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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서영 Mar 31. 2023

엄마는 쓰레기 조각들로 흔적을 남긴다

엄마가 지나간 자리는 꼭 자잘한 쓰레기들이 떨어져 있다. 어디서 붙이고 온 건지 알 수 없는 조각들이 엄마가 지나가는 자리에 길을 만들어 놓는다. 이 조각들을 통해서 엄마가 머물렀던 곳과 거기서 뭘 했는지를 알아낼 수 있을 정도다.


"오늘은 이 자리에서 과일을 드셨나 보군."

"조금 전에 이곳에서 누룽지를 드셨군."

"오전에 여기서 택배를 뜯으셨나 보군."


식사 때도 엄마 주변에만 뭔가가 떨어져 있고, 거실에서 TV를 봐도 딱 엄마 주변에만 알 수 없는 것들이 떨어져 있다.


최근에는 땅콩을 드시는데, 땅콩 껍질과 땅콩 조각들이 사방팔방 안 보이는 곳이 없어서, 제발 뭔가를 받치고 드시라고 해도, 엄마는 금방 잊어버리고 계속해서 땅콩 조각을 뿌리고 다니셨다. 나는 그냥 포기했다.


그런데 얼마 전, 엄마가 며칠 동안 집을 비우는 일이 생겼다.

이때다 싶은 나는 엄마가 없는 동안 온 집 안을 뒤집어 놓았다. 구석구석 쌓인 먼지도 털어내고, 청소기 돌리고, 마구잡이로 쌓여 있는 옷도 정리하고, 이불 빨래도 하고, 특히, 엄마가 자주 머무는 공간은 정말 반짝거릴 정도로 쓸고, 닦았다.


엄마가 오면 금방 원래대로 돌아가겠지만, 잠시라도 먼지 하나 없이 정리된 공간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딱 그날만.


엄마는 자잘한 쓰레기만 흘리신 게 아니었다.


바로 엄마의 온기.


엄마와 함께 온기도 사라져 버렸다. 옷을 껴입어도, 보일러를 틀어도, 한기가 가시지 않았다.


엄마가 집을 비운게 처음이 아닌데, 청소를 너무 힘들게 해서 그런가. 아니면 최근에 병원을 자주 다니시는 부모님 때문에 마음이 약해져서 그런 건가.


쓰레기는 내가 치우면 된다. 그런데 온기는 엄마가 없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엄마가 눈물 나게 보고 싶은 며칠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돌아온 후,

"이게 뭐야. 청소기 돌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 종이 조각 같은 것들이 다 뭐야. 뭐 했어?"

"응? 이건 또 뭐야. 웬 껍질들이. 귤 먹었어? 제발 바로바로 쓰레기통에 버려요."

나는 여전히 청소기를 돌리며 잔소리를 퍼붓고 있다.(ㆆ_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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