짜 마음을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니, 만나게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