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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원 Aug 21. 2020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네 인생을 살아라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들 09

| 네 인생을 살아라. Vis ta vie.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감독 : 실뱅 쇼메

출연 : 귀욤 고익스(폴 / 아틸라 마르셀), 앤 르 니(마담 프루스트), 베르나데트 라퐁(애니 이모)

개봉 : 2019. 07.24 재개봉, 2014. 07.24 개봉


 실뱅 쇼메 감독의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은 아름다운 색감의 동화 같은 느낌이 영상에 가득하다.  <사랑해, 파리>와 <일루셔니스트>의 감독 답다. 영화를 한 장씩 넘기며 봐야 할 것 같은 동화책 같은 미장센이 꿈처럼 펼쳐진다. 풀 내음 혹은 마들렌 향이 날 것만 같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귀에 맴도는, 끊임없이 흐르는 듯한 느낌의 피아노 곡인 테마음악은 마치 폴의 내면 같다. 쉴새없이 말하는 듯하다. 말을 잃은 폴은 영화 속에서 말이 없다.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테마 곡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은 영화가 끝나고 난 후에 머릿속에서 다시 필름이 돌아간다. 생각이 많아진다.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많은 변수가 있을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긍정적인 의도가 늘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과 '긍정적인 의도는 누구에게 긍정적인 것인가'하는 의문도 떠오른다. 그리고 그 의도가 가져오는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표로 이어진다. 내가 하는 어떤 행위의 결과와 그로 인해 생기는 파급에 대해서도 곱씹게 된다.


 부모를 너무 일찍 잃은 폴을 위하는 마음으로 두 이모는 폴이 알아야 했을 부모에 대한 것들을 숨긴다. 여린 마음이 상처 받지 않도록 한 조치였을 것이다. 폴이 두 살 때 위층에서 떨어진 피아노에 깔려서 그의 부모가 눈 앞에서 죽었다. 그 피아노를 폴이 30년 동안 치고 있다. 자신이 매일 치는 그 피아노가 어떤 사연이 있는지도 모르고.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그는 재능이 있다. 이모들은 그것을 알고 있다. 그의 재능을 살려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만들려고 했다. 폴에게 사고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폴의 피아노 연주는 그의 눈빛처럼 공허하며 상자 안에 들어있는 것처럼 한정된 공간을 맴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매년 콩쿠르에 나가는 33세의 폴은 이모들이 운영하는 댄스 교습소에서 공허한 눈으로 피아노 반주를 한다. 피아노 위에 늘어놓은 슈게트를 하나씩 집어 먹으며.



 폴의 엄마 아니타에게 그리고 폴에게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을 강요했던 두 이모는 어그러진 애정일지언정 폴을 사랑한다. 폴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폴을 성인, 한 존재로 대하지 않는다. 보호해야 하는 어린아이, 혹은 소유물로 대한다. 두 이모는 자신들에게는 없는 피아노 치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동생 아니타를 폴의 아빠 아틸라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한다. 그 재능을 가지고 피아니스트가 되지 않겠다는 아니타가 맘에 들지 않는다. 모든 게 아틸라 때문인 것만 같다. 그래서 아니타의 아들이며 재능까지 타고난 폴마저 마담 프루스트에게 뺏길 수는 없는 것이다.     


폴을 우리한테서 뺏어 가려고?
당신은 미쳤어!
당신은 가질 수 없어.
그 앤 우리 거야!

_폴의 두 이모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두 이모들은 현재에 있지만 과거를 그리워하며 과거를 살고 있는 듯하다. 댄스 교습소에서는 왈츠와 미뉴에트를 가르친다. 늘 같은 옷을 입고 같이 행동한다. 집 안 곳곳에는 과거의 산물들이 즐비하다. 벽에 걸린 사진 속에서 루이 16세 때 썼을 법한 가발을 쓴 음악가가 근엄한 표정으로 내려보고 있다. 콘솔 위에 놓인 액자에는 폴의 어린 시절 사진이 있다. 현재의 것은 없다. 심지어 피아노 위에 놓여 있는 반신상은 베토벤이다.


 폴은 매일 악몽에 시달린다. 퀭한 눈은 기억을 잃은 이유가 크지만 수면 부족 탓도 있다. 아빠를 부르는 아기 폴에게 고함을 지르는 아빠의 핏발 선 얼굴을 마주하며 매일 아침잠에서 깬다. 폴은 아빠를 싫어한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거부한다. 그가 가지고 있는 사진에서 아빠는 모두 오려져 있다. 엄마 아빠의 사진은 늘 엄마만 있는 반쪽짜리다. 이모들은 아틸라가 싫었고 폴도 그러기를 바랐다. 아기 때부터. 이모들에게서 들은 아빠는 폭력적이고 나빴다.


 마담 프루스트의 차를 마시고 최면 상태에서 들여다본 기억은 알고 있는 것과 달랐다. 폴의 엄마 아니타와 아빠 아틸라는 과격한 분위기를 조성하기는 하지만 분명히 서로 사랑했다. 두 살 아이의 눈에 비친 모습은 그렇지 않을지라도. 어쩌면 기억은 스스로가 해석하고 소화할 수 있을 때까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지 모른다.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슬픔을 외면하는 것으로 폴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었다. 하지만 삶의 단편만 끌어안을 수는 없다. 불행한 순간을 외면하자 행복했던 시간도 같이 자취를 감춘다. "행복이란 모든 것"이라고 말했던 <꾸뻬씨의 행복여행>에 나오는 노승의 말이 겹쳐진다.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때론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_마르셀 프루스트


 갑자기 떠오른 기억이 독약일 수도 있고 진정제일 수도 있다. 때로는 독약인 줄 알았던 것이 진정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반대인 경우도 있다. 기억을 잃어버린 폴의 인생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마담 프루스트의 존재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볼 수 있는 인물이다. 나는 그녀의 말과 행동이 때론 불편했다. 처음 시작이 폴에 의해서가 아닌 듯 보였기에. 그래도 결국은 폴 스스로가 결정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자신의 행위에 대한 비용을 받았기 때문이다. 폴은 자신의 의지로 기억을 보는 것을 선택했고 비용을 지불했다. 마담 프루스트는 그에 상응하는 것을 내어준 것. 폴의 눈을 보고 그의 상태를 알아차린 마담 프루스트가 기억을 볼 것을 권했지만 폴은 거절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그가 용기 낸 것이다.


 나는 코치다. 코치는 요청에 의해서이기는 하지만 필연적으로 타인의 삶에 개입하게 된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 질문하면서 그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는 타인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니까.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때로는 개입하지 않고는 안될 것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것이 나의 주관적 판단이라고 해도. 그럴 때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폴의 이모들도 실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폴을 위한다고 한 결정이 사실은 본인들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자신을 위한 선택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위한 선택이면서 상대를 위한다고 말하는 태도가 틀렸다는 것이다. 그것은 위선이다.


 내가 누군가의 인생에 개입하는 것을 주저하는 이유는, 개입한 후에 겪어야 하는 모든 결과를 내가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후의 삶은 당사자가 감당해야 하기에 결과가 뻔히 보이더라도 제삼자인 나는 기다리고 참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좋든 싫든 개입한 사람은 대가를 치르게 된다. 마음을 계속 쓰게 된다. 마음을 쓰면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흐르게 된다. 때로는 당사자를 위한 것인지 자신을 위한 것인지 헷갈리는 경우도 있다. 그를 보며 나를 투사하여 개입하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아틸라 마르셀은 폴에게 어떤 아빠가 되고 싶었을까? 아이 요람 가까이에서도 담배를 물고 있는 철없는 아빠였지만 나는 그의 눈에 사랑이 담겨있다고 느꼈다. 그와 그의 아내 아니타가 사고로 죽기 직전, 폴은 보았다. 그가 어린 폴에게 사랑 가득한 눈빛으로 "사랑한다 아들아!"라고 말하는 것을. 폴의 아빠 아틸라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그가 가죽재킷을 입고 대형 포스터를 보며 꿈꾸던 그곳, 그랜드 캐년에 폴이 왔다. 아내, 아이와 함께. 폴은 기억 속에서 보았던 아빠와 같은 포즈로 광활한 그곳을 바라본다. 어쩌면 자유로운 영혼을 잠시 멈추어 둔 듯한, 포스터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자유로운 삶을 멈춘 아틸라의 뒷모습은 그 자체로 폴에 대한 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 가슴 한편이 시리다.


왼쪽 사진 아틸라(폴의 아빠) / 오른쪽 사진 폴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 폴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형식이지만 실은 등장인물들의 과거와 현재, 무의식과 의식, 셀프와 에고,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통합으로 향하는 인간의 과정을 말하고 있다. 더 이상 피아노를 치지 않게 된 폴은 우쿨렐레를 연주하고 가르친다. 피아노 위에 걸터앉아서. 그의 눈은 더 이상 공허하지 않다. 생기와 미소가 담겨있다. 그는 더 이상 슈게트가 없다고 달려 나가지 않는다. 이제 슈게트는 그의 유일한 낙이 아니다. 부실공사를 했던 아빠의 친구도 더 이상 숨거나 도망가지 않고 폴의 음악교실에서 우쿨렐레를 배운다. 편안해 보인다. 이제야 그는 친구 부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죄책감에서 벗어난 듯하다. 이모들은 더 이상 왈츠와 미뉴에트를 가르치지 않는다. 화난 표정도 아니다. 진짜 미소를 짓고 있다.


 피아노 뚜껑을 뜯어낸 본체에 미니 정원을 만들어 바지를 걷어 올리고 물을 주는 장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부모를 죽음으로 몰고  원흉, 죽음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원수 같은  그랜드 피아노에서 꽃이 자라고 있다. 절대 습기에서 보호해야 하는 피아노 현에 물을 붓고 있는 , 그리고 꽃이 만발한 , 이것으로 나는 폴이 과거와 화해하고  걸음 나아갔다고 믿는다. 평생 걸어온 피아노의 길을 자신의 손으로 끊고 꽃을 피워낸 폴이 정말로 멋지다. 베토벤 반신상도 더이상 건반쪽을 향하지 않는다. 어른이 된 폴을 축하하는 듯 미니정원을 바라보고 있다.


 결론적으로 폴의 인생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 만약에 마담 프루스트가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곧 죽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그래도 그녀는 같은 인생을 살았을까? 초연하게 지금, 여기를 살 수 있었을까? 지나간 일에 '만약'은 의미 없지만 그래도 궁금하다. 어쩌면 병은 그 자체로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영화 <패치 아담스>에서 주인공의 마지막 변론이 떠오른다. "왜 죽음을 인간답고 품위 있게 다루지 못하고 예절 바르고 유머 있게 다루지 못합니까? 죽음이 적이 아닙니다." 마담 프루스트는 알고 있었나 보다. 죽음이 적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 여기를 온전히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네 인생을 살아라.
Vis ta vie.

_마담 프루스트


 병든 나무일지라도 아이들에게 그늘이 되어 주고 싶었던, 그래서 공원의 병든 나무를 자르지 못하도록 시위했던 마담 프루스트는 나무 앞에 묻힌다.

 어쩌면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많은 기억들이 사실은 여러 방향으로 왜곡되어 있을지 모른다. 일어났던 일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지금의 관점과 감정은 바꿀 수 있다. 겹치기도 하고 삭제되기도 하며 이리저리 휘어져 엉켜있는 기억을 바로 보는 것, 그래서 그 기억과 동반되는 감정을 바로잡는 것, 과거의 그 일들이 지금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지금 나에게 어떤 감정이 올라오는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유모차에 누워있는 아이에게 "아빠"라고 말하는 폴의 표정이 편안해 보인다. 그의 첫 대사인 "아빠", 그가 수면 아래 기억 속에서 아빠에게 가장 듣고 싶었던 그 말.  폴은 이제 왜곡된 기억을 바로잡고 그가 원하는 삶을 향해 나아간다.


그의 삶에 더 이상 악몽이 없기를.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에서 건져 올린 질문들     


* 내 기억이 약국 혹은 실험실이라면 내 손에 잡히는 진정제는 무엇인가? 그리고 독약은 무엇인가?

* 내 추억이 반응하는 음악은 무엇인가? 그 음악을 들으면 어떤 추억이 소환되나?

* 내 무의식 속의 기억이 물고기라면 물고기를 잡기 위해 어떤 미끼를 주어야 할까?

* 나는 지금 누구의 인생을 살고 있나?

* ' 나의 인생을 산다’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 나에게 기억은 어떤 의미인가?

* 나에게 '슈게트'가 있다면 무엇인가? 그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 한 아이가 자기 자신으로 자라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 내가 화해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 나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인가?

* 내 안에 있는 나쁜 기억을 행복의 홍수 아래로 가라앉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 다르게 보고 싶은, 엉키고 휘어진 기억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모습인가?

* 내가 부모가 된다면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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