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리틀 포레스트 : 겨울과 봄
“지금까지의 나를 돌아볼 때마다
난 항상 같은 걸로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같은 장소를 빙글빙글 도는 원을 그리며
돌아온 것 같아서 좌절했어.
하지만 경험을 쌓았으니
실패를 했든 성공을 했든
같은 장소를 헤맨 건 아닐 거야.
인간은 ‘나선’ 그 자체인지도 몰라.
같은 장소를 빙글빙글 돌지만
나선은 조금씩 커지게 될 거야.”
_ 이치코의 엄마 <리틀 포레스트:겨울과 봄>
Q. 내가 그리는 나선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A. 보이는 성과가 거의 없어 보이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내공을 쌓는 중이다.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익히고 있다. 단기간에 빛이 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이 아니라 진짜 실력자이기를 원한다. 그것은 나 자신이 가장 먼저 알아볼 테니 내가 원하는 수준에 이르도록 애쓰고 있다. 사회적 지위로 증명하기보다는 스스로 만족하고 싶다. 이치코 엄마의 고민과 결론은 나에게도 큰 위로가 된다. 내가 그리는 나선은 점점 커지고 있을 테니까,라고 2020년 8월에 적어 놓았다. 그리고 지금은 2021년 3월이다. 여전히 보이는 성과가 거의 없어 보이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나? 그날의 글짓기가 생각이 난다. 주제가 자족이었다. 자족(自足), 사전을 찾아보면 '스스로 넉넉함을 느낌'이라는 뜻이다. 내가 그때 어떤 내용의 글을 썼는지 기억난다. 조금 화가 났던 것도 같다. 마치 자족이라는 단어를 나무라듯이 썼나 보다. 스스로 만족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지금 상태에 만족하면 어떻게 성장하고 나아질 것이냐며 훈계하는 느낌의 글이었다. 그때의 글을 쓰던 마음이 떠오른다.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는 어느 날이 기억나는 것은 그 마음이 다른 가치와 계속 부딪히며 마찰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글에서도 썼지만 향상심이 있는 사람이다. 계속 나아지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향상심과 자족 사이는 꽤 거리가 멀다. 이 둘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향상심을 추구하면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나아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스스로를 검열하고 채찍질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마음이 상처 입고 자존감이 낮아지기도 한다. 나아지려는 마음은 현재를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마음 위에 놓인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 덕분에 밤을 새워 노력하고 모르는 문제를 끝까지 붙잡고 늘어져서 정복한다. 그런데 나는 어떤 덫에 걸렸던 것 같기도 하다. 나아진다는 것이 더 많이 더 빨리 더 정확히 어떤 일을 잘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었다. 가만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내가 생각하는 '나아진다'는 내 존재, 영혼에 대한 동사였다.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더 괜찮은 사람이 된다로 연결되었다. 괜찮은 사람은 능력 있음을 드러내는 말이 아니었다. 영혼이 더 맑고 깊어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더 따뜻하고 넓어진다는 뜻이다. '나아진다'와 연결되는 '향상심'이 '자족'과 조금 가까워진 것 같다.
지금, 여기를 온전히 누리며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족이 가능해야 한다. 지금 이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현재의 나를 온전히 수용한다는 의미다. 자족하며 향상심을 동시에 추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에 만족하는데 어떻게 더 나아지지? 이 의문은 2009년 코칭을 시작한 이후로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자족은 나를 방치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현재의 나를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리고 가능성 또한 믿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부족해서 채우려는 게 아니다. 지금 상태 그대로 괜찮다. 그리고 더 괜찮은 내가 되어가는 존재임을 믿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내가 스스로 함께한다는 의미다. 나의 존재를 안아주고 믿는, 더 큰 내가 동행한다. 결핍과 불안이 아닌 충만과 기대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여전히 보이는 성과가 거의 없어 보이는 시기를 지나고 있어도, 늘 같은 장소를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아도 나의 나선은 옆으로든 위로든 조금씩 커지고 있다. 한 번에 잡힐 것 같지 않던 향상심과 자족의 양 날개로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인식하며 나아간다. 이제는 홀로 높이 나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바람의 저항을 함께의 힘으로 지혜롭게 넘기는 기러기들처럼 좋은 벗들과 함께 날고 싶다. 비교와 경쟁이 아닌 협력과 시너지를 기대한다.
<하루 10분,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으로 글쓰기> 프로젝트를 100일 동안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루 10분 짧은 시간에 떠오른 생각을 인스타그램에 매일 정리합니다. 그 글들을 씨앗 삼아 브런치에서 하나씩 심어 보기로 했습니다. 나도 몰랐던 나를 알게 되는 과정이 되리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