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 중반이었던 어느 날, 친할머니가 집에 놀러 오셨다.
제사나 명절 때만 오셨는데, 갑자기 왜 오셨을까?
할머니가 온 이유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하게 하나는 기억한다.
안 신는다는 내 신발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할머니의 모습.
할머니는 내게 "이 신발 버릴 거야?" 라며 물었다.
사이즈가 맞지 않아서 몇 번 신은 후, 버려둔 검은색 단화였다.
"아마도요?"
"신발을 왜 버려. 나 줘라. 가져가게."
"신발 필요하세요? 새 신발 사드릴게요"
"아니다. 됐다. 그냥 이거 줘."
"그러세요. 가져가세요."
할머니는 검은색 단화를 들고는 정말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셨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심장마비였다.
평상시 건강하셨던 분이셨는데,
이렇게 가실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나는 장례식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소리 죽여 울었다.
철이 들고 난 후에 처음으로 겪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었다.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온 날,
나는 할머니가 나오는 꿈을 뀠다.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서,
아이스크림을 사준다고 어느 가게로 데려갔다.
할머니는 내게 동생들과 나눠먹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할머니가 사준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면서, 잠에서 깼다.
할머니의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할머니의 첫 손자였다.
당연히 할머니와의 추억도 가장 많았다.
할머니와 같이 걸었던 낮은 언덕길의 따스한 봄바람, 움직이는 장난감 바퀴벌레를 잡겠다고 난리 치시던 할머니 때문에 눈물콧물 흘려가며 배꼽 잡고 웃었던 일들, 할머니랑 함께 저금통에 가득 든 동전을 하나씩 세던 기억, 할머니의 틀니가 담겨있던 분홍 컵, 할머니의 화투장 등
그래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꽤 오래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할머니의 첫 기일.
할머니가 또다시 꿈에 나타났다.
할머니는 십 년은 젊고 건강해 보였다.
나는 연보라색 목 폴라를 입고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기던 할머니에게 달려갔다.
꿈 속이었지만, 할머니를 볼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그저 환하게 웃으셨다.
그리고 조용히 떠나셨다.
나는 떠나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생전에는 하지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을 계속해서 외쳤다.
할머니가 뒤돌아보시더니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신다.
할머니는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오신 것 같았다.
그날 이후, 할머니는 내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할머니와의 추억을 쓴 누군가의 글을 읽고 있으려니, 갑자기 친할머니가 떠올라서 끄적여 보았다.
"할머니 잘 지내고 계시죠?"