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의 대화
최근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2015년에 1급을 따긴 했는데, 세월이 흘러서 기억이 안나는 부분이 많아서 다시 한번 보기로 했다. 그냥 공부만 할 수도 있지만, 목적이 있으면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아서 시험을 보기로 했다.
이제 막 첫 장을 넘겼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가 구석기시대 70만 년 전, 신석기 1만 년 전(B.C 8000년)을 보는데 갑자기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만 년 전에 신석기시대가 시작됐다고? 그럼 1만 년 동안 원시생활을 하던 인간들이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인간으로 진화한 거잖아. 그럼 구석기시대 69만 년 동안 우리 인간들은 뭘 한 거지? 1만 년 동안에도 이렇게나 변했는데, 69만 년이면 벌써 69번은 변해야 하는 시기 아니야?"
(참고로 나는 쓸데없는 상상을 참 많이도 한다.)
갑자기 든 궁금증을 계속 떠올리던 중, 조용히 저녁을 먹고 있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구석기가 70만 년 전에 시작됐고, 신석기는 1만 년 전 이래. 좀 이상하지 않아? 1만 년 동안 어마어마하게 세상이 변했잖아. 이렇게 변화시킬 수 있는 인간들이 구석기시대 69만 년 동안은 뭘 하고 있었던 걸까?"
엄마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그런 거 질문하지 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 아파." 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는 잠시 후,
"진짜 세상이 엄청 빨리 변했어. 내가 어렸을 때는 말이야, 라면 있잖아. 그 봉지 라면. 그거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이 물만 넣으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나왔다고 얼마나 신기해했는 줄 알아?"
"물만 넣으면 먹는 라면? 컵라면 말이야?"
"아니, 아니. 컵라면 말고 그냥 봉지 라면."
"응? 끓인 물을 봉지라면에 넣는다고?"
"아니, 아니. 그냥 물을 봉지라면에 넣고 불려서 먹었다니까."
"헐."
"그때는 그걸 몰랐으니까. 심지어 귀한 거라고 퉁퉁 불은 라면을 새참으로 가져가기도 했고. 오호호"
엄마의 이야기에 아버지가 덧붙였다.
"요즘 얼마나 편한 세상이야. 먹을 것도 많고, 귀한 라면도 지금은 건강 생각한다고 잘 안 먹잖아."
"그런데, 아빠, 육체적으로는 편해졌을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참 힘든 세상이래요."
아버지는 내 말에 "안 그래도 요새 계속해서 어르신들 찾는 실종 문자 오더라. 얼마나 힘들면 집도 못 찾고 정신을 놓을까?" 하며, 마음 아파했다.
그러자 엄마가, "예전에도 많았는데, 최근에는 문자를 보내서 많다고 느낀 거 아니야?"라며, 현실적인 해석을 내놓으셨다.
"그럴 수도 있겠네."
아버지는 바로 수긍했다. 그리고 엄마는 다시 그 옛날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돌아갔다. 나는 엄마, 아버지의 젊은 시절 흥미 돋는 이야기를 저녁 내내 듣게 되었다.
특히, 아버지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아버지는 학교를 마치면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했는데, 집으로 가는 길에 역시나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 아저씨 한 분을 매일같이 만났단다. 당시는 어른을 보면 아는 분이든 모르는 분이든 무조건 인사를 했기에, 아버지는 매일 같이 아저씨께 인사했고, 아저씨는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셨다고 했다.
결론은 그분이 장인어른이 되었고, 아버지는 그 사실을 결혼하고 한참 후에 알았다는 이야기다.
구석기시대 궁금증에서 시작된 대화는 뜬금없는 엄마, 아버지의 젊은 시절 이야기로 이어졌지만, 사실 구석기가 70만 년 전에 시작됐든, 2만 년 전에 시작됐든 무슨 상관인가 싶다.
솔직히 엄마, 아버지가 구석기시대의 내 궁금증에 대해서 같이 고민해 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무 말이나 내뱉으면, 언제나 그 뒤를 있는 대화들이 따라오기에 그냥 던졌던 것 같다.
조용히 밥만 먹는 부모님의 모습이 조금은 숨이 막혀서, 나는 구석기시대의 의문점을 툭하고 던졌고, 엄마, 아버지는 말문이 트인 어린아이처럼 저녁 시간 내내 종알종알 본인들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렇게 오늘도 소소한 대화와 함께 저녁 시간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