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다서영 Apr 07. 2023

아버지의 어두운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벗어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버지는 불편한 상황을 못 견디시는 분이다.

일상이 정해진대로 움직여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틀어지는 일이 생기면, 감정 컨트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버지한테 고민 상담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고민이 본인한테 오는 순간, 힘든 상황이 생겼다는 사실에 감정을 잘 컨트롤하지 못하셨고, 고민을 던져서 일상을 깨트린 우리에게 서슴없이 폭언을 퍼부었다.


아버지가 불편한 상황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그전에는 한 없이 인자하다가도 이상한 포인트에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 이상한 포인트가 불안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 우리는 더욱더 아버지 앞에서 입을 닫았다.


나는 아버지의 짜증을 피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참 많이도 노력했다.


예전에 남동생이 사고를 크게 친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사고였다. 나는 아버지 모르게 사고 뒷수습을 하고 다녔는데(엄마와 나는 당시 탈모가 생겼을 정도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동안에도 아버지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지내셨다. 


일을 다 해결하고 난 후에, 엄마가 아버지에게 사실을 말하자,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짜증이란 짜증을 다 냈었고, 몇 날 며칠을 스트레스받아서 살 수 없다며 집에도 없는 남동생을 향한 폭언을 그치지 않았다. 나와 엄마를 잡고 잡도리를 하는데,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한 우리에게 본인 짜증까지 받아내라고 하다니. 


그때, 알았다. 

내가 혹시 아버지의 짜증을 받기 싫어서 아버지가 해야 할 역할을 빼앗아 버린 건 아닐까?

그래서 아버지는 부모로서 배울 수 있는 어떤 부분을 놓쳐버린 건 아닐까?


그래서 내가 하던 역할을 그만두었다. 다 내려놓았다.


그러자 아버지는 섭섭해했고, 나는 한동안 죄책감에 움찔움찔 몸이 움직였지만, 꾹 눌러 참았다.


그러던 어느 날, 불편한 상황을 본인이 해결하려고 했던 아버지가 폭발했다. 그 짜증의 대상은 나였고, 하루 종일 나를 향한 짜증을 멈추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전전긍긍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치 보면서 벌벌 떨었을 텐데, 아버지의 어떤 말 한마디에, 나는 아버지로 빙의했다. 

아버지랑 똑. 같. 이 행동한 것이다. 

순간 머리끝까지 화산이 터지는 것처럼 뭔가 펑 터졌고, 나는 그동안 쌓인 모든 것을 터트렸다.


미러링이 된 걸까. 순식간에 아버지가 입을 닫으셨다. 


나는 드디어 아버지의 어두운 그늘에서 벗어났다. 


아버지는, 내가 터트린 이후, 많이 달라지셨다. 집안에 문제가 있을 경우 본인이 해결하기 위해서 움직이셨는데, (남동생이 또 사고를 쳤는데, 아버지가 직접 움직이셨다.)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노력하시는 것이 보였다.


물론, 아직도 가끔은 예전처럼 폭발할 때가 있다. 

오늘도 그랬는데, 내가 예전처럼 똑같이 미러링을 하려고 하니까, 엄마가 말리셨다. 엄마는 아직도 아버지의 짜증이 불안하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다.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고, 짜증을 내는 건 그냥 짜증을 내는 거고, 짜증을 듣는다고 살아가는데 뭐 크게 영향 미치는 것도 아니고, 한편으로 70대 중반에 저 정도로 짜증을 낼 에너지가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운 것도 같고, 만약, 기운이 없는 채로 말도 없이 고개만 숙이고 다니시면 그게 더 싫을 거 같긴 하다.


(아버지의 귀여운(?) 일상만 올리다가, 좀 어두운 이야기를 올려봤습니다. 세상 사, 다 양면이 있는 거니까, 편하게 봐주세요. *^^*)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는 쓰레기 조각들로 흔적을 남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