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못 알아보면 내가 알아보면 돼.
_김혜자 <눈이 부시게>
어제 점심에 동태찌개를 먹었습니다. 엄마가 끓여서 통에 담아서 가져다주신 엄마표 동태찌개예요. 한 끼에 다 먹을 양은 아니었고 저녁에 한 번 더 먹을 수 있을 만큼 남았습니다. 쉬면 안 되니까 한소끔 끓여서 뚜껑을 덮어 두었습니다. 저녁식사 준비를 하려고 냄비를 열어보니 보글보글 기포가 생겨있어요. 쉬었습니다. 엄마가 만들어 주신 음식이 쉬거나 해서 먹지 못하게 되어 버리면 그렇게 속이 상할 수가 없습니다. 음식이 곧 엄마가 아닌 것을 아는데도요.
내가 이십 대가 아니듯 엄마의 나이도 흘러갑니다. 언젠가는 나를 기억해 줄 엄마가 세상에 없는 날이 오겠죠. 그 생각을 하면, 생의 이치이자 자연의 순리인데도 그리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인데도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요.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혜자가 자신을 못 알아보는 강아지 밥풀이에게 말합니다. "네가 못 알아보면 내가 알아보면 돼."
왈칵.
스토리상 슬픈 장면이 아닌데 갑자기 눈물샘 고장. 동태찌개와 엄마 생각을 하고 나서 이 장면을 봐서 그런지 가슴이 찌잉 합니다. 저는 엄마 외모가 달라져도 엄마의 동태찌개를 먹으면 엄마를 알아볼 것 같아요. 어느 식당에서도 따라 할 수 없는 엄마만의 동태찌개거든요.
언젠가 엄마가 나를 기억하지 못할 때, 기억해 줄 엄마가 이곳이 아닌 다른 세상에 계시게 되면 그땐 제가 기억하려고요. 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내가 기억하면 되니까요. 엄마를 기억하려고 엄마의 음식을 꼭꼭 씹어서 음미하듯이 정성스럽게 먹습니다. 세포에 심어두려고요. 그러니까 엄마의 동태찌개는 쉬어서 버려지는 음식이 되면 안 되는 거예요, 저에게. 엄마가 해주신 동태찌개를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유한하니까요.
“사랑하는 엄마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내가 기억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