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들 11
출연 : 아우이 크라발호(모아나 목소리), 드웨인 존슨(마우이 목소리), 레이첼 하우스(탈라 할머니 목소리)
개봉 : 2017. 01. 12
모든 것이 완벽했던 모투누이 섬이 저주에 걸린다. 바다가 선택한 소녀 모아나는 죽어가는 섬을 되살리기 위해 머나먼 바다로 항해를 떠난다. 모투누이 섬에 걸린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신이 선택한 반인반신이자 전설 속의 영웅인 마우이의 힘이 필요하다. 우여곡절 끝에 마우이를 설득해서 목숨을 건 모험을 떠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에는 저주에 걸린 공주님도 멋진 왕자님도 나오지 않는다. 매력적인 모아나와 마우이일 뿐. 존 머스커 감독은 <모아나>를 태평양 전역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과 이야기에 영향을 받아서 만들었다고 전한다.
나는 애니메이션 <모아나>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가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 정체성. 또 하나는 부모, 마지막은 로고스.
나는 애니메이션 <모아나>를 좋아한다. 특히 모아나가 테피티의 심장을 들고 테카를 만나는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테피티의 심장을 들고 있는 모아나에게 테카가 달려와서 멈추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정말 아름답다. 영상도 음악도.
You know who you are.
Who you truly are.
너는 네가 누군지 알잖아.
진짜 너를. _모아나 <모아나>
나는 이 대사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키워드인 정체성이다.
모아나가 테카에게 심장을 돌려주러 갔을 때, 테카는 분노로 가득 차 불을 머금고 달려오다가 모아나 앞에서 스스로 멈춘다. 불길을 사그러 뜨린다.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 비어있는 심장 자리를 모아나의 눈높이에 갖다 댄다. 이곳이 바로 네가 가지고 있는 그 심장의 원래 자리라고 말하는 듯하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라.
애니메이션 <모아나>에서 말하고자 하는 큰 메시지다. 모아나로 인해 테카가 알게 된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아나가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은 할머니의 도움이 크다. 모아나도 테카도 타인의 도움을 받아서 자신을 찾아가지만 결국 마지막 결단은 스스로 할 수밖에 없다. 나 자신을 이해하고 나의 정체성을 찾는 여정에는 누구도 도울 수 없는 결정적 선택의 순간이 있다. ‘바다가 자신을 선택했기 때문에 모아나가 모아나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아나는 결국 깨닫는다. 갈고리가 없어도 마우이는 마우이라고 깨닫는 것과 연결된다.
“갈고리가 없으면 난 못해.
이게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라고!_ 마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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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고리 일은 유감이야...”_ 모아나
“그게 뭐 어때서?
갈고리가 없어도 나는 마우이야.”_ 마우이
모아나는 바다가 선택한 모아나도, 모투누이의 모아나도 아닌, 단지 모아나 자신이다. 갈고리가 없어도 마우이는 마우이인 것처럼.
두 번째 키워드는 부모다. 작중 부모는 모아나의 부모님과 모아나의 할머니다. 서로 다른 시선으로 자녀를 바라본다. 모아나의 부모님, 특히 아버지는 의지가 강하고 필요하다면 다른 의견과 대립한다. 그의 대척점에 있는 이는 모아나의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자유롭다. 족장인 아들의 의견과 다르지만 크게 부딪히지 않는다. 물처럼 대립 대상을 감싸고 자연스럽게 흐른다. 모아나를 지지할 때도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지 않는다. 모아나가 가장 원하는 선택을 하도록 키를 쥐여준다. 그리고 곁에서 머무르며 모아나의 결정을 온전히 지지한다. 어떤 선택도 비난하지 않는다.
모아나의 아버지가 섬을 떠나지 않으려는 이유는 부족을 지키기 위해서다. 위험요소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마을 사람들을 지키고 있다. 안전한 섬을 떠나지 않고 머무르는 것. 섬의 안전장치 암초 너머에 가지 않는 것. 모아나가 시도하려는 것은 모아나의 아버지가 젊은 시절 자신도 해봤던 것들이다. 모아나의 마음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그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네가 하려는 것 나도 해봤어‘의 가장 큰 허점은 그때의 나와 지금의 너를 동일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때의 내가 실패했으니 지금의 너도 실패할 것이라고. 비슷한 상황일 수 있으나 그때와 지금은 완벽하게 같지 않다. 주체도 환경도 다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는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그는 만물의 근원을 불로 생각했다. 그가 생각하는 불은 물질 이상의 형이상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불은 근원적인 에너지이며 신적인 요소와 인간의 영혼을 내포한다. 그러므로 테카가 불로 표현된 것은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 정확히는 바닷속 용암으로 표현되지만 테카의 본질은 불이다. 불로 표현된 테카와 땅으로 표현되는 테피티는 대립되는 만물들이 실은 하나의 근원에서 나왔고 종국에는 다시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하다. 물(바다), 불(테카), 땅(테피티), 공기, 영혼 등의 만물이 순환하고 있다는 것도. 그렇다면 공기는 마우이, 영혼은 모아나일까?
만물은 생성과 소멸, 대립과 투쟁 안에서 서로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다. 헤라클레이토스에 의하면 신은 낮이자 밤이며, 겨울이자 여름이고, 전쟁과 평화이며, 포만감이자 배고픔이다. ‘결합시킬 대립물이 없다면 통일도 없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동일하다.’, ‘선과 악은 하나다.’, ‘삶과 죽음, 깨어남과 잠듦, 젊음과 늙음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테카는 생명의 근원인 테피티와 같지 않으나 다르지 않다. 테카와 테피티는 하나다.
바다는 생명을 중시하는 어린 모아나를 선택했다. 아기 모아나가 새끼 거북이를 돕는 장면이다. 모아나는 새끼 거북이가 포식자인 갈매기를 피해서 바다로 무사히 돌아가 엄마를 만나도록 돕는다. 이 장면만으로는 바다가 모아나를 선택한 이유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나는 모아나의 할머니 탈라가 바다와 모아나를 연결했다고 생각한다.
할머니가 테피티의 옆에서 보고 있었던 게 아니라면 그 긴 역사의 사소한 부분까지 어떻게 다 알고 있었을까 싶다. 할머니는 테피티와 테카, 마우이, 카카모라 해적단, 거대 게 타마토아 등 바다의 모든 생명을 이미 알고 있는 듯이 묘사된다. 할머니가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도 테피티의 심장과 같은 문양이다. 스토리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테피티에게 심장을 준 이가 할머니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비약적인 생각도 든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모아나의 할머니는 테카와 테피티보다 더 영적인 존재 혹은 그 이상의 존재, 만물을 관장하는 세계의 이성 ‘로고스’를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심장을 잃은 테피티, 갈고리를 잃은 마우이, 바다가 실수로 자신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모아나는 모두 자기 자신을 몰랐다. 모아나의 아버지이자 모투누이의 족장인 투이를 비롯해서 모투누이 사람들도 자신들을 몰랐다. 암초의 보호를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연약함이 아니라 어디든 떠날 수 있는 모험심과 강인함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다. 어떤 순간에도 자신을 알고 있었던 모아나의 할머니 탈라는 죽음 후에도 자유로운 자신을 잃지 않았다. 어떤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도 존재가치를 증명해내지 않아도 스스로를 믿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어떤 순간에도 내가 누군지 기억해야겠다.
** [네이버 지식백과] 헤라클레이토스 [Heraclitus of Ephesus] (두산백과)
영화 <모아나>에서 건져 올린 질문들
* 세상에 어떤 흔적을 남기고 싶은가?
* 어떤 때 나답다고 느끼고 언제 나답지 않다고 느끼나?
* 나답게 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 나답게 살기 위한 작은 실천 행동 무엇인가?
* 내가 생각하는 나의 본질은 무엇인가?
* 나답기 위해 무엇을 하고 무엇을 안 해야 하나?
* 테피티에게 심장은 어떤 의미일까? 나에게는?
* 내가 나 답도록 돕는 사람은 누구인가?
* 내가 나다워지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나?
* 온전히 나다움을 누리게 되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가?
* 나 다움을 표현하는 방법이 있을까?
* 자꾸만 내 마음이 향하는 곳이 있다면 어디인가?
*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격려와 지지가 있다면 무엇인가?
* 나를 안전하게 지키기도 하지만 제한하기도 하는 '암초'는 무엇인가?
* 나에게 '마우이의 갈고리'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