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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나의 아저씨>, 더 나은 인간이 되는 방법

반복하지 않는 삶으로 증명한다

by 윤지원


10년 전에 너랑 찍던 그 영화 찍으면서 알았어.

'망했다. 클났다.'


찍어서 걸면 백 프로 망하고 난 재기도 못할 것 같았어.

난 그냥 어쩌다 천재로 추앙받는 거란 거 알았어.

근데 천재이고 싶었어 천재로 남고 싶었어.

다시는 영화 못 찍고 굶어 죽어도 천재로 남고 싶었어.

그래서 니 탓하기로 한 거야.

내가 구박하면 할수록 네가 벌벌 떨면서 엉망으로 연기하는 거 보면서 나 안심했어.


'더 망가져라 더 망가져라. 그래서 이 영화 엎어지자. 내가 무능한 게 아니라 쟤가 무능해서 그렇다.'


반쯤 찍은 거 보고 제작사에서 엎자고 했을 때 안심했어.

사내 새끼들이 치사한 게, 당할 애 알아봐.

조지면 망가질 애 알아본다고.


너 찍혔어.

그 새끼한테 희생타로 찍혔어.

왜 거기서 찍혀.

조지면 대들어 바락바락 대들고 그냥 확 물어버려.


그때 네가 나한테 대들고 찍어 눌렀으면 나 이 지경까지 안 왔어.

내가 너한테 그렇게 하고 치사빤쓰같은 내가 너무 싫어서 그냥 내가 알아서 스스로 망가져서 산거야.

'망가지자. 벌주자. 치사한 박기훈 이 새끼.'


그래서 여기까지 굴러온 거야.


_박기훈, 넷플릭스 드라마 <나의 아저씨>



"에이, 못난 놈!" 이란 말이 툭 튀어나옵니다.

찌질하네요. 누군가를 희생양 만들고.

그것도 자신보다 약해서 힘으로 누를 수 있는 사람을 타겟 삼아서.


하지만 박기훈은 이 고백을 한 이후에 이전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겁니다.

과거의 잘못을 바라보고 인정하고 고백(그것도 좋아하는 사람에게)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더 나은 인간이 되는 방법의 순서는

<1. 자신의 찌질함과 잘못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2. 인정하고 3. 잘못한 상대에게 고백하고 4. 반성하고 5. 사과하고 책임진다.>입니다.


위의 대사에서 박기훈은 1번부터 3번까지 왔습니다. 5번까지 이르지는 못했나 봅니다.

가상의 내용인 드라마지만 아쉽습니다.

오히려 더 아쉽습니다.

현실에서 많이 못 보는 장면을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보고 싶었는데 말이죠.

자기 고백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잘못을 고백하면서 버럭하고 상대방에게 소리칠 것이 아니라(속상해서 버럭 하는 것은 알지만 그건 잘못된 방법입니다.)

반성하고 사과하는 게 맞는데 말이죠.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강자는 제대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용기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사과하는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사과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갑니다.

과거에 묶여 수렁으로 가라앉지 않고 떠오릅니다.

드라마 속의 박기훈이 과거에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자기혐오에 빠져 스스로를 벌주며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자기 위안일 뿐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그래야 편하니까요.


진정한 반성은 제대로 사과한 후에 다시는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반복하지 않는 삶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찌질함을 인정하는 것은 정말 힘듭니다.

떼어내고 싶고 없던 일로 하고 싶고, 보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의 그 찌질함을 제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면,

더 나아가서 그것을 통해 나의 깊숙한 내면을 만나면,

나는 이전의 나보다 한 걸음 나아가게 됩니다.


더 나은 인간이 되는 방법은
단단한 과거의 껍질을 깨고
탈피하는 순간의 연약함을 견디며
새로운 옷을 입는 것입니다.



내가 만나야 하는 과거의 잘못과 현재의 찌질함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아마도 한동안 뒤통수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화두입니다.


"내가 내면 깊숙한 곳에서 제대로 만나야 하는 과거의 잘못과 현재의 찌질함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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