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들 13
| 독립에 대하여
출연 : 타카야마 미나미(키키/우슐라 목소리), 사쿠마 레이(고양이 지지 목소리)
개봉 : 2007. 11.22 / 2019. 06.26 재개봉
마녀 엄마와 인간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꼬마 마녀 키키는 마녀의 규칙대로 열세 살이 되어 홀로 집을 떠나 마녀 수련을 떠난다. 마녀의 짝꿍인 검은 고양이 ‘지지’와 함께. 온 마을 사람들이 마녀 수련을 떠나는 지지를 응원하고 배웅하기 위해 한 밤 키키의 집 앞에 모였다. 덕담을 전하고 키키를 응원한다. 빗자루를 타는 것이 완전히 익숙해지지는 않아서 큰 나무의 가지에 몇 번 툭툭 걸린 끝에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나무마다 달아놓은 종소리를 듣고 아빠는 키키의 위치를 가늠한다.
“우리 예쁜 딸이 어느새 이렇게 컸구나.
생각대로 안 되거든 언제든 돌아오너라.”
_키키 아빠 <마녀 배달부 키키>
키키는 아빠가 주신 라디오를 들으며 검은 고양이 ‘지지’를 어깨에 태우고 엄마가 길들인 빗자루를 타고 날아간다. 1년 동안의 수련 기간에 키키는 부모님을 떠나 낯선 곳에 정착해야 한다. 스스로 살 집을 구하고 돈도 벌어야 한다. 키키는 아름다운 항구 도시에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큰 마을인 이곳은 키키에게 친절하지 않다. 사람도 많고 차도 많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 후 우리가 만나는 낯선 세상과 비슷하다. 세상은 우리를 반기지도 호락호락하지도 않다.
키키는 자신을 반기지 않는 이 곳에 실망해서 터벅터벅 걷다가 친절한 빵집 주인 오소노를 만난다. 키키는 여기서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 하늘을 나는 능력으로 배달을 하기로 한다. 임신 중인 오소노는 키키에게 가게 전화도 받아주며 빵집을 사무실처럼 사용하라고 한다. (키키가 정착한 이 아름다운 항구 도시를 그리기 위해 제작팀이 고틀랜드 섬과 스톡홀름 등을 여러 번 답사하고 나서 그려냈다고 한다.) <마녀 배달부 키키>는 영상도 음악도 바다와 하늘을 닮은 듯 시원하고 청량하다. 실제로 항구마을이라서 바다가 나오기도 하고, 키키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느라 푸른색이 많이 등장하기는 한다.
나중에 우슐라가 그린 키키 그림의 배경도 짙은 푸른색이다. 샤갈의 화풍처럼 보이는 이 그림은 우슐라의 오두막 위로 키키가 하늘을 날고 있다. 빗자루를 ‘백마’로 검은 고양이 지지를 ‘뿔 달린 소’로 표현했다. 처음에는 적대적이었던 전나무 숲의 까마귀들은 에스코트하듯 키키 주위를 함께 날고 있다. 짙은 푸른색은 보통 밤 혹은 죽음을 뜻한다. 우슐라는 인생의 밤을 떠올린 듯하다. 샤갈은 푸른색을 신을 경배하는 종교적인 숭배의 색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죽음과 신에 대한 경배의 의미가 연결된다.
이 그림은 하늘을 날 수 없어져 고뇌에 빠진 키키의 얼굴을 보고 우슐라가 영감이 떠올라 그린 그림이다. 샤갈은 떠오르는 이미지를 나열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완성된 그림은 해석하지 않고 느껴주기를 원했다. 샤갈의 화풍이니 샤갈이 원하는 방식으로 해석해보면 어두운 인생의 밤을 날아가는 키키의 표정은 마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혹은 원령공주의 옆모습을 닮았다. 굳센 의지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나아가는 길 앞에는 위협이 될지도 모르는 붉은 전갈이 두 마리 있다. 달도 불길함을 의미하는 붉은빛이다. 인생의 어두운 밤, 고난을 지나지만 키키는 홀연히 빛나고 있다. 자신이 가는 길 주위로 빛 입자가 퍼진다. 주위가 어두우니 조명을 받은 듯 빛나는 키키가 더욱 돋보인다. 아래 오두막 지붕 위에서는 우슐라가 손을 흔들며 응원하고 있다.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어쩌면 키키가 하늘을 나는 것, 우슐라가 그림을 그리는 것 모두 인생 그 자체를 말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산다. 어떤 날은 잘 날고 어떤 날은 나는 방법을 잊은 듯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우슐라도 마찬가지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천직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날은 도저히 그려지지가 않는다. 우슐라는 키키의 고뇌하는 표정을 보고 영감이 떠오른다. 누군가의 불행과 비교해서 자신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치열하게 나아가려는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영감이 되고 한 걸음 내딛는 동력이 된다.
“마법하고 그림은 비슷하네.
나도 안 그려질 때가 종종 있어.”_ 우슐라
“정말요?
그럴 땐 어떻게 해요?
사실 전에는 아무 생각 안 해도 날았는데,
어떻게 해야 날았는지 지금은 전혀 모르겠어요.”_ 키키
“그럴 때는 미친 듯이 그릴 수밖에 없어.
계속 그리고 또 그려야지.”_ 우슐라
“그래도 날 수 없으면 어떡하죠?”_ 키키
“그리는 걸 포기 해.
산책이나 경치 구경, 낮잠 자거나 아무 것도 하지 마.
그러다가 갑자기 그림이 그리고 싶어지지.”_ 우슐라
<마녀 배달부 키키>
“난 네 나이 때 화가가 되기로 결정했어.
그림이 너무 재미있어서 잠도 아까울 정도였지.
그런데 어느 날 전혀 그릴 수가 없었어.
그려도 그려도 마음에 안 들었어.
이제껏 그림이 누군가를 흉내 냈다는 것을 깨달았어.
어디선가 본 걸...
나는 나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어.”
_ 우슐라 <마녀 배달부 키키>
사람은 보이지 않는 원을 두르고 살아간다. 어떤 날은 자신의 동심원 안으로 다른 이의 동심원이 겹치기도 한다. 그때 불협화음이 나기도 하지만 겹쳐진 원과 원 사이의 교집합을 통해 타인을 위로하기도 하고 그로부터 위로받기도 한다. 슬럼프를 이겨내는 노하우를 얻기도 한다. 그렇게 관계 맺는 법을 알아간다.
키키는 경제적 독립과 정서적 독립을 하는 중이다. 부모님을 떠나 새로운 마을에서 하늘을 날아 배달을 하며 돈을 번다. 하지만 여전히 타인과 관계 맺는 것은 두렵다. 그러다가 지키고 싶은 것이 생기고 힘을 내어 앞으로 나아간다. <마녀 배달부 키키>를 보면서 인생에 대한 생각을 한다. 나는 제대로 독립하여 내 인생을 살고 있는지 돌아본다. 나의 인생은 어떤지, 잘 살고 있는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나는 누구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 그리고 나의 한계를 뛰어넘어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건져 올린 질문들
* 마음에 안 들지만 정해져 있어서 따르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 나에게 언제든 돌아오라는 이가 있다면 누구인가? 장소라면 어디인가?
* 나는 누구에게 그런 존재이고 싶은가?
* 나는 어떤 특기가 있나?
*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 무엇을 더 잘하고 싶은가?
* 내가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 슬럼프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 내 인생에서 그리고 싶은 나만의 그림은 무엇인가?
* 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꼭 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누구에게 전하고 싶은가?
*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 나의 한계를 뛰어넘어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 나에게 '독립'은 어떤 의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